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군대 있을 때 경례를 참 싫어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경례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들킬까 봐 오히려 상사에게 칼 같이 경례를 했습니다.
경례를 싫어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가식적인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입대하여 공포에 떠밀려서 '다나까'말투를 배우고 경례 자세를 배우며, 목 터지게 관등성명을 외치는 법을 배우고 자대에 들어가면 감정을 느낄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경례를 하게 됩니다. 짬이 찰수록 경례를 받는 일이 더 많아졌는데, 강압에 의해 나에 대한 마음이 조금도 없는 친구들이 "충성"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군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후배들의 경례에 멋지게 "충성"을 외치며 손을 올리고 경례를 받아주어야 했지만, 군인 정신이 한참 부족한 저는 마지못해 손 내리라고 신호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제 누구도 잘 건드리지 않는 병장 신분이 되었을 때 경례를 하는 후임들에게 경례를 하지 말라고 말해보았습니다. 대부분 제 말을 농담으로 생각하고 듣지 않았지만, 저에게 농담을 잘하며 친하게 지내던 상병 말호봉의 후임이 진짜 그래도 되냐고 묻더니 실제로 밖에서 만났을 때 호기롭게 경례를 하지 않고는 내 표정을 살폈습니다. 제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것을 보자 그 친구는 이후 거의 경례를 저에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에 저의 소심한 반항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막상 이등병 친구들에게 경례를 하지 말라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눈치만 보는 친구들을 보니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 철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대의 규율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를 하고는 있었지만, 아마도 저는 군대와는 썩 맞지 않는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회사에서 중간 정도 되는 직급이 되자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직장 동료 중 한 분께서, "자신이 한참 주목받고 잘 나갈 때는 자신이 지나가면 와서 인사를 하곤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이 어려워지자 인사를 하지 않더라."라고 한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잘 나간 적도, 어려워진 적도 없이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던 저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였습니다. 사실 군대 있을 때의 경례만큼이나 누군가가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아서 차이를 못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사람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사실 나보다는 나의 위치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번 본 적도 없는 임원분이 지나가면 인사를 하게 됩니다. 친하지 않은 후배를 봐도 마찬가지죠.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굳이 인사를 하지 않는 사이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많은 주변 인간관계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입은 옷, 그 사람이 있는 장소에 의해 엮인 인연이며,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뭐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인사를 잘하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런데 뜬금없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물론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제가 그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에게 아무 감정 없이 인사를 할 것입니다. 문득 내 위치가 변해 있어도 나에게 인사를 할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거지가 되고, 그런 극한 상황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나를 좋아해서 나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정의하면 될까요? 굳이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회사 업무로 만난 사람 중에도 왠지 친해지고 싶고,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저에게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끌리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품과 매력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이성의 타고난 외모에 끌리는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성별 상관없이 쌓아온 인생과 생각을 보게 되는 느낌입니다. 이런 생각이 드니 저의 인생을 돌아보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쌓아온 것들에 끌리는 사람들이 생길 가능성이 어린 시절 저의 외모에 끌리는 사람이 생길 가능성보다는 높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인생을 쌓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