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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르도 Oct 05. 2024

친구를 보기를 '개'같이 하라

한 걸음 먼저

바람이 좋을 때 나는 혼자서 한강으로 산책을 나간다.

바람 부는 한강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의 피부를 무심한 마음으로 더듬으면 출렁이는 물비늘이 지난날의 기억들을 눈부시게 소환한다.     


그리움에 혼자서 미소 지으며 강변을 걷다 보면 문득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나는 끝내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사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오랜 벗들에게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왠지 다가서기가 어려워졌다.


그들의 분주하고도 미래지향적인 삶 안으로 뜬금없이 과거의 추억을 길어오려는 내 전화가 길 잃은 자의 엉뚱한 한가로움으로 생각되지는 않을지.

고민 한 번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을 친구들의 건강한 일상에 나 혼자 센티해졌다고 일시적이나마 불협화음을 일으키진 말자.

다짐 두 번에.


혼자서 뜨거워진 마음을 혼자서 식히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는 통화버튼 누리기에 매번 실패했다.     




빛나는 한강의 오후 (출처 네이버)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생 때부터 의형제처럼 가깝게 지내온 나의 오랜 벗 정환이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나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이 자식은 손가락이 부러졌나. 전화 한 번을 먼저 안 하네 “     


무슨 소리지? 이상하다...

 

우린 모두 직장인이 되어 바빠진 이후에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자주 통화를 하고, 쉬는 날이 달랐지만 좋은 날을 잡아 정기적으로 만나곤 했었.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자식이 낮술을 먹었나.     

전화를 끊고 나서, 핸드폰에서 통화목록을 검색해 보았다.

이럴 수가.

정환이와의 모든 통화가 <수신하기>로 되어있었다.     

. 나는 정말로 천벌을 받을 놈이로구나.      


늘 포용과 사랑을 받아오기만 하고, 먼저 다가서지 못했던 나 스스로가 한심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야 정환아>     

스마트함과 포용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정환이에게 이렇게 사과하면 그는 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위트 있게 상황을 수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우정이 지속해 온 세월이 적지 않아 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습관처럼 먼저 연락하지 않은 내 잘못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음을 나 스스로 헤아렸다.

정환이로부터 어떻게든 정죄받고 싶었다.  


< 내 성격이 원래 그래 >

이렇게 변명하던 나의 아집과 못난 관성을 이번 기회에 기필코 파쇄하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정환이를 비롯한 친구들과의 소통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혁해 내기로 작정하였고,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연락하는 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실효적인 방법론을 고민했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도솔이 와의 첫 만남의 기념일과 도솔이 생일날을 챙겨주듯이.

도솔이가 먹는 오리고기의 재고를 정기적으로 살펴 냉장고 안에서 동이 나기 전에 새롭게 매입 주문을 넣듯이.

그렇게 계획적으로 스케줄링하면 되는 일이었다.     


 개는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개는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만든다.
<  로저 카라스. 미국 야생동물 사진작가 >

나는 스마트폰 달력 앱을 켜고, 명절날의 10일 전 날짜마다 <정환이에게 전화하기>라고 입력했다. 이렇게 최소 10년 동안 정환이를 비롯한 나의 소중한 절친들에게 내가 먼저 연락하기로 맹세했다.

<동완이, 정교, 재석이, 윤영이, 재원이 그리고 정환이>     

내 인생에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보물들은 도솔이까지 모두 일곱이다.     

이들의 생일날까지 모두 다 챙기는 것은 무리이지만, 명절 전 안부 전화는 이제부터 반드시 내가 먼저 하리라.  


친구들 연락 스케줄. 달력 앱.


그렇게 역한 사이인데 전화통화 한번 먼저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의아해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친구들이 결혼한 이후로는 먼저 전화하기가 어색하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물어보고 싶다. 또 무슨무슨 콤플렉스에 해당하는 것인지. 쉽게 고칠 수 있는 인지치료 방법은 없는지.          


도솔이에 대한 사려 깊은 나의 관심만큼,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 주도적으로 먼저 다가설 것을 결심하고 나니 무언가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이 느껴져 안심이 되고 설레었다.     


그 이후로 한강에서 산책하다가 이따금 친구들에게 먼저 전화하는 날이면, 밝게 빛나는 한강의 오후가 유난히 더 아름답게 보였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서고, 통화 버튼을 그들보다 한 박자 빠르게 누르는 습관의 형성은 나의 내향적인 기질을 일상 안에서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나는 공원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을 만났을 때,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견주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공원에서 처음 만나는 강아지들과 견주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날들이 많아짐에 따라 동네 개들에게 나는 인기가 많은 동네 삼촌이 되었다.     

아울러 처음 만나는 낯선 반려견들과 성공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나만의 <첫인사하기 노하우>가 생기게 된 것은 덤이.      


공원에서 처음 만나는 반려견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나만의 비결은 바로 개들의 세계공용어인 <카밍시그널>을 사람인 내가 배우고 활용하려는 노력 가운데 깨우침으로 얻게 되었다.


나는 개들의 바디랭귀지인 카밍시그널을 사람과 개의 관계에도 유연하게 대입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생각이 전문 훈련사들의 생각과 동일함은 추후에 알게 되었다.    

 

사람 기준에서 사람 편한 방식으로 개들과 접촉하겠다는 고집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개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구나 쉽게 카밍시그널을 활용한 나의 <첫인사하기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개들과 더 자연스럽게 ‘대화’ 하기 위해서 개들의 공용어를 배우려는 노력은 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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