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몇 개월간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보고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이미 본 작품이 많았음에도 잘 짜 놓은 전체 플롯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보니 전에 보지 못한 새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눈에 띄는 특징으로는 각 인종과 성별을 잘 배분하여 출연을 시켰다는 점입니다. 상당히 많은 유색인종이 비중 있게 출연하며, 여자 히어로의 숫자나 영향력도 상당합니다. 그리고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여자나 유색 인종이 악역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다원주의니 하는 말은 1960년대부터 생겼다고 하지만, 지금에서야 완전한 다원주의 사회가 된 것이라고 체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과거 남자의 보조적 존재로 인식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줄었으며, 설사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표현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세상이 되었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이슈는 여전히 뉴스에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상식으로 생각합니다.
다원주의라는 말은 미국-소련 냉전이 끝나는 시점에 들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체제 경쟁으로 전 세계는 두 체제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했고, 제3의 소리를 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사회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의 영향인지 아직도 다양한 소리를 빨갱이라는 말로 누르는 것을 많이 보지만 시대의 흐름은 확실히 점점 다양한 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향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또 논의해볼 만한 주제이지만 너무 샛길로 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다양한 소리에 디즈니, 마블이라는 가장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기업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기가 있는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은 백인으로 하지만 각 세계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배우들을 고용하여 최대한 넓은 독자층을 공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벤저스를 한국에서 찍으면서 수연을 출연시키고, 마동석이 히어로가 되었으며, 최근 박서준이 출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것이 한국 관객 확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백인 히어로가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비판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은 확실히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반면 이러한 설정은 창작에 너무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성과 유색인종 악역이 없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비판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수익 저하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이 생기는 것 자체가 아직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슨 가족을 보면서 미국 백인 평균 남자 수준이라고 비웃거나,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음식에 대해 자조적인 유머에 쿨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그로 인해 차별받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흑인에게 깜둥이라는 농담을 할 수 있고, 아시아권 사람들에게 눈 찢는 제스처를 하면서 같이 깔깔거릴 수 있는 사회는 아니니까요. 다양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다양한 비판을 모두 수용하면서 큰 재미를 끌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대머리에 대한 차별은 크지 않은 모양입니다. 누구나 잠재적 대머리라서 그런 걸까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악역들은 대머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착한 대머리가 극도로 적음에 아무런 비난도 없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유튜브나 인터넷에도 대머리에 관한 수많은 밈과 유머가 생기고 있지만, 이 때문에 불매 운동이 생기는 경우는 보기 힘듭니다. 모든 차별적 유머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 대머리에 대한 유머는 아직도 건제한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닉 퓨리 국장이 대머리라고요? 그는 유색인종 버프를 받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