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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Sep 06. 2023

면접장의 흥팀장

악마와의 첫 만남.

대훈은 연차휴가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대기업 계열 회사답게 건물도 깔끔했고, 근무환경도 좋아 보였습니다.

면접은 임원실에서 보았습니다.

면접관은 단 2명.

모든 질문은 임원이 직접 했고,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웃기만 할 뿐, 단 한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사를 하게 되면, 대훈의 팀장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임원은 조급해 보였습니다.

사람을 빨리 충원하고 싶은 조급함이 보였습니다.

면접을 시작하고 10분 만에 "입사를 하게 되면~"이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었고,

"업무를 잘 아시는 분이니~"이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팀장은 면접에는 집중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노트북에서 뭔가를 타이핑하더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면접과는 무관하게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훈은 팀장의 콧수염을 보며 지난 주말 아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보고 온,

슈퍼마리오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시간의 면접이 끝나고, 대훈은 회사 건물을 나왔습니다.

날씨는 좋았고, 면접을 통과했다는 것은 면접을 보는 내내 알 수 있었습니다.

대훈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성공의 경험을 만들어 갈 생각에 설레기도 했습니다.




흥팀장은 항상 콧바람을 "흥흥~"하며 내뿜고 다닙니다.

그래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흥팀장'으로 불립니다.

블라인드 앱에서는 "8층 한강 쪽 팀장은 제발 자리에서 흥흥 코 풀지 말아 주세요. 더러워요."라는 글도 올라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흥팀장은 그 이야기가 자기 이야기인지 몰랐습니다. 흥팀장 본인은 휴지에 코를 풀지는 않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흥팀장의 "흥흥~"하는 소리는 휴지에 코를 푸는 소리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가끔은 분비물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흥팀장은 이 면접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박상무 님은 왜 나랑 나이도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 이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 것일까?'

'면접 내내 당신을 뽑을 거라는 이야기를 대 놓고 하고 있구먼. 아예 나를 대체하려고 하는 건가?'

'이 후보자가 입사하면 엄청 갈궈서 바로 관두도록 해야겠다. 사자 새끼를 키울 수는 없지.'

'와.. 연봉이 이게 뭐야? 나보다 훨씬 많잖아? 이건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이 가득했지만, 임원 앞에서는 기분이 나빠도 웃어야 합니다.

웃고 있지 않으면 박상무가 '불만 있냐?'며 갈구기 때문입니다.


박상무와 면접에 참석한 후보자가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흥팀장은 야구표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가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없어지면서 야구표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마침 흥팀장이 응원하는 팀이 박상무가 응원하는 팀에게 역전홈런을 쳤습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게다가 주말 야구티켓도 예약도 성공했습니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면접이라 그런지, 박상무가 흥팀장에게 존댓말로 질문을 했습니다.

"팀장님은 후보자님에게 궁금한 것 없나요?"

흥팀장이 바로 답합니다.

"마침 제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이미 다 물어보셔서 저는 추가적인 질문은 없습니다."

인터뷰에 집중하지 않고, 오로지 야구표 예약에만 집중하던 터라 박상무와 후보자 간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알 턱이 없어, 흥팀장은 박상무의 기분을 맞추며 인터뷰를 종료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후보자가 상무실을 나가자, 박상무가 물었습니다.

"어때? 괜찮은 거 같지 않아?"

흥팀장이 답했습니다.

"네,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받는 연봉이 너무 높은 거 같은데요? 우리 급여 테이블을 넘어가버려서요."

박상무가 흥팀장을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왜? 당신보다 연봉 높아서 싫다는 건 아니지?"

흥팀장이 웃으며 답했습니다.

"에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뽑아야지요."


상무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온 흥팀장은 급여 담당자 윤석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습니다.

"윤석! 그 후보자 연봉 너무 높은 거 아니야? 여기 오면 완전히 족보 꼬이는 거야. 안 그래?"

급여 윤석은 의자를 돌리는 척하며 흥팀장의 어깨동무를 살짝 피하고 대답했습니다.

"네, 팀장님. 그런 것 같아요."


윤석의 말에 의기양양해진 흥팀장이 자리로 돌아가자, 윤석은 혼자 생각했습니다.


'후보자님 참 좋아 보이던데... 입사하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3편에서 계속)

* 이미지 출처 : '잔혹한 인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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