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제가 DC Inside를 한참 보고 있었던 2000년대 초부터 네티즌 수사대라는 말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당시 생소했던 인터넷을 통하여 일반인들이 집요하게 정보를 조합하여 진실을 밝혀내고, 이를 널리 알려서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혼자 할 수는 없기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합심하여 정보를 교환하 해서 검찰이나 경찰 못지않은 수사능력을 자랑하기도 했으며, 이를 퍼트리는 능력 역시 탁월했었습니다.
네티즌 수사대와는 결이 다르지만, 게시판 글과 댓글로 의견을 표출하는 측면에서 같은 악플러도 있습니다. 악플러에 대한 생각은 제 이전 글에서도 드러납니다.
https://brunch.co.kr/@gjchaos0709/19
네티즌 수사대와 악플러는 같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주로 평범한 사람들이 유명인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것에서 비슷하지만, 전자는 정의를 구현하려는 목적이 있고, 악플러는 단순한 화풀이나 질투의 성향이 강하다는 차이점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 두 부류는 실제로 유명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네티즌 수사대는 선의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여 세상을 바꾸려 하기 위해 선이고, 악플러는 단순히 질투와 악의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며 험한 말을 하니 악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과도한 네티즌 수사대의 수사에 큰 고통을 받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고, 심지어 무고한 사람을 보내버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동기가 정당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결과를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문제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으로 단정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닙니다. 실제로 잘못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이 받아야 하는 처벌보다 훨씬 심한 처벌을 받게 만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네티즌 수사대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말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과거에 길거리에서 조금 개념 없는 행위를 하는 여자를 찍어서 XX녀라고 올리고, 신상을 캐고 비난하였습니다. 방송에서 "키 180이 넘지 않는 남자는 루저"라는 자극적인 말을 한 여자도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매장을 당했었죠. 그들의 행위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보면서 화가 나서 욕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들의 신상을 털고 각종 비난을 보내서 그 사람들의 생활을 방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만 합니다. 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방해에 한도가 없습니다. 과해지면 어느 순간 네티즌 수사대와 악플러가 결과뿐만 아니라 동기마저 같아지는 느낌입니다.
최근 소위 섹시 팬티 교사의 사례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욕을 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교사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자신에 대한 비난에 대해 항의를 하는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비록 잘못을 했지만 과도한 정신 공격에 이중 처벌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고 억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여기서 저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사람들은 굳이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면서 정의를 구현하려 할까요?
그 바닥에는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위에 보면 항상 불합리한 것들 투성이입니다. 기업 총수는 큰 부정을 저질러도 죗값을 받지 않고, 터무니없는 언행을 일삼는 정치인이 항상 당선이 됩니다. 작게 보면 주위에 항상 남에게 못된 말만 하는 사람이 즐겁게 살기도 하고, 너무 약삭빨라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잘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의 부조리를 보면서도 보통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섹시 팬티 교사에 대한 처벌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그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충분히 이루어진다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그렇게 많은 악플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업인이 부정을 저지르다 걸렸을 경우에 충분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나라의 경제를 위해 힘쓰고 있는 대기업의 이미지가 그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결국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들의 행위에 그렇게 크게 화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악플러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적절한 처벌의 범위가 다르고, 아무리 명확하게 해명해도 의혹이 남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악의와 질투에 의한 악플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특정 사건에 대한 악플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악플은 많이 줄어들 것이며, 그렇게까지 자신의 시간을 소모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과거에 사회 부조리와 맞서서 수많은 항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민주화된 사회가 오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많은 희생을 하며 지금의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존경을 받습니다. 지금 네티즌 수사대 역시 과거와 비할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시간을 희생시키면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바뀐 시대에 맞는 투쟁 방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부 성과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으며, 꼭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저항이 없으면 사회의 부조리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당성 문제에는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이 행위 역시 권한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이 대상이 되는 사람을 이중 처벌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매도했을 경우에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분명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부조리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좋게 보면 다크히어로의 느낌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묶어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악플러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없앤,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줄어든 사회가 된다면, 굳이 정당성이 약한 행위를 하는 네티즌 수사대도 필요 없어질 것입니다. 아니면 이러한 부조리를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정당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