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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끝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 마드리드의 아침

지난밤 새벽 2시가 넘어 잠들었는데 오전 7시부터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동한 다음 날은 항상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침대에서 한참 뒤척이면서도 '그래도 마드리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하루인걸'하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 외출 준비를 했다. 


친절한 집주인 사무엘은 자기 아침으로 사면서 함께 샀다며 내 몫의 크로와상까지 곱게 포장해 챙겨주었다. 커피 내리는 법도 손수 알려주며 우유도 있으니 카페 콘레체를 만들어 먹어도 된다고 냄비까지 꺼내 주고는 서둘러 출근을 했다. 따뜻한 커피 한잔과 갓 구운 달콤한 크로와상의 조화는 하루를 시작할 힘을 주었다.

화이트와 나무 소재의 조화로운 인테리어,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아주 오래된 건물을 현재의 시간과 연결해주는 듯했다. 준비를 마치고 오래된 계단을 내려와 1분 거리의 성당으로 향했다.  


| 11시 미사 @산 히네스 성당

가까운 곳에 성당이 있어 참 감사했다. 마침 문이 열려 있어 바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우선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앉았다. 무사히 40여 일의 시간들을 보내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렸다.

산 히네스 성당(Iglesia de San Ginés)은 아를의 순교자 기네스(Gines) 성인에 봉헌된 곳으로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다. 9세기 무렵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17세기에 재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이후 세 차례 화재 등으로 다시 소실되어 20세기에까지 모습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17세기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El Greco)가 그린 '성전의 정화(The Purification of the Temple)'가 유명하다.

입구의 세례대를 지나면 중앙 제대를 둘러싸고 수많은 경당들이 있었다. 마리아와 요셉, 아기 예수님의 성가족과 예로니모 성인,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조각상은 17세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를 바라보는 검은 의상의 성모님, 절망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 유다 타대오 사도의 조각 아래에는 곱게 접어 밀어 넣은 기도 쪽지들이 보였다.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 유다 타대오 사도는 이곳에서는 도끼를 든 모습이었다.  

성당을 쓱 한 바퀴 돌고 나니 벌써 11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 몇몇이 함께했다. 스페인에서 드리는 마지막 미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간질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 남은 상황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돌아가서도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를 살아낼 수 있길 간절히 청했다. 미사를 마치고 다시 성당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성전을 정화하는 예수님의 실감 나는 그림을 지나면 단상 위의 예수님과 성모님 상을 볼 수 있다. 유난히 이곳 두 분의 그윽한 눈빛과 부드러운 손짓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예수님 발을 만질 수 있었는지 유리 너머로 보이는 발 밑부분이 반질반질했다. 만질 수는 없었지만 그 아래에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항상 함께 하겠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 다시 길을 나섰다.  


| 마드리드의 점심 @한식당's 맥주와 김밥

방향 없이 걷는데 멀리서도 태극문양이 눈에 띄었다. '가야금' 한식당이었다. 며칠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도 창가에 전시된 '김밥'에 꽂혀 내 몸은 어느새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간단하게 김밥 한 줄과 맥주를 주문했는데 밑반찬까지 깔끔하게 한상 가득 차려졌다. 

벽에는 한국 연예인들 사인이 가득했고 한국에서 온 축구팬들과 단체 관광객들까지 식당을 가득 채워 사방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서빙하는 직원들만 스페인 사람이었는데 심지어 그들도 한국어로 주문을 받았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교민 친구들과 함께 삼겹살에 된장찌개를 즐기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 와있는 것 같았다. 주차장을 찾느라 헤맸다는 이야기, 뒷자리의 함께 여행 온 엄마와 딸의 대화, 앞자리 아저씨 축구팬들의 이야기,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들과 함께 재밌게 식사를 마쳤다. 


김밥 한 줄과 맥주 한잔에 모두 11.5유로, 우리 돈으로 15,000원 정도, 지금까지 먹어본 가장 비싼 김밥이 아닐까. 계산하는데 자부심 넘치는 주인아주머니는 김치도 한국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직접 만드신다며 또 오라고 인사해주셨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겠다고 인사를 하고 거리로 나왔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

큰길을 따라 걸었더니 오래되어 보이는 둥근 아치 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마드리드 거리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마요르 광장으로 들어가는 문은 10개나 있다. 마요르 광장은 원래 마른 호수였다.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던 곳을 16세기에 본격적으로 광장으로 조성해 17세기 펠리페 3세 때 완성했다. 수산시장, 베이커리 길드, 정육 등이 유명했지만 이후 종교재판 시절 공개처형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가면무도회, 왕실 결혼식과 대관식 등의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큰 화재가 세 번 난 것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건축가들에 의해 20세기까지도 보수가 이루어졌다. 19세기까지 투우 경기가 열렸으며 아빌라의 테레사, 이시도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등의 성인이 시성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크고 작은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고 마드리드의 수호성인 이시도르의 축일에 맞춰 매년 큰 축제가 열린다.

5월 15일 성 이시도르 축제를 일주일 앞두고 필립 3세의 동상 뒤로 무대까지 설치되며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미 축제가 시작된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11세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이시도르(Isidore) 성인은 농부이자 평신도로 가난했지만 '기도하고, 또 일하라'는 가르침과 나눔을 평생 실천하며 살아갔다. 전승에 따르면,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그가 판 우물에서만 물이 나왔다고도 한다. 중병에 걸린 필립 3세가 이시도르의 전구로 병이 치유되면서 그를 성인품에 올리도록 간청했다고 전해진다. 마드리드에서는 매년 그의 축일에 큰 축제를 열고 성 이시도르 성당 공원의 샘물을 마시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마요르 광장을 한 바퀴 돌고 근처의 그 유명한 산미구엘 시장으로 향했다. 


#산미구엘 시장[Mercado de San Miguel] 

최근에 세련되고 깔끔하게 조성되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시장, 혹은 백화점 식품층 같은 느낌이었다. 하몽, 해산물, 과일, 치즈, 온갖 종류의 먹을거리들이 있어서 보는 것만 해도 재미있었다. 한편에는 빠에야, 타파스 등의 요리와 맥주, 와인을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바(bar)까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한 끼를 해결했다. 술 한잔에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과 식재료를 사러 온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난 또 이 혼란스러움을 피해 발길을 돌렸다. 마드리드 왕궁으로 향하는 길에 또 다른 광장을 만났다. 


#비야 광장[Plaza de la Villa]

비야 광장은 합스부르크 시대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둘러서고 있다. 17세기에 완성된 옛 시청사 건물(Casa de la Villa)과 고딕 양식의 15세기 건물 루하네스 저택(Casa de los Lujanes), 16세기의 시스네로스 저택(Casa de Cisneros)이다. 시스네로스 저택은 현재 마드리드 시장의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6세기 스페인 최고의 해군사령관으로 불리는 알바로 제독의 동상(Don Alvaro de Bazan)도 보인다.

마드리드 왕궁 주변의 예스러운 건물들에는 여러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었다.

사크라멘토 성당과 알무데나 대성당

비야 광장에서 한 블록 지나 사크라멘토 성당에 이르면 알무데나 대성당의 화려한 모습이 나타난다.

'사크라멘토 성당(Iglesia del Sacramento; Cathedrale de las Fuerzas Armadas)'은 17세기의 Bernardas 수녀원 건물로 18세기에서야 완성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수녀원 건물들은 철거되고 스페인 국방부의 '군 성당'이 되었다. 스페인 국가 예술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Cathedral de la Almudena]

알무데나 성당 외경과 정문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은 마드리드 왕궁 바로 옆에 위치해있는데 그 화려함에 있어서 밀리지 않는다.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la Real de la Almudena)'은 중세 말 이곳 근처의 작은 성당이었던 Santa Maria de la Almudena를 확장하면서 시작되었다. 8세기, 아랍인들이 이곳을 정복하기 전에 벽에 숨겨두었던 성모상을 11세기 알폰소 6 세왕이 다시 마드리드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아랍어로 '알무데나(al-mudayna)'라 불리는 모스크(이슬람 사원) 벽에서 발견하고 그 터에 성당을 세웠다. 정치 문제, 내전, 재정부족 등의 이유로 19세기에서야 완성되었고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봉헌되었다.

청동으로 된 인상적인 정문 왼편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있다. 

알무데나 성당 내부

오랫동안 지어졌고 20세기에 들어와서까지 개보수가 이루어진 성당이라 그런지 내부의 분위기는 오랜 세월을 담고 있는 성당이라기보다는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특히 화려한 색감의 천장과 성화, 스테인드글라스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알무데나 성모님

알무데나 성모님 제대에는 손을 얹고 기도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바로 뒤에 미사가 있어서 짧은 시간 동안만 올라가 기도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내 앞에 있는 할머니가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을 흘리시며 너무나도 간절히 기도하셔서 내 기도에도 '그분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기도가 끝나고서도 한참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성모님을 바라보는 그 눈빛과 눈물로 얼룩진 눈가, 그리고 내려올 때 지으시던 밝고 평안한 미소가 스테인드글라스 빛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빛났다. 바로 내 뒷 차례까지 기도를 마치고 나니 성모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통제되고 바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운이 좋았다. 

알무데나 대성당 또 다른 제대

성당의 구조가 특이하게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어서 제대와 신자 석도 각각의 방향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쪽에서 미사가 진행되자 사람들이 다들 또 다른 제대로 옮겨갔다. 나도 신자석에 앉아 잠시 쉬다가 천천히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알무데나 성당 내부의 다양한 경당들

제대를 둘러싸고 수많은 경당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알무데나 성당 앞

성당 정문 앞 벤치에는 성경말씀과 함께 '노숙자 예수(Homeless Jesus)'가 누워있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내가 지나쳤을 수많은 예수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에서부터 살아내는 것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했다.

알무데나 성당 지하묘지

성당 입구에선가 알무데나 대성당의 지하 묘지 팸플릿을 챙겼는데 결국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곳 지하에는 엄청난 규모의 묘지가 있다. 왕실의 묘지로 사용된 곳이다. 지난해 말에는 독재자 프랑코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이 이곳에 모시기를 요청했지만 소송이 기각되었다. 결국 그는 국립묘지격인 마드리드 북쪽 '전몰 용사 계곡'에 40여 년간 있다가 시 외곽 주립 묘지에 안장되었다.  


#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 de Madrid]

알무데나 성모대성당 옆에는 화려한 백색으로 빛나는 마드리드 왕궁이 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줄을 서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13유로를 지불해야 했다. 

마드리드 왕궁과 아르메리아 광장 전망
'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 de Madrid)'은 9세기 이슬람 요새가 있던 자리였는데 필립 2세가 왕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8세기 크리스마스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필립 5세가 이탈리아 건축가에게 '베르사유 궁전'처럼 지어달라 의뢰했고 그가 중간에 사망하자 제자들이 공사를 이어받아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현재 왕실 가족은 교외에 위치한 별도의 궁전에 거주하고 왕실의 공식 행사가 있을 때에만 사용된다. 

우선 티켓을 사서 왕궁 앞 아르메리아(Armeria)광장에만 들어서도 도심 속 광화문 광장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평화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드리드 왕궁 실내
천장 프레스코화에는 콜럼버스가 스페인 이사벨 여왕 부부에게 신대륙을 바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고야 등 거장들의 회화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을 본 딴 곳, 도자기 방, 전용 성당, 연회장 등 3천여 개의 방중 20여 곳을 관람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방들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눈으로만 담아야 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느꼈던 것처럼 지나친 화려함은 조금 불편했다. 알무데나 대성당 앞의 '노숙자 예수'가 자꾸 떠올랐다. 

마드리드 왕궁 안뜰
마드리드 왕궁과 왕궁에서 본 알무데나 대성당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과 섞여 관람하게 되었는데 너무 크게 들려오는 소리들과 온라인 쇼핑몰 포즈를 지으며 수백 장씩 사진을 찍고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방들을 모두 다 돌아보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시 걸을 힘을 채우기 위해 광장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쉬어야 했다.


#마드리드 왕립극장[Teatro Real]

왕립극장(Teatro Real)과 오리엔테 광장

벌써 시간은 오후 5시에 가까워졌고 몸을 추스르면서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보고 들어가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고야의 프레스코화를 보기 위해 '성 안토니오 성당'으로 향했다. 구글 지도는 마드리드 왕궁에서 30분 정도로 예측을 했지만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가서 그런지 내 발걸음으로는 결국 1시간이나 걸렸다. 


우선 왕궁에서 나오면 맞은편에 왕립극장(Teatro Real)과 오리엔테(Oriente) 광장이 보인다. 단체 관광객들이 광장 안의 필립 4세 동상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광장 한쪽에는 11세기 이전 이슬람의 망루가 남아있고 왕립극장 내부를 둘러보는 1시간짜리 투어도 있다고 하지만 욕심내지 않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사바티니 정원[Sabatini Gardens]

마드리드 왕궁 정원, 사바티니
마드리드 왕궁 뒤편으로는 '사바티니 정원(Sabatini Gardens; Jardines de Sabatini)'이 있다. 프랑스 풍의 이 정원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Francesco Sabatini)에서 따왔다. 마드리드 왕궁 부속 정원인데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대중에 공개했다.  

이곳 정원에서 보면 마드리드 왕궁이 베르사유 궁전을 재현하려 했다는 것이 좀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베르사유 궁전 앞의 호수와 정원들을 떠오르게 했다. 


이때부터인가 바람이 거세게 불어 흙먼지들이 회오리를 치며 나뭇잎들을 이리저리 옮겼는데 그때마다 꽃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고 날렸다. 코가 간질간질해져서 계속 재채기를 하며 걷고 또 걸었다. 


| 고야의 프레스코화를 보러 먼 길을 떠나다

그런데 계속해서 걸어도 안토니오 성당은 나오지 않았다. 18-19세기의 'Puerta de San Vincente 기념문'을 지나 거리의 풍경들이 바뀔 때쯤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했나' 후회가 몰려왔다. 중심지를 벗어나 인적 드문 길이 계속되었다. 중간에는 쉴 곳도 마땅치 않았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성당이 아주 소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산 안토니오 데 라 플로리다 예배당[Ermita de San Antonio de la Florida]

안토니오(Anthony) 성인에게 봉헌된 이 작은 예배당은 '고야의 판테온(Museo Panteon de Goya)'으로 불리기도 한다. 179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798년에 완공되었다. 완공되던 해에 스페인의 궁정화가이던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가 카를로스 4세 왕의 명으로 천장에 프레스코화 '성 안토니오의 기적'을 그렸다. 1905년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고 1919년에는 고야의 유해가 모셔졌다. 보존을 위해 1928년 바로 옆에 쌍둥이 성당(Royal Chapel of St. Anthony of La Florida)을 세워 성당 기능을 이전했다. 1987년 소유권이 시로 넘어가면서 벽화 손상이 심했는데 복원작업이 2005년 마무리되었다.

조심스레 입구로 들어서면 안내하시는 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입장료는 별도로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면서 티켓과 안내책자를 건네주었다. 작품을 보기 전에 옆의 작은 경당에서 이곳의 스토리를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많아서 기다려야 했다.

'성 안토니오의 기적'은 성인이 살해된 사람을 살려내 범인으로 몰리던 그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었다는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과 천사들의 모습이 돔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곳의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 귀족 집안 출신으로 12-13세기에 이탈리아 파도바(Padova)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가톨릭의 프란치스코회 신부이자 설교가, 교회학자이다. 그는 뛰어난 설교와 수많은 기적 이야기로 유명하다. 따라서 그림에서는 잘린 다리를 회복시켜주거나 성체 앞의 노새를 무릎 꿇게 하는 모습, 물고기들에게 설교하는 모습 등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그의 사후에 혀만 썩지 않아 따로 옮겨 보관되었다고도 한다. 17세기부터는 안토니오 성인에게 기도하면 잃어버린 물건이나 사람을 찾아준다는 믿음도 생겼다.

프레스코화가 있는 어둑한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제대 앞 바닥에 비스듬히 새겨진 고야의 이름이 눈에 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오직 한 곳을 향한다. 모두 고개가 꺾어질 듯 쳐들고 천장 돔을 본다. 동그란 돔을 따라 한 바퀴 빙 돌면서 프레스코화를 올려다보면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듯 빛난다. 각각 인물들의 표정, 포즈, 입고 있는 옷들과 그 색감이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눈으로만 담아야 해서인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림과 하나가 되었다. 앉아서 올려다볼 수 있도록 사방에 벤치와 의자가 놓여있고 천장의 그림을 반사시켜 고개를 들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는 거울들도 놓여있었다. 그래도 다들 바닥에 앉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고 천장을 한참 올려봤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단체로 온 것 같았는데 그들은 열심히 천장과 스케치북을 번갈아보며 살아있는 그림을 자신의 스케치북에 옮겨댔다. 


문 닫을 시간 가까이 한참 앉아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환한 밖으로 나오니까 현기증이 났다. 바로 옆 쌍둥이 성당으로 들어갔다. 


#Royal Chapel of St. Anthony of La Florida

마드리드 안토니오 성인 성당 내부

제대 십자가 뒤로 안토니오 성인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반겨주었다. 왼쪽 벽에 붙어있던 '자비의 예수님' 성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조용히 기도하는 할머니와 함께 의자에 앉아 쉬며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는 길에 실컷 마신 꽃가루로 시작된 재채기와 콧물이 계속됐고 돌아가야 할 길이 막막해 머리까지 아파왔다. 


| 다시, 숙소로 가는 길?!

구글맵이 알려주길 숙소까지는 2km가 좀 넘었다. 예상시간은 30분, 하지만 아까 이곳 안토니오 성당으로 오던 험난했던 길이 떠올라 두려워졌다. 이것저것 검색해 보는데 가까운 위치에 '데보드 신전'과 '스페인 광장'이 눈에 띄었다. '오늘이 마드리드 마지막'이라는 욕심은 '한두 곳 들러 쉬엄쉬엄 가면 괜찮겠지'라는 계획을 만들어 냈다. 성당 안으로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피해 밖으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성당은 도심 외곽 쪽에 있어서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고 분위기도 으슥했다. 성당에서 나온 관광객 5명 정도를 따라서 거리를 두고 함께 걸었다. 공원을 통과해 마주친 첫 번째 난관은 기찻길, 지도를 확대해보니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그라피티가 가득한 이곳을 건너지 않으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 성당부터 따라 걸었던 사람들과 이곳까지 함께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기찻길을 건너면 공원묘지와 예술학교가 나오는데 이쪽에는 고야를 기리는 기념비가 쓸쓸하게 서있다. 노숙인 쉼터까지 지나면 또 다른 큰 공원이 나오는데 문이 닫힌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 울창한 나무숲길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여기부터는 곳곳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서둘러 빠져나오고 나서야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공원이 끝나고 길 하나를 지나면 또다시 공원이 펼쳐졌다. 


#마드리드 언덕 위, 이집트 신전?!

경사면을 올랐더니 엄청난 인파와 엄청난 전망이 나타났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바람도 거셌다. 바람이 흙바닥에 작은 회오리를 만들어댔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가봤더니 저 멀리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 첨탑과 마드리드 왕궁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공원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이 바로 이집트에서 옮겨온 '데보드 신전'이다.  

이집트에서 옮겨온 데보드 신전
'데보드 신전(Templo de Debod)'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이집트 나일 강변에 있던 것을 1968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신전이 서 있던 지역에 댐을 건설하면서 유네스코가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스페인이 재정적, 고고학적 지원을 하면서 이집트 정부가 이 신전을 스페인에 기증했다. 원래 파라오가 신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으로 수세기 동안 증축되었지만 6세기 무렵부터 폐허가 되었다.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4년여간의 보수를 거쳐 1971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원래는 물까지 흐르게 해 놓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물에 비친 신전은 볼 수 없었다. 내부에는 신전의 재건축 단계들을 설명하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저녁이 되면서 점점 더 바람이 심해지고 쌀쌀해져서 컨디션이 나빠져서 나는 줄을 서는 것 대신 벤치에 좀 앉아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스페인 광장과 그란비아 거리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정말 마지막(?!)'으로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만 들러 가야겠다며 광장을 향했다. 데보드 신전과 광장 사이에는 아주 큰길과 고가가 있었는데 여기서 길을 헤매는 바람에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20분 넘게 돌아갔다. 발목이 다시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스페인광장 일대

고생 끝에 도착한 스페인 광장은 설상가상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볼 수도 없었다. 세르반테스 기념동상을 구조물들 너머로 볼 수 있었지만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스페인 광장(Spain Square)' 중앙에는 스페인의 대표작가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300주기에 세운 탑이 있다. 그 앞에는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의 등장인물들, 돈키호테와 로시난테, 산초의 동상이 서 있다. 또한 이곳부터 마드리드 최고의 번화가 그란비아가 시작된다. 

'그란비아(Gran Via)'는 '큰길'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스페인 광장부터 약 1.5km에 달한다. 1910년부터 10년에 걸쳐 주변 도로와 건물들을 철거하고 만들었다. 한쪽으로는 유럽풍 건물들이 또 다른 편으로는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으며 고급 상점과 호텔, 레스토랑, 극장, 쇼핑센터들이 밀집해 있다.

상점, 사람, 차 등이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다리도 너무 아프고 재채기와 콧물은 계속되고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산미구엘 시장에 들러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가려다 일단 숙소로 향했고 저녁 8시가 다 되어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뻗었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진통제를 빈 속에 집어넣고 한 시간 정도를 쉬었다. 이제 속도 쓰렸다. 고민고민하다 10시 다 되어서야 밥을 먹으러 다시 나왔다. 


| 마드리드의 저녁, 맛집 검증 결과는?

집주인 사무엘의 맛집 노트에서 고른 일본 라멘집이었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내 또래 젊은이들이 익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면서 맥주도 한잔씩 즐기는 현지 맛집 같았다.


감기 기운에 뜨끈한 국물을 먹고 싶어서 라멘을, 극도의 배고픔이 더해져 가라아케(닭튀김)까지 주문했다.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내일 또 비행기까지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정인데 몸 상태가 더 안 좋아 질까 두려워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렇게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너무 놀랐다. 라멘의 느끼함에 한 번, 가라아케의 많은 양에 또 한 번 놀랐다. 닭은 너무 짜고 라멘은 너무 느끼했지만 배고픔이 좀 더 컸는지 허겁지겁 먹고 나오는데 배가 아플 정도였다. 체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산책이 시작됐다.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끌며 마드리드 야경투어에 나섰다.


| 마드리드 야경투어

#솔 광장[Puerta del sol]

자연스럽게 숙소 근처의 솔 광장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밤거리처럼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로 활기찼다.

솔 광장(Puerta del sol)은 '태양의 문(Gate of the Sun)'으로 불리며 16세기까지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중세시대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맞서 스페인 시민들이 싸웠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는 카를로스 3세의 동상이 지키고 있으며 분수대, 0 킬로미터 지점, 태양의 문 시계탑 등이 있어 관광객과 현지인들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고 있다.   
솔 광장의 밤을 잊은 사람들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들여다보니 율동인지 에어로빅인지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몇몇이 불려 나가 춤을 배우고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노래와 춤을 따라 했다. 밤을 잊은 솔 광장은 낮보다 매력적이었다. 

솔광장과 지하철입구, 태양의 문 시계탑

왕립 우체국과 정부청사 건물에는 '태양의 문 시계탑'이 밤에도 환하게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앞에서도 사람들이 바닥을 보며 더러는 눕기도 하고 이리저리 각도를 맞춰보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마드리드 0킬로미터 지점

0킬로미터 지점

바닥에 표시된 0km 지점, 'Kilometer Zero'이다.

'0킬로미터 지점'은 거리를 잴 때의 기준, 중심이 되는 곳으로 보통 각 나라의 수도에 있다. 우리나라의 '0킬로미터 지점', 도로원표는 서울 광화문 교차로 중앙에 있다. 마드리드의 0킬로미터 지점 표시석은 2002년 광장을 보수하면서 실수로 틀어졌다가 2009 년에 수정되어 올바른 위치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곳을 밟으면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올 기회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솔 광장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품은 곳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이다. 


#솔광장의 곰과 마드로뇨나무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
스페인어로는 'El Oso y el Madroño', 영어로는 'Statue of the Bear and the Strawberry Tree'다. '마드로뇨(Madroño)'는 한국어로는 산매자나무로 해석되는데 예부터 이 지역에 산딸기와 곰이 많았다고 한다. 13세기부터 곰과 산딸기의 모습이 지역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이 조각상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이곳에도 곰의 발 뒤꿈치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인증샷을 찍었다. 솔 광장 쪽으로 사람들이 줄을 섰길래 나는 그냥 뒤편으로 돌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벌써 밤 11시, 사람들도 너무 많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숙소로 돌아갈까 망설이는데 또다시 내 안의 목소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들어갈 거야?! 지금 아니면 언제 봐?!' 마드리드의 첫날밤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를 찾느라 '다음 기회로' 미루었던 시벨레스 분수광장 쪽으로 가보고 싶었다.


#시벨레스 분수광장[Plaza de Cibeles] 

시벨레스 분수
시벨레스(Cibeles)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대지와 풍요의 여신 '시벨레(Cybele)'에서 온 것으로 시벨레스 분수 중앙에 18세기에 만들어진 그 조각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건물은 스페인의 문화센터(Centro Centro)와 우체국 건물로 전망대에서 보는 마드리드 시내 전경이 볼만하다고 한다.

건너편의 빛나는 건물은 스페인 은행(Bank of Spain), 이곳을 지나면 화려한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빌딩이 보인다. 보험회사 건물로 20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밤거리는 조명으로 새하얗게 빛났지만 솔 광장이나 시벨레스광장 부근 이외의 장소들은 문 닫힌 회사 건물들 뿐,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없어서 좀 무서웠다.  


솔 광장에서 시벨레스광장까지 10분 넘게 걸어갔다가 다시 그 길을 그대로 돌아와 솔 광장에서 숙소까지는 15분을 더 걸어야 했다. 돌아오니 자정이 가까워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10시간은 넘게 걸었던 마드리드의 고단했던 하루가 드디어 저물었다. 


| 마드리드의 마지막 밤

오늘의 흔적

오늘 내가 직접 걸어서 만든 흔적들은 또 헛웃음이 나게 만들었다. 이상한 순례길을 통해 배웠던 것들은 몽땅 잊고 '좀 더 많이' 보기 위한 욕심으로 가득 채웠던 하루였다. 내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욕심만 많이 부리던 예전의 내 모습으로 너무 쉽게 돌아간 것 같아서 씁쓸했다. 


다음 날은 마드리드 공항에서 오후 3시 반 비행기로 독일 뮌헨의 친구네 집을 찾아가는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소화제와 진통제를 먹고도 더부룩한 배와 욱신거리는 발목, 쉼 없는 재채기와 콧물, 펄펄 끓는 온몸의 열로 새벽 3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 드디어 독일 뮌헨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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