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나의 일상이 만족스러운 적이 있었던가? 새벽운동을 가는 길, 모서리길에 핀 들꽃이 하얀 얼굴로 활짝 웃어줄 때도, 계단에서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마치고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을 때, 조용한 카페의 큰 창을 바라보며 따뜻한 녹차 한잔을 마실 때, 정성 들여 차린 나의 밥상을 먹을 때, 남편과 저녁산책을 할 때, 아이들과 좋아하는 드라마를 함께 보는 나의 모든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내가 안다는 것에 고맙고 또 감사하다.
나의 미니멀라이프
나의 시간들은 내가 암을 만난 뒤부터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나는 지금 미니멀라이프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아는 물건들에 대한 미니멀라이프가 아니다. 내 삶을 둘러싼 많은 관계들에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만을 가지고 나는 미니멀라이프 살기를 하고 있다.
암을 만난 뒤 내가 느끼는 시간은 암을 만나기전과는 다르다.
위절제수술을 하고 나니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많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는 것도 뚜렷해졌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것은 잘 먹고, 잘 자고,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이었다. 더 이상 욕심나는 것은 없었다. 그냥 잘 먹을 수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음식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나의 평범한 모든 일상들이 특별하고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당당하게 거절합니다.
나는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들에 거절하기를 힘들어했다. 내 시간이 가능하다면, 내 능력으로 가능하다면 최대한 거절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를 돌보고, 나의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부족했고 항상 소홀했다.
나는 암을 만난 뒤
나를 먼저 돌보고, 나의 가족들에게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암환자가 되고 많은 것들을 당당하게 거절하고 있다. 나를 돌보고 내가 소중한 것들에 정성을 들이고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게, 음식맛을 느낄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저 김치맛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으로 10개월을 보냈다. 나의 가장 큰 바램은 김치맛을 느끼는것이였다.
바늘을 잡고 인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놀 수 있다는 게 내 삶과 시간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도 알게 되었다.
어떤 것에 욕심을 내어야 하는지 어떤 것들을 소중해하고 감사해야 하는지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암을 만난 것은 나에게 행운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암을 만난 뒤 내 삶의 시간이 달라졌다.
오늘도 길모퉁이에 핀 하얀 들꽃에 감사하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새벽운동을 하는 나에게 그리고 나의 소중한 일상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