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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Feb 05. 2021

우리가 오해하는 시조의 모든 것 6

#시조는 시조스러워야지 #시조는 음풍농월 #시조는 시와 달라야지

   우리가 오해하는 시조의 모든 것 Chapter. 6
시조는 시조스러워야 한다!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지만, 특히 시조의 경우, '한국 고유의 전통 서정시'라는 엄청난 지위 때문에 특정한 '~다움'을 강하게 요구받는다. 즉, 시조는 시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특히 자유시)와 구별되고 차별화될 수 있는 그 '무엇' 말이다. 물론 시조의 경우 '3장 6구 4마디 초중종장 연속체'라는 특이한 리듬을 갖고 있지만, 항상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바로 자유시의 영역에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조는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스스로를 얽매이고 제약을 걸어놓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조가 자기 스스로의 존재론을 확보하기 위해 예술성 혹은 작품성보다는 '전통'에 매달리게 되면서, 소위 '전통적인 것'이라는 속성을 '시조다움'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조의 어조(어투), 소재, 주제 등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먼저 시조의 어조부터 생각해보자. 어조는 시적 주체의 목소리로, 대상을 대하는 시적 주체의 태도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시의 어조는 물론 다양하고 시조 역시 다양해야 하지만, 많은 시조시인들은 시조만의 특별한 어조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바로 관조와 비판!

   관조는 자연을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이고, 비판은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라 할 수 있는데, 관조는 고시조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고, 비판은 자유시와 차별점을 두기 위한 것이다. 자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고 재현하는 것은 대부분의 예술 장르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시조는 특이하게도 인간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자연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상징적으로 마음을 처리하는 것에 몰두한다. 짧은 시형식이라는 큰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조의 '시조다움'을 관조라고 스스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시조의 음풍농월(吟風弄月, 바람을 읊고 달을 보며 시를 짓는다)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인데, 앞선 매거진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은 쉽게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떠 있는 달, 소주잔에 반사된 달, 그리고 너의 눈동자에 비치는 달에게 건배!! 캬~ 소주가 달구나. 관조는 결국, 작품 수준의 문제다.


   또한 방만하게 분량이 늘어나는 동시에 자의식 과잉, 히키코모리(자폐)의 성격이 강한 최근의 자유시와 변별점을 갖기 위해, 시조는 자유시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현실을 비판한다는 것 역시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느그 집엔 이런 거 읎지"(동백꽃)라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조선 후기 사설시조처럼 현대사설시조는 현실을 비판하고 인간의 욕망(특히 우리가 좋아하는 19금!!)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이상한 '사설시조-다움'이 존재한다. 시든 시조든 어떤 문학, 예술 장르든 간에 현실을 비판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현실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미학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고 있으니, 꼭 시조가 현실을 비판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자유시가 개인의 마음에 집중하니, 시조는 그것에 더 나아가 현실을 비판하는 '참 문학'임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는 오히려 자유시에 대한 열등감을 시조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 비판의 유무는 각 장르가 알아서 할 문제이지, 현실 비판을 해야 모범적인 '참' 예술 장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판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우월성을 은연중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비판할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으로 자신을 높이는 일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시조가 그렇다!


아름다운 노래가 되거나 새로운 발견이거나


   우리는 흔히 '시적인 소재'가 있고, 그것으로부터 '시상'이 떠올라 시인이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시적인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이제 막 배우고 있는 습작생에게 시를 써오라고 주문하면, 아마 다음의 소재 중 하나를 반드시 써올 것이다! 이 중 하나 써온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새벽, 낙엽, 달빛, 눈물, 이별, 해 질 녘, 비, 우듬지, 바다, 세월, 죽음, 목련, 벚꽃, 그늘, 우산, 음악, 바람, 낙화, 사랑, 물안개, 의자, 어머니, 밤하늘, 별, 가로등, 손톱, 구두, 신앙, 반려견 등등…   

    대체로 우리는 시를 쓰려면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사건을 보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특별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프로와 아마추어, 1류와 3류의 차이가 발생한다. 프로 또는 1류 시인은 일상의 예사로운 것들에서 특이하고 낯선 감정을 발견하고 가져온다. 모든 사람이 보는 것, 겪는 것에서 새로운 감정을 가져오는 것이 바로 프로! 아마추어나 3류는 처음부터 특이하고 낯선 것부터 찾으려 하지만, 그게 찾아지나... 결국 '이거 시적인데!'하고 모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쓰는 게 바로 아마추어. 문제는 모든 사람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ㅠㅠ

   예전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황현산 평론가의 대학원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함께 읽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늘 내 마음에 새겨 있는 문장이다.

"시는 아름다운 노래이거나, 새로운 발견 둘 중 하나면 좋은 시가 된다."

   그렇다. 시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거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못 본 것을 보여주면 좋은 시가 된다. 이보다 더 정확한 '좋은 시 정의'가 있을까. 아름다움의 문제는 결국 미학의 문제일 것이고, 새로운 발견이 바로 방금 전에 언급한 프로의 자세다! '같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새로운 발견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런데 저런 특정한 사물과 사건을 가지고 시를 써?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사물과 사건은 다른 시인들이 이미 다 썼지롱! 다시 말해, 특정한 사물과 사건에 목숨 걸지 말고, 자기만의 일상에서 자기만의 감정을 끌고 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자기만의 고유성이자 유일한 것이다. '가장 특수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쓸 자신이 없다면 자기의 고유성을 써야 한다. (물론 이것도 겁나 힘들다.)


시는 일상에서부터 온다. 모두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을 유심히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은 시인이 되기 어렵다.


   자, 여기서 시조의 문제가 땋! 시조는 정형시라는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 노래가 되기 쉽다. 일정한 규칙은 박자가 되니까! 문학 장르인 현대시조가 음악 장르였던 시조창을 연원으로 두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 감히 말하겠다. 시조는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 쉽다! 물론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노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논의가 복잡해지겠지만.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시조가 이렇게 좋은 조건을 이미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조시인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일보다, 새로운 발견보다, '한국 고유의 정형시'라는 타이틀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시조는 이러이러해야 해, 시조는 이런 것을 써야 어울려, 하면서 '시조다움'을 내세운다. 그래서 '시조다움'이 뭡니까 하고 끈질기게 물으면, 긴 수염과 도포 자락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대답한다(하신다).

   "시조는 한국 고유의 것을 써야지! 아름다운 한국어, 토속어를 지켜는 일이고!! 시조는 한국인의 정신이자 민족의 얼이야!!!"

     아름다운 노래가 되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라니까, 갑자기 한국인의 정신? 그러면 시조 쓰는 사람은 한국인의 정신을 지키는 애국자이고, 자유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은 한국인의 정신을 지키는 데 소홀한 사람인가? 시조를 써서 한국 고유의 무언가를 지킬 수 있다면, 정말 나부터 겁나 열심히 써서 지키겠다!! 그러나 정말 죄송할 말씀이지만, 미학 없고 예술성 없는 작품으로는 오히려 한국 고유의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망가뜨리는 것에 불과하다. 수위 조절 실패. 이왕 이렇게 된 것, 용기 내어 더 써본다.

   한국적인 것, 전통적인 것을 관조하는 작품은 지금 시대의 작품이 아니다. 고시조를 써놓고 현대시조를 썼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한국인의 정신이 무너진다고 현실을 비판하는 것 역시 미학과 예술성을 획득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부디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인 척, 잘난 척을 작품으로 하지 맙시다. 예술은 예술에 대한 고민'만'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제발요.  


예술작품은 이것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시조 역시 마찬가지. 이것이 어떻게 시조가 되고 예술이 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시조스러움 너머, 시조의 끝까지

   종종 문학잡지나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혀 있는 시조를 보다 보면, '시조스러움'이 너무 잘 보여서 개탄할 때가 있다.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리듬에 대한, 삶에 대한 성찰이 1도 없어 보이는 작품. 그런데 또 3장 6구 초중종장을 다 지켰으니, 일단 시조라고 인정'은' 해야 한다. 안 본 눈 삽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나에게도 적용되니, 이 꽉 깨물고 글 써야겠다.

   주변의 지인으로부터 내 작품에 대한 평가를 가끔 듣는데, 시조 같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시조 같다'는 말이 뭔가 욕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시조의 초중종장의 리듬부터 언어의 강세, 요즘 시조시인들이 잘 안 지키는 6구까지 철저히 지킨다. 누가 봐도 형식은 시조인데, 내용이 시조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즉, 시조스런 내용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앞서 말한 한국 고유의 것, 전통, 민족, 정신, 도덕 등이 바로 '시조스런 내용'인데, 이것이 과연 한국과 예술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이다. 폐 안 끼치면 다행이지.

   '시조스러움'. 이것에 집착하는 게 문제다. 시조스러움을 강제하여 시조 스스로 존재론을 삼는다면 시조는 곧 박물관 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인물은 곧 썩는다. 이제 시조는 시조스러움을 던져버리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소재, 주제, 어조 등 무한하게 뻗어나가야 하며 무한정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시조는 정해진 리듬이 있으므로 아무리 뻗어나가 봤자 다시 시조로 되돌아온다. 마치 용수철처럼, 진자의 추처럼.

   시조가 앞으로 발전하려면, 아니 계속 존속하려면 시조는 스스로 자신의 한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한 발만 더 나가면 시조가 아닌 곳까지 경계를 최대한 확장해야 한다. 땅따먹기 하듯 야금야금 시조의 영역과 경계를 조금씩 넓혀가야 한다. 누가? 바로 시조시인들이. 이것은 연구자나 평론가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시인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으로 실천해야 한다.

    제발 자유시를 경쟁 상대로 보고 열등감 갖지 말자. 자유시는 자유시의 길이 있고, 시조는 시조의 길이 있다. 비교할 것도 없고 위계를 따져볼 필요도 없다. 자유시에 비해 여러모로 불평등하다고, 불리하다고 말할 필요 없다. 작품으로 보여주면 된다. 자유시와 같아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하지 마시라. 시조의 리듬, 시인의 개성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싸울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자체다. 우리의 작품이 어떻게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는지, 그것만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자신이 없는가. 쫄리면 죽으시든가.  


인간은 우주상의 먼지 한 톨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조는 우주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시조는 우주를 담을 것이다. (영화 GRAVITY)


   이제, 시조는 무엇이든 쓸 수 있고 어떤 말이든 쓸 수 있어야 한다. 시조는 이래야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딱 거기까지. 시조스러운 것은 없다. '시조 종장은 우주의 괄약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우주의 괄약근을 보여주겠다. 우주 삼라만상을 담겠다. 나의 세계는 우주. 나의 그릇은 우주. 당신은 얼마나 큰 세계를 갖고 있는가.


우리가 오해하는 시조의 모든 것. to be continued.



ps : <오늘부터 쓰시조>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본 글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https://search.daum.net/search?w=bookpage&bookId=5907786&tab=introduction&DA=LB2&q=%EC%98%A4%EB%8A%98%EB%B6%80%ED%84%B0%20%EC%93%B0%EC%8B%9C%EC%A1%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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