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D+2)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남편은 내가 눈을 뜨자마자 지금 바로 응급실로 가자고 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응급실을 왜 가?”
“새벽에 응급실에 연락해서 CT 랑 MRI를 찍을 수 있는지 물어봐 놨어.”
“아직 조직검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무슨 검사부터 해?”
“조직검사 결과 나오면 어차피 해야 되는데 미리 해두면 좋지, 필요 없어지면 더 좋고.”
“아, 맞네…”
눈물을 뚝 뚝 흘리며 주섬주섬 외출 준비를 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차에 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 분명히 믿고 있지만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멈추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신속하게 도와주었다. 이제 내가 이 병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래된 교수가 됐구나 싶었다. 2004년에 인턴을 했으니 이 병원에서 20년째다.
응급실에 누워 있으니,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솟아났다. 인턴 때부터 봐오던 간호사 선생님, ‘저분도 20년이 넘었겠네. 참 대단하다. 이 응급실에서 20년이라니….’
이분들 덕분에 내가 주말에 학회도 가고 가족들과 쉴 수도 있었구나 싶었다.
혈관을 잡고 CT 실로 갔다. 몇 년 전 CT를 처음 찍었을 때가 생각났다. 목부터 출발해서 온몸으로 퍼져, 방광에 이르렀구나 싶은 조영제의 느낌. 뜨끈한 것이 위에서부터 쭈욱 흘러내리면, 심장에서 한번 펌프질 하면 이렇게 빨리 혈액이 온몸을 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피는 하루에 몸을 몇 바퀴나 도는 걸까. 우리 몸이 참 신기하다.
그 조영제의 느낌이 싫어서 2021년에 chest CT를 찍었을 때는 조영제-무로 찍었다. 그때도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심장내과에서 찍었던 것 같은데….
‘그때 조영제-유로 찍었으면 뭔가 발견했을까? 아니야, 그 이후에 찍은 유방촬영에서는 석회화가 없었으니까, 그때 찍었어도 아마 아무것도 없었을 거야. 그럼 이건 언제 왜 생겼지? 미국에서는 일도 많지 않았고, 스트레스도 없었고, 행복하기만 했는데…. 미국에서 내가 식단을 잘못했나? 고기를 너무 많이 먹었나?’
그렇게 생각이 돌고 돌아, 그냥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셨나 보다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CT를 찍고 돌아와 몇 분이 지나니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항히스타민 주사를 하나 달라고 했다. 환자들이 왜 그렇게 CT를 찍기 싫어하는지 너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제 나도 주기적으로 CT를 찍어봐야 되는 몸이 되었다.
MRI 촬영은 25분이 걸렸다. 예전에 두통 때문에 MRI 도 찍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좁은 통 안에서 굉음을 들으며 보냈던 40분의 시간이 참 두려웠다. 왜 환자들이 진정제를 맞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번에도 공포스러우면 어떡하지?
유방 MRI 촬영 자세는 엎드리는 것이었다. 엎드려서 MRI 기계에 들어가니 좀 덜 두려운 것 같았다.
MRI는 강한 자기장으로 몸속의 세포들을 자극하는 원리이다. 그럼 그 세포가 가진 성상에 따라 자극되는 강도와 방향이 다를 것이다. 그 신호의 강도에 따라 이미지에서 다른 색깔로 보이게 되는데 그것으로 우리는 장기 안에 다른 성상을 가진 어떤 종양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 쇳가루를 종이 위에 뿌려놓고 그 밑에 자석을 가져다 대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내가 자석을 움직이는 대로 가루들이 좌로 정렬했다가 우로 정렬했다가 하는 놀이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MRI의 원리가 대략 그렇다.
그 원리를 알아서인지, 강력한 소리를 내며 자기장으로 자극을 할 때 내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종류의 소리가 들리면 몸의 세포들이 다른 방향으로 눕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가 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쇠망치를 두드리는 것 같은 ‘탕 탕 탕’ 거리는 자기장 소리를 들으며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마치 하나님께서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뒤집어서 이리 재끼고 저리 재끼고 하시면서 구석구석 씻고 계신 느낌이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를 깨끗하게 씻어주세요. 하나님, 내 속의 더러운 모든 것들이 다 씻겨나가고 그곳에 깨끗한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게 해 주세요.’
그 25분의 시간 동안 내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이 방향으로 정렬하고, 저 방향으로 정렬하면서 내 안의 모든 더러운 것들이 깨끗이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MRI 촬영이 끝나고 나니 이마를 대고 있던 구멍 바닥에 눈물 콧물이 흥건했다. 못 치우고 나와서 너무 미안하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부터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