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7일 (D+3)
아침에 일어나 교회 갈 준비를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교회 가는 것이 참 행복하다. 교회 가는 길이 행복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도 주일 아침에 항상 온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교회를 갔는데, 그땐 늘 시간에 쫓겨 짜증이 났었다. 매주 허겁지겁 피곤에 쩐 몸을 간신히 차에 구겨 넣었다. 거의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거나 사실은 거의 매주 지각했다. 예배시간에는 예배 마치면 어디에 놀러 갈지, 어디서 밥을 먹을지, 뭘 살지를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미국에서는 사실 교회 가는 것 말고는 신경 쓰는 일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쇼핑도 한 번 간 적이 없었다. 주일날 내가 유치부 교사를 하느라 온 가족이 이전보다 두 시간 반 이상을 더 일찍 집에서 나서야 했다. 그런데 교회 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돈 한 푼 없이도 갈 수 있고, 밥도 먹고, 하루 종일 하나님 이야기 하고, 그렇게 행복한 곳이 교회다.
차가 광안대교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바다가 반짝거린다. 오전에 수평선과 아직은 가까운 태양이 바다를 반짝이게 만든다. 매일 보아도 행복하다. 용호동에서 해운대 방향으로 광안대교를 올라가면, 수평선과 다리의 난간이 등대를 꼭짓점으로 한 삼각형을 이룬다. 쭈욱 달리면 삼각형이 점점 작아지면서 꼭짓점 등대를 지나치고 멀리 화려한 마린시티가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에 내가 하늘나라에 간다면 무엇이 슬플까? 인생은 고통이다. 삶은 말할 수 없이 고단하다. 이 세상은 악하고 슬픔과 고통이 가득하다. 사실 나는 이렇게 힘든 세상 말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 더 이상 눈물과 고통이 없는 그곳에 얼른 갔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만 아니면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 간다면 나는 아이들을 계속 볼 수 있는 거잖아. 그럼 나는 괜찮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이 땅에 사니까 나를 볼 수 없잖아. 엄마 없이 이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어떤 걸까. 그건 너무 슬프잖아.’
‘하나님, 저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돌봐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언제나 지키시고 돌봐주시는 것 너무나 잘 알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저희는 연약한 인간이라서 그걸 알아도 물리적으로 옆에 없으면 힘들어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없잖아요. 아주 가끔밖에 못 느끼잖아요. 그걸 느끼려면 참 힘들잖아요. 다 아시잖아요. 저는 힘든 게 너무 싫어요. 우리 아이들이 힘든 건 더 싫어요. 너무 슬퍼요.’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기쁨이 이 땅에서의 이별을 감당하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교회에 도착했다.
예배를 드렸다. 찬양을 하는데, 지나온 내 삶의 어려움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서러웠다.
‘하나님, 지금까지 편하게 살아본 적도 없는데, 이제 암까지 걸리네요. 하나님 뜻이 있으시겠지요. 그런데 그 뜻이 뭘까요? 그래도 하나님 함께 하신다니까 저는 괜찮겠지만, 이제 이 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우리 아이들 잘 돌봐주실 거죠?’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주셨다. 내가 부탁한 기도 제목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한 달에 천명이 넘는 환자가 예약되어 있는데, 그 환자들을 봐줄 사람이 있도록 해달라는 것, 둘째는, 우리 아이들이 힘들거나 마음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나의 삶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그 새 생명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었다.
S 양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S 양은 두 달 전에 유방암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그 주부터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한주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나오고 있다. 우리는 매주 같은 줄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는다.
집에 돌아와 골방으로 들어갔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많은 사람들도 생각났다. 어제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만약 내가 아파서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나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만약 내가 반드시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 그중에 내가 아픈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하나님, 저는요, 만약에 아이가 아팠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남편이 아파도 저는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희 가족 중에서 누가 아파야 한다면 제가 아픈 게 제일 쉬워요. 제가 아파서 너무 다행이에요. 제가 아파서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한 찬양이 생각났다.
널 위해
아침 해가 누굴 위해 뜨는지
부는 바람은 누굴 위해 부는지
저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바다는 누구를 위해 있는지
지저귀는 새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무엇을 속삭이는지
밤하늘 가득한 저 별은 누굴 위해 반짝이는지
이 모든 것 다 널 위한 주님의 사랑
이 모든 것 다 널 위한 사랑의 노래
주께서 널 위해 만물을 지으시고
널 향한 사랑을 전하시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사랑이
늘 너를 감싸 안고 있음을
날마다 뜨는 저 태양처럼
변함없는 주의 사랑이
미국의 살던 집이 생각났다. 부엌 창문으로 뜨던 아침 해, 식탁 앞 숲에 불던 바람, 출근길에 지저귀던 새소리, 봄바람에 흔들리던 나뭇잎, 끝없이 펼쳐진 동부의 바다, 새벽기도 가는 길에 온 하늘을 빠알갛게 물들이며 뜨던 해, 애리조나 사막에서 보았던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던 것들이다. 나에게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신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나를 감싸 안고 계셨다. 눈을 감으니 마치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눈앞에 별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그 찬양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래, 이게 미국에서 그 시간 동안 생긴 암이란 말이지. 그래, 그럼 하나님이 주신 거야. 하나님이 주신 거면 나한테 좋은 거야. 이건 나한테 좋은 일이야.’
이제 쏟아지는 눈물은 슬픔이나 두려움이 아닌 감사의 눈물이었다.
히즈윌의 '널 위해' 찬양 링크입니다.
https://youtu.be/dwnjxyNEN00?si=-DXxk3Bk5Ut7L7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