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을 읽고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습니다. 혹자는 이제야 그 책을 읽었느냐고 할 터입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이제라도 읽었다, 라는 것에 한표를 던집니다.
동물농장의 스토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인간을 몰아낸 동물들이 그 중 똑똑한 돼지를 대표로 세웠고(스스로 대표가 된 것 같지만), 모두 힘을 합쳐 운영하던 동물농장은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돼지가 운영하는 동물농장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단지 돼지가 '동물(동지)'이라는 이유로, '인간(적)'은 아니니까 라는 생각으로 돼지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 그들에게 심어졌던, 우리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우리가 갖는다는 점점 퇴색되어버린 그 신념을 지키며, 죽을 때까지 일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따르던 돼지는 권력의 달콤함과 편안함에 젖어 동물들을 부리고, 속이고, 결국 그들 스스로 인간이 되고자 합니다.
한편의 이솝우화 같습니다.
에이 이런 바보 동물들, 그러게 왜 돼지를 믿었어. 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 이 나쁜 돼지들, 천벌을 받아라! 라고 말하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이솝우화가 아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결말이죠, 결국 동물들은 돼지가 인간이 된건지, 인간이 돼지가 된 건지 구분을 못합니다. 그렇다는 건 돼지의 본성(인지, 환경의 영향인지 모르지만)에 대해 아직 파악을 못한 게 될 겁니다. 그리고 돼지는 천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동물들은 happily ever after 하지 못합니다.
동물농장은 러시아-소비에트 공화국으로의 변화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현상이, 변화가,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도 너무나도 잘 이해되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최근 저에게도 동물농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 농장에는 신이 있습니다. 신은 농장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농장이 잘 되는 이유도 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그 이유로 농장의 모든 것을 차지했습니다. 맛있게 먹고 즐기고, 뜯었죠. 그러나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신이 늘 말하던 자신 때문에 농장이 잘 되고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농장에 합류하게 된 평사원의 봉기를 시작으로 신은 경질되었습니다.
우리에겐 봄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조금 고되었지만, 그래도 봄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몫까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어려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봄이었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신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신은 모든 것은 너의 것이고, 내 것은 이것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신이 이전의 신과 같을까봐 걱정했지만,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농장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힘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신을 정말 잘 따랐습니다. 같이 먹고, 즐겼죠. 딱 한 명, 벤자민만 빼고요. 동물농장 속 늙은 당나귀 벤자민처럼, 현실의 벤자민 역시 오랫동안 농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습니다. 신은 점점 더 우리에게 채찍을 휘두릅니다. 이전의 신은 한달에 한 번 휘둘렀다면 지금의 신은 그보다는 보드라운 채찍으로 매일매일 휘두릅니다. 우리는 지쳐갔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전의 신이 있던 시대보다 나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저는 동물농장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내가 마치 존스를 믿고, 나중에는 돼지 나폴레옹을 믿고 계속 일만 하는 복서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의구심이 드는 순간, 그 의구심을 풀어야 합니다.
의구심을 갖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작게는 나를 향해 있는 모든 현실에 대해,
크게는 세계 전반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깨어있어야만, 스스로 알고 있어야만, 그리고 행동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