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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Sep 12. 2023

비인간적인 업무지시

다 잘라버리라고요?

"파견직은 다 잘라 버리라고!“

흥팀장이 소리치자, 8층 사무실은 다시 적막이 감돌았습니다.

흥팀장 팀에서 파견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미영은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대훈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시선을 처리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파견직은 다 자르라고요, 아시겠어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친 흥팀장이 담배와 테이크 아웃잔에 든 뱅쇼를 들고 사무실에서 나갔습니다.


사무실은 계속 조용했습니다.

그 적막한 기운이 조금 가시자, 대훈은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파견직 미영에게 말했습니다.

"미영님, 미안해요. 괜찮아요?"


며칠 전 흥팀장이 대훈에게 소리쳤을 때는,

미영이 대훈에게 괜찮냐고 물었는데,

이번에는 대훈이 미영에게 괜찮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미영을 비롯한 여러 명의 파견직이 자리에 있었지만,

파견직을 자르라는 흥팀장의 지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안해하는 대훈에게 미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대훈님. 종종 있는 일이에요."


물론 대훈도 업무의 특성상 직원들을 퇴직시켜 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퇴직을 대하는 대훈만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직원은 아낌없는 축하를 해주고,

비자발적으로 퇴직해야 하는 직원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그리고 적어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퇴직절차를 진행했습니다.




박상무는 흥팀장을 불러 말했습니다.

"지금 회사에 인건비 줄어야 하는 거 알지? 이번에 파견직 줄이는 거, 한 번 검토해 보고 알려줘."

말이 좋아 검토이지, 박상무의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습니다.

"네, 대훈님 통해서 진행하겠습니다."

"대훈님이 할 수 있을까?" 박상무가 의아해하며 말했습니다.

"상무님, 대훈님 인터뷰 볼 때 대훈님이 이야기했던 거 기억하시죠? 사람들도 많이 퇴직시켜 봤다고. 실력 한 번 보시죠." 대훈의 채용 인터뷰 내내 야구 기사를 보고, 야구장 표를 예약하던 흥팀장이었지만, 대훈이 퇴직면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에 흥팀장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대훈님 실력 한 번 보자고. 팀장이 책임지고 잘 준비해 줄 수 있지?" 박상무가 묻자,

"네, 책임지고 대훈님이 처리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흥팀장이 책임지고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대훈이 책임지고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흥팀장은 아리송하게 이야기를 하며, 옅은 미소를 띠었습니다.


(9편에서 계속)

* 이미지 출처 : '놀면 뭐하니' 중

이전 07화 경위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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