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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Jul 01. 2023

출근길에 보인 비둘기 한 마리

일상으로의 초대

출근을 하려고 길을 나서면 꽤 가파르게 경사가 진 도로를 지나야 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있는데 그 길 한복판에 살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비둘기는 제가 옆을 지나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이상하게 고개를 뱅글뱅글 돌리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비둘기가 사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는 건 이제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에 본 것 같은 비둘기가 길 옆으로 밀려난 채 그대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비둘기를 살펴보니 아마도 다쳐서 잘 움직이지 못한 상태로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보통의 비둘기들은 아직까지는 제가 다가가면 비키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다급하게 고개를 뱅글뱅글 돌렸던 것은 어쩌면 구조를 원하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렸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습니다. 불쌍해 보이는 길고양이를 보는 것도, 다쳐서 떨어져 있는 새를 보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죠. 사실 그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지만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굳이 내가 책임을 지지도 못할 동정심을 발휘해 봐야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키우는 캣맘도 있다고 들었지만 저에게는 그 정도의 마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사 있다 해도 그 모든 생명들을 챙길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불쌍한 동물을 보고 마음이 아린 것은 아마도 공감 능력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회사에서 처음 보는 부인상 공지를 봤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직원이었지만 그 공지를 보는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공감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거기 까지였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람이기에 잠시 마음으로 애도를 하는 정도가 저의 행동의 끝이었으며, 저는 그날 평소와 다름없는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 상을 당한 사람이 제가 한 번이라도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면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고, 같은 부서 사람이라면 조문을 하러 가면서 더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거기까지입니다. 타인의 거대한 슬픔에 진짜 공감을 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테니 유전적으로 막아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과 먼 사람의 슬픔에는 상당히 냉정한 것도 사실입니다.


신기하게도 나와 가까운 사람의 친인척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도 차등이 생겨 공감을 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조부상이나 조모상에는 사람들이 아주 가깝지 않는다면 굳이 찾아가지 않고, 부조도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상은 다르죠. 나와 잘 아는 사람이라면 조문은 물론 제 마음도 상당히 아플 것입니다. 사실 다 같은 사람이고 그 친구의 조부모나 부모 모두 나와 유전적으로 전혀 상관이 없는 먼 사람이지만 공감하는 마음이 다른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은 상당히 모순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도 다르고, 나와의 관계에 따라도 다르고, 자신의 신념이나 상황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슬퍼했지만, 정치적 생각이 다른 이유만으로도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 시체팔이 같은 말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세월호는 슬프지만 이태원 참사는 단순히 놀러 간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군인을 영웅이라 칭하며 적군이 죽는 것에는 전혀 공감을 못하는 사람들 역시 아마도 풍부한 공감 능력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유대인의 학살을 지지하던 사람들, 일본의 생체 실험을 수행한 사람들 중 대부분을 실제로 보면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같은 사람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다친 비둘기를 보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도,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모진 말을 하는 사람도, 심지어 학살을 지지했던 사람도 모두 비슷한 사람, 모순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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