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살다가, 무턱대고 마흔이 되었다.
서점에 가면 나이 마흔에 관한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흔 전에는 꼭 이루어야 하는 것들, 또는 마흔에 무엇을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았다는 격려의 제목을 가진 책들이 많다. 그러고 보면 마흔이란 나이는 우리 인생에서 변곡점 또는 전환점 역할을 하는 나이인 것 같다. 이 변곡점을 잘 이용하면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인생의 목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는 유용한 지점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나이…. 마흔.
나는 마흔두 살에 엄마를 시작했다.
마흔이 넘으면 자연스레 중년이란 단어를 앞에 붙이게 되며 각종 신체적 노화가 어느 것부터 시작되더라도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나이이다. 나는 여성으로서 갱년기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기는 나이 마흔을 넘어 마흔두 살에 엄마를 시작했다. 그때 결혼한 많은 친구의 아이들은 사춘기가 오거나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행복한 태교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이나 체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성과를 쥐어짜느라 끙끙대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는 탓에 만성피로와 무력감은 기본으로 장착하고 늘 어깨에는 누군가 올라타고 있는 것 같다며 통증을 묘사하곤 하던 나였다.
나의 결혼과 임신이라는 변곡점보다 앞선 더 커다란 변곡점.
그것은 내가 산에 처음으로 올랐던 그 날이었을 것이다.
서른아홉의 어느 날, 살면서 처음으로 시작한 등산.
산이 주는 매력에 빠져 주말이면 어김없이 배낭 하나 둘러매고 산으로 내달렸다. 등산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대부분의 마흔이 겪는 어깨 통증, 피로, 무력감, 소화불량 등의 친숙한 증상으로 오랫동안 병원을 들락거렸을 것이고 엄마가 되겠다는 용기는 결코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내 코가 기나긴 석 자였을 것이 불 보듯 뻔했을 것이다. 역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옛 성현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3여 년에 걸친 등산으로 몸이 강해지니 이런저런 자극에도 잘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인생의 변곡점에 도전할 용기도 생겼다.
결혼하려고 작정하거나 더구나 늦게 늦게라도 꼭 하려고 결심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살면서 늘 내가 하고 싶은 공부, 직장, 이직, 여행 같은 그때그때의 우선 순위들을 쫓아 살다 보니 결혼과 임신이라는 개념은 나에겐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망설이게 하고 시간을 쪼개서 나눠야 하는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내 인생에도 마흔이라는 변곡점을 지나면서 (이제껏 살아왔던 삶의 기울기가 상승에서 하락 또는 하락에서 상승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혼이라는 커다란 전환을 맞게 되었고 나는 마흔두 살에 산길을 같이 걷던 사람과 출산 예정인 늦은 엄마로 변신하게 되었다.
주변에 흔치 않은 내 또래 늦은 엄마들이라고 해봐야 나보다 적게는 두세 살, 많게는 대여섯 살이 어린 엄마들이지만 난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오십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이 또래 엄마 모임에서 언니라고 불러볼 기회는 불행히도 아직까지 없었다. 산부인과에서 좀 나이 들어 보이는 엄마들을 어쩌다 만나게 되면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이제껏 어디서 뭐 하다 이제 나타났냐는 식으로 한눈에 호감형으로 느껴지며 오래된 친구처럼 안부를 묻는다.
“어떠세요? 저는 다리가 너무 무겁고 밤에 쥐가 자주 나던데요”
“그죠, 저도 밤에 쥐 나는 건 물론이고 손발도 통통 붓던데요”
“에고, 그러시구나. 근데 젊은 엄마들도 이 정도는 다 하더라고요, 나이 든 우리만 특별히 더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죠?”
본인들이 늦은 나이 산모라서 우리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라는 듯 애써 격려와 응원이 담긴 덕담을 건넨다.
이십 대 초반의 젊고 활기찬 임산부가 나에게 “힘드시죠? 저도 이렇게 힘든데 언니는 나이도 있으신데 얼마나 힘드실까”라고 말을 건넨다. 절대로 나를 무시하거나 비꼬는 뜻이 아닌 진심으로 나이 많아 보이는 언니를 걱정하는 철없는 멘트를 듣기도 했다. 순간 기분이 상하거나 내가 나이 많은 산모라서 부끄럽다기보다는 생면부지의 젊은 엄마로부터 이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딘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연대감마저 들었다.
“뭐 그렇죠. 생각보다 힘들기는 하네요. 어때요? 아기 엄마는? 엄마도 힘들죠?”
“커피 좋아하는데 못 마시니 미칠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죠. 조금만 더 참아야죠”
“맞아요. 저도 커피 좋아하는데 많이 그립죠.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며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나이와 세대를 초월하고 만난 두 임산부는 열 달 동안 못 마시는 커피를 그렇게 그리워하며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있었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적거나 모두 아이를 건강하게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며 다리가 붓는 것도 예사로 참아 넘기고 얼음 동동 띄운 냉커피를 말로만 그리워하는 우리는 모두 같은 엄마들이었다.
마흔두 살에 엄마를 시작하려는 이 길은 나에게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 나오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한, 그래서 더 많이 걸어야 할
길처럼 느껴졌다
마흔이라는 변곡점에서 나는 결혼과 임신을 선택하였고,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은 이제껏 혼자만 돌보며 자유롭게 살아왔던 지난날들보다 쉽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커 보인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나는 남들과 비교해서 늦었다거나, 더 늙어서 힘들다거나 하는 투정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봐야겠다.
이왕 풀이 무성하고 더 걸어야 할 길을 택한 나는, 이 길을 헤매지 않고 천천히 여유를 즐기면서라도 목적지에 행복하게 도착할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을 찾아보고 싶다.
무릎 관절의 윤활유가 적어져서 앉고 일어설 때마다 "두 두둑" 소리가 더 나는 대신에 머릿속에는 이제껏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축적된 많은 경험과 지식이 많이 입력되어 있다. 덕분에 어쩌다 길을 헤맬 경우라도 우왕좌왕하며 당황하기보다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길을 찾는 노련함과 지도와 나침판을 사용해본 경험과 이에 따른 여유로움이 간혹 나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먼 길을 가려는 사람은 신발을 고쳐 신는다"는 글귀처럼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새롭게 펼쳐질 엄마로서의 내 인생길을 가기 위해 난 마흔 두 살에 다시금 신발을 고쳐 신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뛸 준비를 하고 길 앞에 섰다.
언제나 출발은 설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