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영역 3
사실 저는 공부할 때 케이스 스터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수능 적중 몇 % 같은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능에 내가 풀어본 문제가 나온다한들 내가 기억하여 맞추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풀어본 많은 문제가 다 기억날 리도 없습니다. 물론 수능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많이 만들었다는 것은 양질의 문제를 잘 만들었다는 의미가 되기는 하지만, 적중률 100% 문제집을 풀었다고 제가 100점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문제를 풀 때 오히려 내가 접해보지 않은 문제가 나왔을 때 대처에 중점을 많이 두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익숙하지 않은 타입의 문제를 받았을 때 빨리 풀 수 있는 연습이 되어야, 진짜 수능에서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스 스터디가 필요한 과목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수능에 나오는 시조나 시, 일부 문학 지문은 어느 정도 지문을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문제인데, 어쩌겠습니까. 싫은 마음을 감추고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야에서 내가 전혀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문제와 보기를 잘 보고 소위 때러 맞추는 감을 키우기에 좋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가)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윤동주, 바람이 불어 -
(나)
새는 새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매번 머리를 부딪치고 날개를 상하고 나야 보이는,
창살 사이의 간격보다 큰, 몸뚱어리.
하늘과 산이 보이고 ㉢ 울음 실은 공기가 자유로이 드나드는
그러나 살랑거리며 날개를 굳게 다리에 매달아 놓는,
그 적당한 간격은 슬프다.
그 창살의 간격보다 넓은 몸은 슬프다.
넓게, 힘차게 뻗을 날개가 있고
㉣ 날개를 힘껏 떠받쳐 줄 공기가 있지만
새는 다만 네 발 달린 짐승처럼 걷는다.
부지런히 걸어 다리가 굵어지고 튼튼해져서
닭처럼 날개가 귀찮아질 때까지 걷는다.
새장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날지 않고
닭처럼 모이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을 때까지 걷는다.
㉤ 걸으면서, 가끔, 창살 사이를 채우고 있는 바람을
부리로 쪼아 본다, 아직도 벽이 아니고
공기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유리보다도 더 환하고 선명하게 전망이 보이고
울음 소리 숨내음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고안된 공기,
그 최첨단 신소재의 부드러운 질감을 음미하려는 듯.
- 김기택, 새 -
시가 2편 나왔습니다. 두 시 전부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문제를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43. (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불려 가는’이라는 피동 표현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에 순응하려는 화자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② ‘이유가 없을까’라는 물음의 형식으로 화자의 정신적 고통에 타당한 이유가 없음을 단정하고 있다.
③ ‘사랑한 일’과 ‘슬퍼한 일’을 병치하여 화자의 개인적 불행이 시대에 대한 무관심의 원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④ ‘없다’의 반복을 활용하여 자신의 삶과 내면을 응시하는 화자의 반성적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⑤ ‘흐르는데’와 ‘섰다’의 대비를 통해 변함없는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화자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윤동주 님의 시지만, 제가 전혀 모르는 시입니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짧은 시인데, 갑자기 생뚱맞게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윤동주 님이 일제 강점기에 저항하신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서시처럼 뭔가 고백을 하는 느낌만 받고 문제를 풀어봅니다.
이러한 문제는 옳은/적절한인 경우와 틀린을 찾는 경우가 다릅니다. 틀린 경우를 찾는다면 5개 중에 4개의 서술이 맞다는 전제가 생기기 때문에 내용을 모르는 경우에 풀기가 수월합니다. 전체와 맥락이 다른 보기를 찾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 문제는 수능답게 적절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4개는 틀린 진술이라고 생각하고 풀어야 합니다.
1번에서 피동적인 표현을 썼지만, 이 화자 성격상 순응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뒤에 보면 괴로워하고 있으니까요. 2번은 고통에 이유가 있으니까 없을까라고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3번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넘어갑니다. 4번은 없다의 반복이라고 되어있는데, 시를 보니 없다는 라임이 일단 많이 나옵니다. 반성적 자세인지는 모르겠으니 일단 넘어갑니다. 흐르는데 섰다는 대비는 무언가 화자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 같은데 자연에서 깨달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감으로 보면 3번과 4번이 답인 것 같습니다. 이는 이 시를 알아야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랑한 일과 슬퍼한 일이라는 병치가 무관심을 암시한다는 것은 너무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4번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반성적 자세는 시에 자주 나오고, 이 시 역시 전반적으로 반성이 흐르는 느낌이므로 4번을 답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의 특징과 보기만으로 문제를 풀어보았습니다. 당연히 시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풀기 편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을 많이 해두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처음 보는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는 문제도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한 문제 더 풀어보겠습니다.
45. <보기>를 바탕으로 (나)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새 에서 ‘새장에 갇힌 새’는 일상의 안온함에 길들어 자유를 억압하는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알레고리이다. ‘새’의 행동에 대한 묘사는 일상에 충실할수록 잠재된 힘과 본질을 잃어 가는 아이러니와, 일상에 만족하며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외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① 몸이 창살에 부딪치고 나서야 창살의 간격이 보이는 새는, 일상에 갇힌 자신을 의식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군.
② 바깥 풍경이 보일 정도로 적당한 간격의 창살로 된 새장은, 안온함과 억압성이라는 양가성을 지닌 일상을 보여 주는군.
③ 닭처럼 날개가 귀찮아질 때까지 부지런히 걷는 새는, 성실한 생활이 잠재력의 상실로 이어지는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군.
④ 새장 문이 열려도 날지 않고 모이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을 때까지 걷는 새는,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다 보니 오히려 자유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 주는군.
⑤ 하늘을 자유롭게 날도록 날개를 밀어 올리는 공기를 음미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듯한 새는,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일상에 안주하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군.
일단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4개는 모두 맞는 진술이라고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문제가 쉬울 경우 보기에 나오는 주제와 상관없는 해석이 나올 것입니다. 그럼 그 문제는 보통 잘 읽기만 하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능 문제인 만큼 5개 보기 모두 보기에 해당되는 진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고, 이 시와 다른 측면이 있는지를 잘 생각하며 읽어야 합니다.
1번은 상당히 모범적인 진술로 시에 나온 사실도 해석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2번 역시 시에 나온 사실은 무리가 없고, 해석에 양가성이라는 어려운 말이 나오지만 크게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3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4번은 사실은 무리가 없고 해석 역시 무리가 없어 보이는데 자신의 본질이 눈에 튑니다. 걷는 새는 본질이 아닙니다. 이렇게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상당히 엉뚱한 부분에서 보통 트릭을 걸어 내는 문제가 이런 타입의 문제에서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4번을 쭉 읽으면 분명 큰 무리가 없으나, 걷는 새가 본질은 아니라는 점을 잘 캐치해야 합니다. 5번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문제를 간단히 풀어보았습니다. 자신이 전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포기하거나, 해답을 보고 그 답을 익히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르는 문제를 대응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들어 있는 함정을 잘 생각하여 항상 생각하며 문제를 풀다 보면 어느새 능력이 많이 올라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문제를 그런 식으로 풀 수는 없으니 지식도 열심히 쌓아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