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고 힘든 세상살이에서도 난 너 덕분에 행복을 찾아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 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 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 26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김초엽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첫번째 단편선이다.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는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는 날 지구로 순례를 떠난다. 모든 순례자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왜 이 행복한 마을로 돌아오지 않고 지구에 남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소설에 묘사된 지구가 2020년의 우리보다 훨씬 장밋빛이라면 순례자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책 속 배경이 된 미래의 지구는 차별과 분리주의가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소위 가진 자들은 인간 배아 디자인과 태생 시술을 통해 아름다운 외모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우월하게 태어난다. 이러한 개조인들과는 달리 시술을 받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지능이 낮거나, 외모가 흉측하거나, 키가 작고 왜소하거나, 병들어 있다”. 순례자들이 살던 마을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러한 비개조인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비개조인들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었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소설들은 SF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람과 사랑에 대한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이 오히려 짙게 배어있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자로 유명한 테드 창의 SF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미래에 정말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과학과 기술과 언어에 대해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점에 감탄했다면, 그녀의 글은 미래와 외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오히려 현재를 더 깊이 있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질문들:
우리가 ‘결점’으로 치부하고 차별하는 대상들이 진짜 결점인 것일까?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인간 배아의 희귀병 혹은 장애를 미리 발견할 수 있다면, ‘더욱 완벽한 배아’에게 삶을 선물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존재에게 ‘살아갈 권리’와 ‘태어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초엽 작가의 이러한 시선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순례자들이 왜 지구로 간 뒤에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에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 26쪽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는 인간의 명성과는 달리, 때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오직 소중한 사람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곤 한다. 가족, 연인, 친구의 따뜻한 품 안에서 우리는 계산과 현실을 잊어버린다. 난 이런 사람 냄새가 좋다. 우리는 서로를 아껴주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강해진다. 친구의 신뢰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고, 가족의 응원은 세상의 밝은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연인의 애정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게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바보같은 선택일 수 있지만, 그것이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난 언제나 바보같은 선택을 내릴 준비가 되어있다. 선택의 결과가 끝내 나를 괴롭힐지라도, 나의 시선에서는 가장 옳고 행복한 선택일 것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