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뉴스에 N번방이라는 기사가 떴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입니다. 코로나 19의 영향에 거의 모든 기사가 집중되어 있는 와중에, 이 사태를 이기고 올라올 정도의 파급력이 있는 이슈인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정보 접근이 늦은 제가 기사 하나를 보게 되니 텔레그램, 성착취 같은 말이 들어 있었고, 사건에 대한 설명은 이미 따로 찾아봐야 할 정도로 묻혀 있었습니다.
텔레그램이라는 단어에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채팅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측하였고, 성착취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정준영 사건 마냥 야동이 공유된 사건 정도로 처음에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정준영 사건 역시 작은 이슈는 아니지만, 그 정도의 일이 전 세계인의 삶과 경제를 흔드는 코로나에 밀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찾아보았습니다. 내용을 조금 확인해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납득하게 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고, 분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굳이 분노를 한 줄 더 쓸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보다 보니 두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이 보였습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26만 명의 공범입니다. 그냥 야동을 공유하는 정도가 아닌, 이렇게 거액을 내고 엽기적인 범행을 즐기는 행위를 26만 명이나 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26명이 하다 걸렸다면 바로 사건을 처리하기가 쉽겠지만 26만 명은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숫자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각계각층에서 모인 26만 명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본인의 처벌을 막는다면, 이는 생각보다 처벌이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자연 사건이 결국 막히게 된 것은 가해자의 강력한 힘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해자가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가해자를 도왔고, 결국 많은 비난속에서도 무탈하게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26만 명이나 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사건을 수습하려 한다면, 너무나도 명백해 보이는 이 사건에 몇 명 정도의 희생자만 만들고 끝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과 돈이 있는 사람이 다수가 있다면 사실 이런 사건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방법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페미니즘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화살을 서로에게 돌리는 것은 예전부터 써오던 전통적인 물 흐리기의 방법입니다. 이런 전형적인 방법 외에도 피해자를 공격하는 등 여러 창의적인 방법으로 본인들의 신상이 드러나고 처벌을 받는 것을 피하려고 갖가지 수단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로 눈여겨본 사항은 바로 정보의 무서움입니다. 영드 셜록 시즌3 3화에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매그너슨이 나옵니다. 내용을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단지 그 화를 보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가 드러납니다.
N번방 사건에 장본인의 태도에서 놀랍게 본 것은, 자신을 취재하려는 기자의 신상을 털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정보만 잡고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 N번방이 운영되는 메커니즘이 정보를 쥐고 약점을 잡았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의 정보를 캐내서 이들을 협박하고, 성착취를 하고, 이를 통해서 더 많은 두려워할 정보를 쌓는 방식으로 자신의 운영 절차를 확립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모든 가해자들의 신상을 접수하고, 그들 모두를 공범으로 만들어 본인의 아성을 공고히 했을 것이라 상상이 됩니다. 각계각층의 공범이 늘어날수록 여성의 정보를 캐기가 더 쉬워졌을 것이며, N번방은 더 커졌을 것입니다. 공범들은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직장이나 가정에 알려질 경우 일어날 파장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를 캐려는 기자의 신상을 캐서 굴복시키려 한 행위를 보면, 이러한 추정에 더 강한 확신을 들게 합니다.
사실 정보를 잡아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는 항상 일어납니다.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인에게 약점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공권력을 가진 기관은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약점을 잡히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이해 못할 공권력의 행위 뒤에는 보통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 중에는 일반적 기준으로 정말 나쁜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 어느 정도의 정의감을 가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잡힌 약점 때문에 딜레마를 가진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이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착취의 피해자에게 약점이 잡히는 행동을 비난하는 것과 방향은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착취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에는 무조건 비난하는 사람들의 반응 또한 일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인이나 공권력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지만, 일단 가장 나쁜 것은 남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사건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갈등만 안겨주다가 적당히 몇 사람 처벌되는 수준에서 상처만 남긴 채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휘둘리지 않고 본질을 봐야 조금이라도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봅니다. 저 같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노하고 휘둘리지 않게 사건을 바라보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말을 해도 나쁜 건 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