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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7. 2024

춤을 추게 된 이유


얼평

  나의 부모는 아름답고 훌륭했다.대기업에 다니는 조각미남 아버지와 청순미모의 은행원 어머니는 20대 초반, 서로를 첫사랑으로 만나 결혼했다.


  그들 사이 첫째 딸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 아름다운 부모를 어디 한구석 닮지 않았었다고 한다. 하필 할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나의 할아버지는 어딘가 JYP를 닮은 핵인싸로 손재주가 좋고 음주가무에 능했다. 눈빛이 매섭고 다리가 긴 시크한 멋쟁이여서 요즘 말로 하면 '힙한'사람이었다. 리즈시절 심은하 뺨치게 이뻤던 나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무서워했지만 ‘장인회유 스킬’로 자신의 색시로 삼아 버린 어마무시한 전략가이기도 했다. 동네 맥가이버로 소문난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뚝딱뚝딱 고쳤다. ‘총포사’를 운영하며 ‘오도바이’를 타고 ‘꿩 사냥’을 다니셨다. 웬만한 신문물이라면 다 가진 트렌드 세터, ‘영등포 GD’ 같은 핫한 사나이. 나는 그의 첫 번째 손녀로 태어난 것이다.


  오뚝한 코에 쌍꺼풀 진 눈을 가진 부모님과 다르게 할아버지를 닮아 퍼진 코와 날카로운 무쌍 눈으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가족들의 얼평대상 1호였다.



 ‘아이고 코가 하필 할아버지를 닮았냐…’


 ‘커서 쌍꺼풀은 꼭 해야겠네’



  그다음에 얼굴형과 입술은 예쁘다는 말을 덧붙여도 이미 귀에 안 들어왔다. 어린것이 뭘 알겠나 싶어 어른들이 농처럼 뱉은 말들은 마음 한구석에 상처로 자리 잡았다. 그 때문인지 어린것은 어느 순간부터 부모 같은 훌륭함을 갖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외모는 틀린 것 같으니 공부로 승부해야 했다. 다행히 어린것은 부모를 닮아 꽤나 총명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반장 부반장 같은 것을 종종 했으며, 미술, 음악에도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고, 어머니는 무뚝뚝했다. 그 시대의 부모가 대부분 그렇듯이 사랑과 관심을 부어주진 않았다. 사랑은 부족했지만 원하는 건 거의 다 가지며 살았다. 공주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잘난 부모덕에 꽤 공주처럼 살았다. 일찌감치 내 방이 있었고, 내 피아노가 있었고, 하얀 레이스 원피스도, 빨간 에나멜 구두도, 바퀴가 네 개 달린 작은 롤러스케이트도 하나 있었다.



달동네 속 마법의 성

  초등학교 4학년, 불운이 우리 집을 덮쳤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설상가상의 사건들이 가정을 할퀴었고 우리 집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남동생과 나는 조부모님 손에 맡겨졌다.


 조부모의 집은 달동네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 끝집이었다. 집 바로 뒤편으로 낭떠러지 같은 죽은 공터가 있었고, 오래된 철로 위로 더러운 기차가 지나갔다.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한 환경이었다. 집은 낡고 좁은 1층짜리 주택으로 급하게 대충 지은 흔적들이 집안팎에 역력했다.


 조부모님은 손자들을 사랑하셨겠지만은 배움은 부족했고 삶은 빡빡했다. 때문에 집안엔 고성과 폭력이 난무했다.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진 아이는 웃음을 잃었다. 성적은 하락했고, 말수는 줄었다. 한평 남짓의 창고방을 바퀴벌레, 돈벌레와 치열하게 싸우며 청소한 후 차지했다. 학교가 끝나면 더럽고 습한 창고방에 처박혀 부러진 안테나 대신 쇠 젓가락을 꼽고 지직거리는 라디오를 들었다.


 어느 날 나의 작고 낡은 라디오에서 '마법의 성'이 흘러나왔다. 그 길로 동네 테이프 가게에 달려가 꼬깃꼬깃 모아 둔 지폐 몇 장과 '더 클래식' 테이프를 교환했다. 공테이프에 녹음을 할 수도 있었고 리어카에서 좀 더 싼 복제물을 살 수도 있었지만 나는 비싼 '진짜' 테이프를 샀다. 소중하게 테이프 속 가사지를 꺼냈다. 창고방에 숨어 아무도 몰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서태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단발령이 떨어지자 머리를 숏컷으로 잘라 버렸다. 다들 먹고살기 바빴고 아무도 나에겐 관심이 없었다. 방치된 사춘기 소녀는 점점 혼자가 되었고, 반항적으로 변모했다. 키는 자라고 살은 붙지 않았다.


 중2병이 한창이던 무용시간의 일이다. 선생님은 창작무용 숙제를 내주었고, 장르는 자유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영등포 GD’의 강력한 유전자 하나가 내게 발현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유행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들을 카세트테이프로 믹싱 하고,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한 가요프로를 보며 안무를 카피했다. 그렇게 몇 날며칠 준비한 무용숙제를 발표한 날, 나는 우리 반 스타가 되었다.


  갑자기 친구가 늘어났고 혼자였던 나는 무리에 섞이게 되었다. 며칠 후 그 무리에 섞여 난생처음 노래방이란 곳에 갔다. 천 번, 아니 만 번은 들었을 것 같은 ‘마법의 성’이 노래방 책자에 있었다. 떨리는 맘으로 번호를 누르고 마이크를 잡았다.



   ‘펼쳐질 세… 상…이……’



노래가 최고음을 거쳐 브레이크에 달하자 어둡고 작은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세상에 나와 노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박자에 맞추어 마지막 부분을 불렀다.


‘너무나 소중해….. 함께 이…. 다…. 면….’


‘꺄아아아아아 아’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고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뛰었다. 친구들은 소리를 지르며 나의 노래를 극찬했다. 사춘기 소녀들의 순수함과 열정이 담긴 리액션은 나를 한번 더 전율하게 했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춤을 추고, 노래하면 아이들은 나를 기꺼이 사랑해 주었다.


 창고방에 처박혀 있던 소녀를 서태지와 마법의 성이 세상 밖으로 이끌었다. 나는 더 열심히 안무를 따고, 더 열심히 노래방에 갔다. 학교에서는 걸핏하면 불려 나가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동성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찾아와 러브레터와 초코우유를 조공했다. 그렇게 중고교시절 내내 교내 최고의 인기를 유지했다.



그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인정중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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