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0살 일기 1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범한 직장인 Aug 24. 2024

각자의 안경

틀림이 아닌 다름

한 가지 자랑(?)을 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노약자석, 임산부석에 앉아 본 적이 없다. 특별한 다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랬다. 대중교통에서 앉아가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 무슨 표시가 있으면 왠지 앉기 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별생각 없는 행동이다 보니 내가 노약자석, 임산부석에 앉아본 적이 없다는 걸 인지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와이프가 임신을 하고 나니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임산부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 절대 임산부가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이 앉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간 앉으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와이프와 지하철을 탔는데 임산부석을 점령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니 화가 났지만, 와이프가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괜찮다고 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지하철을 타면 우선 보이는 것이 임산부석이었다. "초기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비워둡시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비임산부를 보면 지금도 조금 화가 난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임산부석에 앉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앉지 말라고 되어있어서 앉지 않았을 뿐이지 정말 임산부의 어려움에 공감을 해서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다리가 아플 때 임산부석에 앉았다면, 화가 나기보다는 반성이 많이 되었을 것 같다. 내 상황이 바뀌면서 내 행동의 기준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출산 후에도 상황은 계속 변하고, 내 시각도 계속 변한다. 유모차를 몰기 시작하면서부터 보도블록의 턱 중간중간을 찌그러뜨려 낮게 해 놓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외관상 보기 좋지 않고, 자꾸 차들이 인도로 올라와서 불편하게만 생각했었지만 유모차를 모니 그런 턱만 눈에 계속 띄며 고맙게 느껴진다. 하지만 횡단보도는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간신히 건널 시간만을 준다. 생각해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차 중심이다. 예전에 힘겹게 빨간불이 켜질 때까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들을 볼 때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모차를 몰아보니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인도에 올라와 길막하고 있는 자동차, 횡단보도에서는 차가 위협하고, 인도에는 자전거, 오토바이, 킥보드가 위협하는 모습을 후대 사람들이 보며 야만의 시대라 할지도 모르겠다. 가끔 인도를 걷고 있는데 차도를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그리고 걷기에 불편한 우둘투둘한 노란 보도 역시 시각 장애인이 길을 나서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안전선일 것이다. 대부분의 계단 옆에 경사로가 있고, 지하철 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삼 우리나라가 그래도 약자에 대한 배려가 꽤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상황에 따라 변하는 시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길에서 은은하게 퍼져오는 담배 냄새를 당연히 싫어했는데, 그래도 길 복판에서 당당하게 피지 않는 이상 당연한 권리라고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유모차를 끌고 나오니 생각은 좀 더 부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블로그 리뷰에 아기 의자가 있는 음식점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아기를 데려가도 되는 곳인지도 불분명해서 음식점을 갈 때마다 아기 의자가 있는지, 데려올만한 곳인지 유심히 보게 된다. 출산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런 정보부터 다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시각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요즘 보면 다른 시각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많은 갈등이 타협과 봉합이 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시각만을 고집하고, 남의 시각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내가 건강이 좀 더 좋지 않았다면 아마도 임산부석에 자주 앉았을지도 모른다.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 장애인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는 정부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려 노력할 때는, 내가 그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접해야 한다. 아니, 내가 그 상황이 돼 본 적이 있다 해도, 사람마다 생각과 경험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물론 갈등 상황에서 잘잘못은 따져야 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잘 들어보는 것, 그것이 논쟁이 아닌 토론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