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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2. 2023

무대 위, 모두가 적


생존

  음악 10년 차,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먹고살아야 하는 불안감에 쫓기고 있었다. 잠시 사진으로 도망치고, 연애로 도망쳐 행복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나의 꿈, 나의 커리어는 별개의 문제였다.


  마지막 도전이라 여겼던 팀은 해체됐고, 음악적 성공은커녕 데뷔조차 실패했다. 설상가상 심각한 호흡기질환이 나를 덮쳤다. 병든 서른 살이 되어있었다. 끔찍했다.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다. 생존을 위해 레슨을 늘렸다. 그저 노래하는 게 행복했던 아이는 노래를 가르치면서 불행한 어른이 되어갔다. 어쩌다 레슨 외의 일을 하게 돼도 즐겁지 않았다. 게스트보컬, 가이드보컬… 일로써의 음악만이 하루를 가득 채웠다. 목소리를 빌려주는 일은 절망감만 안겨주었다. 녹음실과 무대 위는 놀이터가 아닌 전쟁터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생존해야 했다.



공황

  어느 날 객원보컬로 노래를 부르러 간 무대 위에서 난생처음 공황을 경험했다. 내 뒤의 밴드도 내 앞의 관객도 모두 내게 총을 겨눈 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포위 됐고, 모두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모두가 입꼬리를 올리고 나의 실수를 기다렸다. 나는 가사의 첫 번째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8마디의 전주 동안 완벽한 지옥을 경험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노래해야 하는 지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3...2...1....



  가까스로 모호한 음과 단어를 대충 섞어 토하듯 뱉어버렸다. 다행히도 첫 소절을 뱉으니 내 몸은 충실하게 멜로디와 가사를 기억해 내어 자동재생 해주었다. 어떻게 끝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무대가 끝나고 나는 독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카모플라쥬

  공황 경험 이후로 무대공포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대에 서야만 했기에 치열하게 위장했다. 웃어야 할 때 웃고, 말해야 할 때 아무 말이나 했다. 무대에서 프로답게 멋진 척, 신난 척, 미친 척을 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고, 집에 돌아와 12시간 동안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밴드멤버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늘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이 보였을 이상한 나를 종종 챙겨줬다. 레슨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맥북 업그레이드를 도와주기도 했다. 내가 유독 긴장한 것 같은 날엔 바에서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사주었고 리허설이 끝나면 오늘 죽인다며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다정한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들은 모두 멋진 커리어와 실력을 가진 최고의 뮤지션이었고, 교수였고,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그들과 가까워지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초라한 내가 모조리 들통날 것 같았다. 그랬다. 나는 그들이 너무나 두려웠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또다시 나를 꽁꽁 싸맸다. 그렇게 슬금슬금 뒤로 물러 났다.

그리고 나는 점차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탈

  더 이상 어떤 무리에도 섞이고 싶지 않았다.

  피로했다.

  세상과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졌다.

  그냥 혼자인 나로 존재하기로 했다.


  위장색을 벗어던지고 나의 색 그대로 있고 싶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겸허하게 혼자임을 받아들이며

  나는 계획적으로 외로운 존재가 되어갔다.

  그저 내 자리에 얌전히 앉아 숨만 쉬기로 했다.

  그게 그러니까... 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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