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스타 크래프트의 출시는 게임을 단순히 애들이 하는 일탈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하나의 문화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리그부터 각종 게임 리그와 방송이 쏟아져 나왔고, 저 역시 즐겨하고 즐겨 본 세대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제 세대부터는 게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 세대 사람들에게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좋지 않은 놀이라는 인식이 강한 듯합니다. 특히 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는 원수 같은 게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롤 플레잉이라는 장르는 마치 게임 속 캐릭터로 살아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게임 안에서 사회를 만들고, 닉네임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혀를 차는 어른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현실 세계에 적응 못하고 가상 세계에 빠져 사는 히키코모리 성격의 사회 부적응자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일부 어른들의 고정관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너무 현실성이 없게 게임에 심하게 빠지면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생활에 지장을 주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게임에 빠져 있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너무 빠져들면 확실히 문제가 있으니 적당히 하라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합니다. 프로게이머가 아닌 이상에는.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겪는 나의 역할은 롤 플레잉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가, 크면서 계속 여러 가지 역할이 주어지며, 역할이 바뀌게 됩니다. 선생님의 제자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대학생의 역할을 하다가 요즘에는 회사의 직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걱정이 될 정도로 너무 심하게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을 몰입해서 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 몰입을 해서 생활에 지장을 주고, 주위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엄마라는 역할에 몰입하다 보니 자식에게 심하게 집착을 해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직장 상사라는 역할에 몰입해서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를 하다가 죽거나 병드는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심지어 자신의 역할이 너무 고통스러워 그만하려고 하는 사람도 존재하죠. 이전에 언급했던 아이히만 역시 본인의 역할에 몰입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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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은 경지를 이야기해서 이해하기 힘들어 보이는 고대 경전을 잘 생각하다 보면 혹시 인생에 너무 몰입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어른들이 게임에 너무 몰입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힌두교 경전의 바가바드 기타의 주인공을 설득하는 신도, 아브라함에게 어렵게 얻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하느님이 나오는 성서도,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여 부처를 따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무리하게 대단한 경전까지 끌어들여 무리한 해석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인생에 너무 많이 몰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에 기반을 둔 연약한 존재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가끔은 내가 이 게임의 역할에 너무 몰입하여 나를 망치고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추어 고개를 돌려보고 생각해보아도 되지 않을지 생각해봅니다. 이 세상의 쳇바퀴 속에서 기계 부속품 같은 삶을 사는 나이지만, 이러한 작은 반항이 어쩌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