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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Feb 26. 2024

우울감의 좌표와 행복한 아침, 그리고 음악


우울함은 깨어있는 새벽에 찾아온다고 생각하지만 그 위력은 아침에 가장 세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아, 세상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좋겠네-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심신도 통장도 메말라 있던 그 시절, 실은 난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무식하게 창작으로 극복했다. 덕분에 음악으로 세상에 첫 족적을 남겼지만, 그것들은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감정들이었다. 지금도 그 잔재가 어렴풋이 남아 -이걸 해서 뭐하나- 하는 무기력에 빠지곤 한다. 


한참 레슨을 다닐 때는 신기하게도 우울감이 좌표를 바꿨다. 정신없이 나서는 아침, 무언가 내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는 사실은 우울할 타이밍을 빼앗았고, 대신 퇴근길에 극심하게 거대해져서 돌아왔다. ‘맙소사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것은 우울감이었는지 번아웃이었는지 육춘긴지 뭔지 모르겠지만 레슨강사로써의 삶은 끝내야 할 시기가 이미 지나간 후였나 보다. 고민고민만 하다가 고민에 치여 돌아버릴 것만 같아진 그때, 10년 넘게 한 레슨을 때려치웠다. 


백수 1년 차.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지만 역시 난 순진했다. 



내가 1년간 해 낸 일은 수많은 실패들이다. 

유튜브도 인스타도 심지어 이 브런치 글쓰기도 꾸준히 해나가지 못하고 한두 달 화르르 타오르다 세 달 차에 꾸역꾸역 유지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냅다 도망가는 식이다. 그렇게 무슨 영원회기 마냥 나는 해볼 만한 것들을 몽땅 기웃거린 후, 다시 마이크 앞에 앉아있다. 


다시 음악을 해보기로 (무려 3년 만에) 마음먹었다고 해서 당장에 아침이 드라마틱하게 행복해지진 않았다. ‘이걸 해서 뭐 하나 병’은 뭘 하던 도졌기 때문에 -아니 어차피 뭘 해도 뭐 하나 싶으면 이왕이면 음악으로 하자- 고 마음먹은 것뿐이다. 


내가 1년간 해 낸 유일한 일은 운동습관 가지기다. 

대략 33%의 출석률로 나는 GYM에 가는 닝겐이 되는 데 성공했다. 뭐 대단한 운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스쿼트도 100개 할 수 있게 됐고, 덤벨도 한 손에 1킬로씩 들고 팔운동을 할 수 있게 됐고, 견갑골도 근육을 써서 모을 수 있게 됐다. 날씨 핑계, 컨디션 핑계, 돈 핑계로 띄엄띄엄하고 있긴 하지만 만날천날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수영과 테니스도 강습을 한두 달씩 받았다. 가끔 자유수영이나 스크린 테니스를 가서 심박수를 180까지 끌어올리면 그날 하루는 매우 행복해진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아침의 우울은 제법 위세가 약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나의 행복한 아침을 위해 세 가지를 되도록 지키고 있다.


   

눈이 퉁퉁 부은 채 가는 아침운동


거의 360일 차려 먹는 아침식사


오늘 할 일을 계획하는 아침저널



최대한 하찮게 시작하자 마음먹은 3분 걷기 운동은 한 달 차인 지금 11분으로 늘어났다. 기껏해야 7키로미터퍼아워의 속력이지만, 심지어 마지막 1분은 뛴다. 아침부터 심박수가 내 키만큼 올라가고 나면 꽤 활기차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부산하게 토스트, 달걀, 샐러드와 커피로 아침을 차려 먹고 호다닥 씻고 나면, 내 작업실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친다. 작년에 인생 처음으로 한 권의 다이어리를 꽉 채웠다. 아무리 열심히 썼던 해여도 열두 달 남김없이 꽉꽉 채운 건 처음이다. 작심삼일도 3일마다 하면 된다고, 많은 도전과 많은 실패를 경험하다 보니 쓸 것도 많았나 보다. 그래서 이룬 건 없지만 이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브런치북 응모해서 작가의 삶을 살겠다며 광인처럼 ‘실패한 음악인생’을 쓸 때만 해도 나는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음악과 사요나라 한다고 굳게 다짐했었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이루어지고 있다. 브런치북 응모에서는 탈락했지만 나의 음악인생을 되돌아본 글쓰기는 내게 어떤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었고 1년간 가랑비에 옷 적시듯 쌓아놓은 나의 위대하고 하찮은 운동습관이 선물해 준 소소한 체력은 추진력이 되어주었다. 


겨울 내내 ‘shortcut’의 믹스를 마쳤고, 챗 GPT와 함께 아트웍을 만들었다. 며칠 후에 이 곡을 세상에 내놓으려고 한다. 2월이 가기 전에 꼭 발표하고 말리라는 이상한 강박 덕분에 (이 우울한 곡을 절대 3월에 내고 싶지 않았다) 유통사를 통한 정식발매는 날짜가 없어서 포기하기로 했다. 4년 만에 발표하는 곡이 정식발매곡이 아니라는 것조차 이 곡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곡의 제목 앞에 괄호치고 -미발매곡 괄호 닫고-라고 쓰여진 것조차 이 곡과 몹시 잘 어울린다. 이것은 셀프 가스라이팅인가. 뭐 아무렴 어떠하리.




나의 모든 혼란과 의심과 낙담을 이 곡에 꾹꾹 눌러 담아 날려 보낸다… 사요나라…

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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