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4 (D-day)
12월 13일은 수요일이었다. 수요일은 오전 오후 모두 외래가 있는 날이라 예약 환자만 100명이 넘는 날이었다. 그래서 수요일을 넘기면 한 고개 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4일 목요일, 드디어 내가 비워둔 시간의 첫날이 되었다. 앞서 이야기 한 여러 과정들을 거치며 어렵게 마련한 시간이었기에 무척 기대가 되었다. 오전에 이것저것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고, 점심시간에 그동안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본과 4학년 학생들을 만나 점심을 사주었다. 이 학생들은 미국에 있는 동안, 내가 있었던 실험실로 특성화실습을 와서 한 달 동안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었다. 국시를 치기 전에 꼭 한번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동안 너무 바빠서 그제야 만난 것이다.
큰 숙제를 해결하고 연구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맘먹은 일에 집중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오른쪽 가슴의 오른쪽 아래 바깥쪽 부분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아!’라는 비명이 나왔다. 사실 지난 주말에 등 근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안 하던 스트레칭과 운동을 좀 했는데, 그래서 근육이 찢어졌나 싶었다. 어제 했던 운동 자세를 취해보았는데 그곳이 아니었다.
‘어, 이상하다. 그럼 어디지?’
몸통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다시 찢어지는 통증이 있었다. 갑자기 죽을 듯한 피곤함이 몰려와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가슴에 찜질팩을 대고 연구실 소파에 누웠다. 조금 있다가 논문을 시작해야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통증이 심해졌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왼쪽 위 안쪽으로 통증이 집중되었는데 통증의 양상도 이번에는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픈 곳을 만져보았다. 한 1cm쯤 되는 뭔가가 만져졌는데, 정말 이상했다. 사실 친구들이 불과 2개월 전에 연속으로 유방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최근에 몇 번이나 자가 진단을 해보았다. 몇 년 전에 나와 친하게 지냈던 L 교수님이 유방암으로 하늘나라로 먼저 가신 일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종종 자가 진단을 해왔는데, 한 번도 무엇인가 만져진 적이 없었다
‘설마, 2개월 전에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겼다고? 통증이 있으니 유방암은 아닐 거야. 암은 통증이 없잖아. 이건 아마 염증일 거야. 이렇게 갑자기 통증 있는 것 보면 분명히 급성 염증성 질환일 거야.’
가슴에 찜질팩을 대고 누워서 잠들었는데, 얼마나 통증이 심했는지 자다가 일어났다. 뭔가가 불길했다. 통증 때문에 자다가 깬다는 것은 진짜 아픈 것이다. 이건 뭔가 하나님의 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