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시간을 삼키고 길 위에 흐른다/가현달
07:58
어지러운 공기를 뚫고 또렷한 빛 한줄기가 차창에 닿는다. 뿌연 유리를 지나 두세 개의 빛으로 갈라진다. 106번이라는 숫자를 뒤로하고 난반사되듯 망막에 닿아 정신이 어지럽다. 제각기 출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하루를 듣는다.
19:32
주변에 어둠이 깔리고 날벌레 한 마리가 버스 천장에 붙어 씨름 중이다. 어쩌다 너도 이 버스에 타게 되었나 물었다. 날벌레는 열심히 날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했다. 너에게 이 버스는 충분히 넓다고 했더니 나를 비웃는다. 이 버스에는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다고 했다.
11:29
장애인석에서는 장애인을 찾아볼 수 없다. 언젠가부터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가지만 의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나는 비어있는 장애인석에서 그들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보고 싶은 이는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여기저기 닿을 수 있어야 사는 거니까.
15:38
백발의 어르신이 버스에 타자마자 뒤편 카드단말기에 카드를 찍는다. 아무리 어르신이라지만 염치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한 정거장 만에 내리시는걸 보고서야 나의 편협함을 탓했다. 나는 무슨 편견을 가진 것인가.
20:17
아이도 있고 부모도 있고 나도 있고 누구도 있다. 다정한 연인의 눈웃음이 있고 꾸벅꾸벅 조는 젊음이 있다. 살면서 낯선 이와 이렇게 가까이 앉아갈 일이 얼마나 있겠나. 뻗으면 닿을 거리에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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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지에 도착하기 한 정거장 전에 내려 반대로 걸었다. 가만히 있으면 도착할 곳을 알기 때문이다. 내려걸으니 살가운 바람이 볼을 스친다. 그 바람의 인사에 보폭을 맞춰 걸으니 못 보던 버스가 스친다. 나는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버스를 타고 새로운 길을 따른다. 그곳이 어디든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이토록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