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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Sep 07. 2023

첫 번째 팀 회의

자신을 어필하는 팀장

대훈은 7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대기업 계열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업계 1위 업체의 팀장을 그만두고, 대기업 계열이라는 점 말고는 메리트가 없는 3위 업체의 팀원으로 이직하는 대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훈은 원숭이가 사냥꾼에게 잡히는 이유는 통 안에 든 바나나를 놓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팀원으로 시작하지만 전 회사에서도 그랬듯이 금방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고, 항상 콧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흥팀장, 그리고 팀원들과 첫 번째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흥팀장은 중저음의 가식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회의 내내 손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바쁘게 허공을 움직였습니다. 옷에 관심이 많은지 뭔가 복잡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경영지원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상무와 흥팀장 2명은 거의 신상 경쟁을 하듯이 새로운 옷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예전 직장에서 항상 검소한 복장으로 다녔던 대훈에게 흥팀장의 복장은 다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박상무는 항상 명품 로고가 보이는 옷을 입었고, 흥팀장은 본인 나이보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즐겨 입곤 했습니다. 흥팀장이 좋아하는 브랜드는 볼독 강아지가 그려진 브랜드인데, 박상무는 항상 흥팀장을 보면서 "오늘도 개대가리 입었네?"라는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대훈은 박상무와 흥팀장의 농담을 들으며, '일하는 것만 프로페셔널하면 패션은 상관없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흥팀장은 대훈이 입사하고 첫 회의에서 우리 팀이 얼마나 대단한 팀인지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 때 입사해서, 본인이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는지?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특히 경영지원실 내 가장 오래 근무한 입장에서 1,000여 명의 임직원 개개인사를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이 본인만이 가진 최대 장점임을 어필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훈님도 저처럼 임직원들의 개인적인 상황을 다 알고 계셔야, 인사노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어요."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훈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예전 직장에서 배울 수 없었던, 대기업만의 노하우를 더욱 익혀보고 싶은 욕심으로 이직을 했지만, '임직원들의 개인사를 모두 알아야 인사노무 업무를 할 수 있다'는 흥팀장의 말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저녁. 퇴근 시간을 앞두고 흥팀장은 대훈을 불렀습니다. 흥팀장은 "저는 오늘 노동조합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대훈님은 직원들의 작년부터 올해까지의 연차휴가사용 현황을 정리해 주세요. 바로 할 수 있죠?"라는 팀장의 말에 대훈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훈은 예전 직장에서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절대 업무지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업무를 전달해야 한다면, 다음날 아침 9시에 발송되도록 예약메일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본인은 저녁을 먹으러 가며 야근 업무를 시키는 팀장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각오하고 이직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훈은 조용히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흥팀장과 대훈 뒷자리에 앉은 윤석은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흥팀장이 저녁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우자, 윤석은 무료 조식으로 받은 김밥의 절반을 대훈에게 나누어 주며 말을 걸었습니다. "대훈님. 이거 아침에 받은 김밥인데 드시고 하세요. 배는 안 고프세요?" 윤석이 건네준 김밥은 차가웠지만, 윤석의 따뜻한 마음이 김밥의 차가움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윤석 님. 이거 윤석 님 저녁 드시려고 남겨 놓으신 거 아니신가요? 저는 괜찮은데..." 대훈의 말에 윤석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저 아까 간식 먹었어요. 입사한 지 이틀 만에 야근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저야 매일 혼자 야근했으니깐 상관없는데, 대훈님 괜찮으신가 모르겠어요. 팀장님 항상 이런 식이거든요. 본인은 법인카드로 한 잔 하러 가시면서, 항상 늦게 일 시키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여성 팀원들 업무도 말씀을 못하셔서, 그동안 제가 했어야 했어요. 휴가사용 현황 자료도 당연히 근태담당자 은미 님한테 시키셔야 하는 업무인데, 정작 은미 님은 퇴근하고 대훈님만 야근하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윤석이 갑작스럽게 쏟아낸 이야기에 대훈은 두 손을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이제 막 입사해서 업무 배우고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앞으로 제가 윤석 님 야근 친구하면 되겠네요."


 야근을 하던 대훈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4편에서 계속)

* 이미지 출처 : '무한상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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