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너의 모든 것 (YOU)>, 그리고 나의 술주정
아산서원에서의 1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저녁 6시만 되면 어둑해지던 추운 겨울날, 몇몇 친구들끼리 근처에 나가 술을 거나하게 걸쳤다. 그 때의 나는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펑펑 울었다. 거기까지면 딱 좋았으련만, 기숙사에 돌아와 룸메이트들을 붙잡고 온갖 주정을 다 부렸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Lucky 노래를 불러대면서 나는 Lucky한 사람이 아니라는 둥, 힘들다는 둥 울고불고 난리를 피운 것이다. (왜 하필 Lucky 노래에 꽂혔던 걸까?) 그렇게 행동에 자제가 안 될 정도로 술을 마셨으니 주정부린 기억도 잊었으면 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니 잔인하게도 드문드문 떼어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주 자발적으로 흑역사를 만들었구나!
나는 유독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 기질검사를 통해 밝혀진 명확한 특성 중 하나다. 그리고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약점이나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뭐든지 잘하는 똑부러지고 만능인 사람을 꿈꾼다. 게다가 승부욕도 강하다. 때문에 술을 먹고 주정을 부린다거나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은 내가 나에게 바라는 가장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온갖 주정을 부린 다음날 나는 스스로가 쪽팔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언니 근데 나는, 어제 언니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여서 더 좋았어
이 날이 더 강렬하게 남은 이유는 사실 하우스메이트가 말한 이 한마디 덕분이었다. 지나가는 말들이지만 유독 마음에 와닿는 힘있는 말이 있는데, 그날의 나는 이 말이 참으로 좋았다. 완벽하고 괜찮은 모습만 보여주고자 했던 내 욕심에 금을 가게 했고,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완벽함이랑은 거리가 먼 것도 싶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모든 것>에서 조는 상담을 받으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상담사: 뭐가 이해 안 되는데요?
조: 사랑요.
상담사: 그건 70억 인구가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사랑을 다 이해하면 난 백수 되게요?
사랑은 저마다 독특한 거예요. 지문이나... DNA나, 첫경험 때 들은 노래처럼
어떤 이들은 사랑이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어떤 이는 사랑에 타고났고 어떤 이는 탐색 중이죠.
사랑과 호감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비상식적인 조의 사랑방식보다도 나는 그가 다시 벡을 사랑하는 이야기의 서사에 더 눈길이 갔다. 벡과 헤어진 후 조는 옆집 여자인 캐런과 사귀게 되는데, 그녀는 누가 봐도 괜찮고 좋은 사람이다.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옆집 여자를 위해 자기 시간을 희생할 정도로 마음 따뜻하며, 의존적이기 보다는 주체적이다. 반면 조의 전 여자친구인 벡은 툭하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무너지고 힘들어한다. 불안했던 가정사 때문에 애정결핍 성향도 자주 보인다. 오죽하면 상담사에게 조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레날도(=벡)은 온갖 골칫거리에 절 끌어들였는데 브래드(=캐런)는 뒤치다꺼리할 일이 전혀 없어요.
하지만 결국 조는 벡에게 다시 돌아간다. 사랑의 시작과 지속은 상대방이 얼마나 완전하고 완벽한가에 달려있지 않다. 인간적인 성숙함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미성숙함에 끌리는 사람도 있다. 무엇인가를 잘 해내는 데에 호감을 느낄 수도 있는 반면 어딘가 약간 허술한 면에서 가슴이 떨릴 수도 있다. 사랑의 불가해함은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동안 사랑과 사람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만을 들이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