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
잘 쓴 글을 본다는 건 꽤나 고역이다.
내 글들 중에도 어쩌다 하나 나도 좋아하는 글이 나오곤 하지만, 대부분은 수정에 수정을 거치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 글을 내려놓는다. 그래, 나는 할만큼 했다. 더 수정하면 글을 망치고 말거야. 벌써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잊어버렸는 걸. 합리화하면서 마무리한 글들은 내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투영하지 못한 채 공기 중을 부유한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생경하다. 내가 이런 글을 썼던가. 그리고 부끄럽다. 내 글의 한계는 여기까지일까.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은데. 그래도 브런치 작가는 되었으니 아예 멍청한 글을 쓰는 건 아닐거야. 그렇겠지? 스스로도 설득하지 못하는 말을 되뇌이며 다시 또 브런치를 연다.
이슬아 작가는 워낙 젊은 세대에게 인기있는 에세이 작가기도 하고, 또 평소 활용하는 예스24 북클럽에 세계 여성의 날 기념으로 그녀의 책이 올라와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다운로드 받았다. 복잡한 지하철 퇴근길에 우연히 난 자리를 하나 차지해 앉은 여유 덕분이었을까. 오늘은 유튜브보다는 글에 손이 갔다.
시작할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하나의 글을 읽자마자 책을 덮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필경 질투 때문일 거다. “엄마는 내가 너무 쉽다고 했다. 세상이 어려우니까 나라도 쉬우면 좋지 않을까”라니.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을까. 차분하면서도 재밌게 읽히는 글, 세상을 그리는 어여쁜 단어들. 글을 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고 재능있으며 열심히 노력했기에 나온 결과물이었겠지만, 연재노동자로써 시간의 압박이 있었을텐데도 이런 글을 꾸준히 써낼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내 글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커녕 내 마음도 쉽게 울리지 못하는데, 그녀의 에세이는 힘이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다시 책을 펼쳤다. 글이 흥미로우니 손에서 놓지는 못하겠고, 못난 마음엔 좋은 글에 대한 애꿎은 질투만 솔솔 피어났다. 주업인 글쓰기를 하기 전 화살기도를 한다는 그녀처럼 나도 오늘은 글을 쓰기 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기도한다. 좋은 글을 보고 못나게 질투하기 보다는 자양분으로 삼아 제가 성장하게 해주세요. 제 글이 누군가의 시간을 뺏기보다는 즐거움이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