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꼼지맘 Oct 21. 2023

암환자가 되니 당당하게 거절합니다

요즘 나의 일상은 조용하지만 분주하다.

지금처럼 나의 일상이 만족스러운 적이 있었던가?  새벽운동을 가는 길, 모서리길에 핀 들꽃이 하얀 얼굴로 활짝 웃어줄 때도, 계단에서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마치고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을 때, 조용한 카페의 큰 창을 바라보며 따뜻한 녹차 한잔을 마실 때, 정성 들여 차린 나의 밥상을 먹을 때, 남편과 저녁산책을 할 때, 아이들과 좋아하는 드라마를 함께 보는 나의 모든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내가 안다는 것에 고맙고 또 감사하다.


나의 미니멀라이프

나의 시간들은 내가 암을 만난 뒤부터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나는 지금 미니멀라이프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아는 물건들에 대한 미니멀라이프가 아니다. 내 삶을 둘러싼 많은 관계들에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만을 가지고 나는 미니멀라이프 살기를 하고 있다.  


암을 만난 뒤 내가 느끼는 시간은 암을 만나기전과는 다르다.

위절제수술을 하고 나니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많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는 것도 뚜렷해졌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것은 잘 먹고, 잘 자고,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이었다. 더 이상 욕심나는 것은 없었다. 그냥 잘 먹을 수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음식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나의 평범한 모든 일상들이 특별하고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당당하게 거절합니다.

나는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들에 거절하기를 힘들어했다. 내 시간이 가능하다면, 내 능력으로 가능하다면 최대한 거절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를 돌보고, 나의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부족했고 항상 소홀했다.


나는 암을 만난 뒤

나를 먼저 돌보고, 나의 가족들에게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암환자가 되고  많은 것들을 당당하게 거절하고 있다. 나를 돌보고 내가 소중한 것들에 정성을 들이고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게, 음식맛을 느낄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저 김치맛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으로 10개월을 보냈다.  나의 가장 큰 바램은 김치맛을 느끼는것이였다.

바늘을 잡고 인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놀 수 있다는 게 내 삶과 시간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도 알게 되었다.


어떤 것에 욕심을 내어야 하는지 어떤 것들을 소중해하고 감사해야 하는지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암을 만난 것은 나에게 행운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암을 만난 뒤 내 삶의 시간이 달라졌다.


오늘도 길모퉁이에 핀 하얀 들꽃에 감사하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새벽운동을 하는 나에게 그리고 나의 소중한 일상에 감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