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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Sep 08. 2023

소리 지르는 팀장

악마의 발톱

 입사 이틀 만에 야근을 하고 있는 대훈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흥팀장이었습니다. 대훈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팀장님. 김대훈입니다.”

한껏 취기가 올라온 흥팀장이 이야기했습니다.

”대훈님~ 잠깐 여기로 오시지요. 식당 위치 보내드릴게요. “ 흥팀장은 노동조합 위원장과 저녁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대훈을 불렀습니다. 이미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대훈은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훈이 겨울바람을 헤치고 뛰어와서 그런지, 두꺼운 외투를 벗자 대훈의 니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습니다.

흥팀장은 이미 술기운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대훈이 자리에 앉자 흥팀장은 곧 외투를 챙기고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집에 조금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대훈님은 여기 노동조합 집행부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들어가세요. “ 대훈은 그렇게 노동조합 집행부 분들과 첫 번째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훈은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합류한 자리는 자정이 다 되도록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회사 앞에는 00시 11분에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있었습니다. 대훈은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대훈의 입사 2일 차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대훈님, 어제 말했던 자료 한 번 줘 메신저 쪽지로 한 번 줘보세요.” 출근시간에 딱 맞춰 출근한 흥팀장이 대훈에게 말했습니다.

“네, 팀장님.“ 대훈이 메신저로 파일을 전송하자 흥팀장이 팀원들이 다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아이 씨발. 쪽지로 달라니깐 채팅으로 주네.” 흥팀장의 기분 나쁜 목소리를 들으며, 대훈은 사내 메신저에 채팅과 쪽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파일을 살펴보던 흥팀장이 말했습니다. “대훈님, 이거 아직 다 못한 거예요?” 대훈이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네, 팀장님. 어제 저녁식사에 참석하느라 아직 다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흥팀장이 담배를 챙기며 말했습니다. ”참 나, 그것도 핑계라고.. 대훈님, 이거 11시에 박상무 님 보고드릴 거니깐 책임지고 준비해 놔요.“


흥팀장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자, 윤석이 의자를 끌고 대훈의 자리로 오며 말했습니다.

”대훈님, 제가 조금 도와 드릴까요? 팀장님, 상무님 스타일이 있으셔서, 그것에 맞게 제가 조금 수정해 드릴게요.“

대훈은 윤석이 아니면 이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흥팀장이 테이크 아웃잔을 하나 들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커피는 아닌 것 같고 뭔가 전통차 같은 향이 났지만, 대훈 입장에서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대훈 어깨너머로 흥팀장이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흥~~ 흥~~” 흥팀장은 대훈의 머리 위에서 흥흥 콧바람을 내 쉬었습니다. 대훈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훈의 모니터를 살펴보던 흥팀장이 말했습니다. “대훈님, 여기 콘텐츠플랫폼기획팀. 이 팀은 뭐 하는 팀이에요?” 흥팀장의 이야기를 들은 대훈은 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콘텐츠플랫폼기획팀? 콘텐츠 플랫폼을 기획하는 팀이 아닐까? 콘텐츠 플랫폼을 기획하는 팀이라고 대답하면 분명 뭐라고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이, 흥팀장은 더욱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묻는 거 안 들려요? 콘텐츠플랫폼기획팀이 뭐 하는 팀이냐고?” 흥팀장의 목소리를 커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존대는 반말이 되어 있습니다. 경영지원실은 어느 순간 적막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대훈은 직원들의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까지 멈춘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훈의 어깨너머에서 더욱 흥흥 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던 흥팀장은 거칠게 대훈의 마우스를 뺏으며, 조직도를 클릭했습니다. 조직도 이름을 클릭하자 해당 조직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적혀있었습니다. 오전부터 경영지원실에 찬물을 끼얹었던 콘텐츠플랫폼기획팀은 ‘콘텐츠 리뷰’를 하는 팀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대훈은 ‘그럼 팀 이름이 콘텐츠플랫폼기획팀이 아니라 콘텐츠리뷰팀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조직도를 클릭하면 그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알려주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바로 옆 채용팀장이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흥팀장에게 다가왔습니다. ”팀장님, 우리 담배나 한 대 태우러 가시죠~“ 채용팀장은 웃으며 흥팀장을 데리고 나갔고, 한바탕 찬물을 끼얹었던 것 같은 경영지원실에는 다시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의 대훈에게 윤석이 의자를 끌고 와서 말했습니다. “대훈님, 괜찮으시죠?” 윤석의 말에 대훈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채용팀장은 건물 옆 흡연장에서 흥팀장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래도 대훈님 사람은 좋은 거 같아요.” 채용팀장의 말에 흥팀장이 말했습니다. “팀장님, 대훈님 연봉이 얼마인지 잊으셨어요? 우리는 완전 찬밥이 된 거라고요. 어떻게 경쟁사에서 왔다는 이유로 우리보다 연봉을 훨씬 많이 줄 수 있어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그대로 지켜볼 수 없어요. 안 그래요?” 흥팀장의 말에 채용팀장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에이, 대훈님이 연봉을 더 받는다고 우리 연봉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요?” 채용팀장의 말에 흥팀장이 얼굴에 미소를 거두며 말했습니다. “팀장님. 두고 보세요. 저는 이 상황을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박상무 보고는 정말 싱겁게 끝났습니다. 박상무와 팀장은 회의 시간의 대부분을 옷 이야기, 야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휴가 사용현황은 잠깐 요약표만 살펴보고는, “올해 미사용연차수당 많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휴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봐, 알겠지?”라고만 언급했을 뿐, ’ 콘텐츠플랫폼기획팀‘이 무슨 업무를 하는 팀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단 1도 없었습니다. 대훈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야근도 시키고, 술자리 대타도 시키고, 갈구는구나.’


박상무 보고를 끝내고 나오자, 큰 문제없이 한 건을 넘겨서 기분이 좋아진 흥팀장이 팀원들에게 말했습니다.

“다들 약속 없으면 점심이나 함께 먹으러 갈까?” 대훈은 오전부터 밥맛이 뚝 떨어졌지만, 어쩔 수 없이 팀 점심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5편에서 계속)

* 이미지 출처 : '인사이드아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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