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 봅니다.
비행기 마일리지가 내년이면 만료가 된다는 메시지를 받고 즉흥적으로 여행을 잡았습니다. 마침 연말 업무 비수기가 찾아와서 못쓴 휴가를 써야 했기 때문에 바로 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하였고, 9박 10일의 여행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태국은 십수 년 전에 잠시 근무를 했었고, 이후에도 가끔 여행으로 온 곳이라 매우 친근하고 그리운 곳이었습니다.
십수 년 전에 근무하던 태국을 기억하는 제가 도착한 방콕은 정말 예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많이 변했습니다. 새로 생긴 거대 쇼핑몰인 Iconsiam은 에르메스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도 장이 없는 파텍 필립까지 모든 명품들이 입점해 있었고, 예전 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신 시설을 자랑했습니다. 호텔 숙박 비용이나 수입품 가격도 몰라보게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얼음 값을 따로 받는 메뉴판을 보고 생소해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싸고 맛있는 노점 음식을 먹으며 상품화를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쇼핑몰 안에 노점 스타일의 푸드코트가 많이 생긴 것을 보니 관광 상품 개발도 열심히 한 듯 보였습니다.
많은 변화가 느껴짐에도 예전 그 태국의 느낌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은 마사지, 여전히 똑같이 맛있는 음식을 같은 가격에 팔고 있는 노점상들과 널려있는 값싸고 잘 만들어진 수공예품과 각종 기상천외한 짝퉁들이 그대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낡은 집들과 어지럽게 얽힌 전깃줄은 십수 년의 세월만을 더 품은 채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추억은 나쁘고 힘든 일도 좋게 포장을 하게 되는데, 하물며 좋았던 느낌의 태국의 모습이 그대로인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단순히 기뻐할 수만은 없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사지 요금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소득과 생산성이 그대로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고, 화려한 건물들이 늘어난 것과 연계하여 생각해보면 빈부격차가 훨씬 심해졌을 것임을 굳이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20바트짜리 국수로 한 끼를 때우며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합니다. 물론 그 국수도 먹어보면 매우 맛있는 곳이 태국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사실 여행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종로를 오랜만에 찾았을 때였는데요, 예전 낡은 건물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상당 구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아쉬움에 예전 모습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련된 도시의 삶을 좋아하고 제가 사는 곳이 개발되면 환영할 테지만 가끔 방문했던 추억을 유지하고 싶은 이기적인 이유로 말입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 결론 없이 이런 이율배반적인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십수 년 전에 태국을 떠나면서 앞으로 다시 못 볼 광경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제 예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이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그들의 친절한 "사와디 캅"은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건물마다, 길거리마다 걸려있는 왕의 사진과 꾸며져 있는 작은 제단들도 정겨운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일단 반으로 깎고 시작해야 하는 시장의 흥정 문화도 여전하였고, 가까운 거리를 가기 좋은, 무시무시하게 운전하던 오토바이는 기존 서비스는 물론이고 추세에 맞춰 배달 서비스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문화가 아니기에 당연한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디서 뭘 먹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에 많은 뱃살을 얻은 9박 10일이었네요. 화려한 도시와 오래된 길거리가 공존하는 방콕과 외국 휴양지 같은 분위기의 리조트가 즐비한 후아힌에서 한 해를 마무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