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밍시그널을 독학하며 내가 스스로 터득한 <처음 만나는 반려견과의 인사법>에 관하여 이야기해볼까 한다.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들을 공원에서 만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절한 접근방법을 몰라 그저 지켜보면서 꿀이 떨어지는 눈하트만 날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반려견과 인사 나누는 요령을 알고 있다면, 3분 안에 귀여운 강아지들과의 달달한 스킨십을 이루어낼 수 있다.
공원과 거리에서 처음 만난 개와 인사 나누고자 할 때, 마음속으로 그리던 다정한 스킨십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요령을 소개한다.
우선, 인사 나누려는 상대견이 유기견이 아닌 이상인사 나눌 때 개들은 늘 견주와 함께 있을 것이므로 상대견과의 인사는 그 둘 모두에게 하는 한 꾸러미의 인사가 될 것임을 염두에 둔다.
1. 먼저 견주로부터 상대견과의 인사 나눔을허락받기위하여천천히 다가선다.
상식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오로지 개를 만지지 위해 다짜고짜 손부터 뻗으면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엄마와 함께 나들이 나온 아이가 이쁘다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볼을 덥석 만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반려인과 지금 함께 산책하고 있는 반려견들은 모두 반려인의 네 발 달린 소중한 자식들임을 명심하자.
2. 견주에게 다가가 반려견의 품종을 묻고, 암컷(이하 여아)인지 수컷(이하 남아)인지 또한 물으며 관심을 표현한다.
질문하며 다가서는 방식은 처음 마주하는 견주에게 첫인사를 건네는 가장 자연스러운 접근방법이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최소 3m 밖에서, 살짝 성조를 높여 경쾌하게 말을 건네는 게 핵심이다.
"저 선생님 ~ 혹시 아이가 라브라도 리트리버 인가요?"
호칭은 오글거리지만 견주에게 처음으로 말 걸 때‘선생님’이 가장 무난하다.호칭의 다른 대안들을 떠올려보면, 돌고 돌아 ‘선생님’으로 최종 귀결된다.
이 첫인사용 질문은 가까이 ‘다가섬’의 목적이 다른 데 있지 않고, 반려견과 인사 나누기 위함임을 대면의 시작점부터 자연스럽게 알리는 데 있다. 접근의 목적성이 불명료한 상태에서 불쑥 다가가 기웃거리면 견주들은 낯선 이의 접근이 무슨 의도인지를 몰라 불안해 할 수 있다. 특히 다가서는 입장이 남성이고, 받아들이는 견주 입장이 여성인 경우에는 다가섬이 여성 견주에게 불안을 조장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아 네 리트리버 맞아요. 그런데 믹스예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견주들은 밝게 웃으며 대답해 준다.
“아 그렇군요 믹스인 줄 몰랐어요. 믹스여도 리트리버 귀티는 여전하네요”
간혹 믹스라고 선뜻 알려주는 견주에게 제대로 재답변하지 못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니, 믹스여도 이쁘다고 <A BUT B>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칭찬한다.
물론 나의 모든 칭찬은 진심이다.
‘믹스견’은 인간의 분류 강박에서 나온 하찮은 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속한 재답변의 타이밍과 자연스러운 표현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여자 아이 인가요? 참 예쁘게도 생겼네요”
조금 허술한 접근방식이지만, 남아인지 여아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에 나는 견주에게 ‘여아’ 인지를 먼저 묻는다. 남아를 여아로 착각하는 것보다 여아를 남아로 착각할 때 왠지 더 큰 실례를 범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기분 탓일 수 있다.)
여아로 먼저 물었다가 실제로 여아이면 점수를 따고, 반대로 남아라서 틀렸다면 그나마 덜 민망하다. 여아처럼 예쁘게 생겨서 오해했다는 유쾌한 변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별을 묻는 것은 견주의 반려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어 시답지 않게 접근한 것이 아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또한 개인적으로 여아로 판명되었을 경우에 남아인 경우보다 접근하는 입장에서 인사 나누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에 성별 정보를 얻으려고 질문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경험적으로 남아들보다 여아들이 이종(異種) 간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인 나에게 좀 더 반응이 좋았다.
실례로, 동네 공원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하는 ‘비숑’ <로티>는 나와 조우할 때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 뜨겁게 뽀뽀 세례를 주는데, 로티의 견주 여사님은 그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놀라시곤 한다. 매일 저녁마다 공원에 로티와 산책 나오면 새하얗고 포동포동한 로티가 귀여워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로티에게 한결같이 먼저 다가왔지만 앙칼지게 짖는 로티의 거부반응에 놀라 모두 도망갔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어림잡아 지금까지 수십 명이었는데,로티가 먼저 다가가 얼굴을 핥아주는 경우는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로티는 <여아>였다. 나는 나를 특별대우 해주는 로티를 만날 때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정성껏 쓰담쓰담해 주고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비숑 여아 <로티>
3. 반려견의 이름을 묻고, 견주에게 반려견과의 인사 나눔을 허락받는다.
"저 선생님~ 아이 이름이 어떻게 돼요? "
"뭉치에요"
"아 뭉치로군요. 뭉치랑 인사 나누어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견주가 알려준 아이의 이름을 명료하게 불러본다.
성량은 크지 않게 하되, 하이톤으로 음역대를 높이고 뒤끝을 올려 경쾌하게 부른다.
"뭉치야➚ 뭉치야➚ 아이고 예뻐라 우리 뭉치~"
하이톤으로 음역대를 높이는 것은 반려견들이 여아 남아를 막론하고 평균적으로 여성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개나 똑같다.
좀 더 부드럽고,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안정적인 소리와 움직임에 더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남성의 발성보다 여성의 발성에 개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남성들의 경우에는 개에게 접근하여 처음으로 이름 부를 때 ‘하이톤’으로 음역대를 상향 조정하여 여성의 음역대로 높여 부르는 것을 추천한다. 효과가 좋다.
뭉치라고 이름 부르니, 뭉치가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다가와 엉덩이를 들이민다. 이미 받아내는 스킨십까지 성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손으로 자유롭게 상대견의 몸을 쓰담쓰담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견주의 허락을 받는다.
4. 견주로부터 반려견과의 스킨십을 허락받는다.
"뭉치 어머니~ 저 뭉치랑 스킨십해도 될까요?"
"그럼요. 그런데 조심하세요. 입질할 수 있거던요"
요즘 개물림 사고로 민사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 견주들도 자기 반려견을 함부로 만지러 다가오는 이들을 경계한다. 실제로 개들은 곁을 내어주는 척하다가도 후각에 낯설고 불쾌한 냄새가 감지되면 정서적으로 돌변하여 물기도 한다.
따라서 스킨십하려고 다가서는 입장이나 스킨십을 허락하는 견주의 입장이나 ‘개물림 사고’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만 무는 개는 잘못이 없다.
사회화 훈련을 제대로 못 시킨 견주와 개들의 카밍시그널에 대한 이해 없이 조심성 없게 다가간 행인들의 문제일 뿐이다.
개가 사람을 개만큼 현명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개를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 제임스 서버. 미국 만화가>
견주의 허락까지 명료하게 전달받았으니 이제 쓰담쓰담해 주며 달달한 스킨십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고, 이 시점에서 오해하기 쉽다.
착각하지 말자. 스킨십을 일차적으로 허락한 것은 사람 견주의 입장일 뿐이다. 아직 우리는 상대견에게 직접 물어본 바가 없다. 따라서 자유롭게 쓰담쓰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상대견’에게도 스킨십을 허락받아야 함을 잊지 말자.
스킨십의 당사자는 상대견이지 사람 견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음 단계가 바로 노하우의 핵심이다.
5. 개로 빙의하여 개와 '카밍시그널'로 대화한다.
앞서 <로티>와 <뭉치>의 경우에는 그들이 먼저 무장해제를 하고 나를 향하여 먼저 다가온 케이스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는데도 만약 그 자리에서 멀뚱멀뚱 나를 쳐다만 보고 있는 강아지들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나를 경계하고 있다고 보는 게 안전하다.
경계를 풀지 않고 있는 상대견이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스킨십을 허락해 줄 가능성은 내 경험상 70% 정도다.모든 개들에게 스킨십을 성공할 수는 없으니 부정당했다고 상처받지 말자.
이제 본격적으로 개로 빙의하여 개들의 '카밍시그널'을 따라 할 차례이다.
카밍시그널 몇 가지를 콤비네이션 하여 상대견에게 개로 빙의하여 다가간다.
다가서려는 나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상대견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움직임의 속도를 낮추고,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2미터 거리를 앞두고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는다.
눈은 마주치지 않고 시선은 사선으로 둔다.
자세를 낮추어 땅바닥을 손으로 몇 번 짚는다.
<그게 다 무슨 짓이에요? >
묻고 싶을 것이다.
개들의 바디랭귀지인 카밍시그널을 사람인 내가 따라 하는 것이다.
개들은 서로 마주칠 때 정면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정면을 향해 직선으로 다가오면 소위 <맞짱> 한번 붙어보자는 전투태세로 인식한다.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접근하는 방식은 서로의 흥분도를 낮추려는 카밍시그널이다.
또한 개들은 서로에게 다가설 때 땅바닥에 코를 대고 갈지자로 이동하며 이리저리 냄새를 맡는다. 이 또한 공격의사가 없음을 표현하는 카밍시그널이다.
이 두 가지 카밍시그널을 응용하여 사람인 나에게 대입한 결과물이 바로 위에서 설명한 행동 패턴들이다. 상대견의 심리를 이완시키면서 부드럽게 근접하는 노하우이다.
다양한 카밍시그널 Calming Signal. (출처 네이버)
6. 최종적으로 스킨십을 허락받기 위해 상대견에게 나의 ‘채취 명함’을 전달한다.
손가락을 살짝 굽혀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고, 손등 부위를 상대견 턱 밑쪽으로 천천히 가져다 댄다.개들은 거리를 좁혀 서로를 탐색할 때 상대의 엉덩이 부분에 코를 대고 ‘항문낭’ 냄새를 맡는다. ‘항문낭 냄새 맡기’는 개들 간의 명함 교환으로 비유되곤 한다. 개들은 서로의 정체성을 채취를 통하여 확인한다.
나는 사람이고 항문낭이 없으므로그 대신 채취의 명함으로써 손등을 내민다.
손바닥은 내밀었을 때 혹시라도 물리게 되면 손가락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손가락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손바닥대신 '손등'을 내미는 것으로 아이디어를 냈다. 제스처 하나에도 세심한 요령이 담겨 있는 나만의 노하우이다.
상대견이 10초 이상 짖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내 손등을 핥거나 앞발을 활용하여 나를 반기면 이제는 정말로 만져도 좋다는 최종 승인이 난 셈이다.
이마, 귀, 코와 같은 안면 부위보다 턱밑과 가슴 쪽 모피를 먼저 쓰다듬어 준다. 마음껏 쓰다듬어 준다.
언급한 안면 부위는 개들이 스킨십할 때 예민한 부위이다.
개들은 턱밑, 가슴, 배와 같은 신체 밑면 부위의 스킨십을 좀 더 좋아한다. 신체의 아래쪽 부위를 충분히 만져주고 이어서 위쪽과 안면 부위로 자연스럽게 옮겨와 달달하게 스킨십한다.
이때 강아지가 당신을 좋아하면, 두 발로 점프해서 당신의 코와 입 주변을 핥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복부를 위로 개방하고 뒤집을 것이다.
마음껏 스킨십하고 배를 어루만져주면 더 좋아한다.
혹여 30%의 비율로 상대견에게 퇴짜를 맞는 경우에는 상심하지 말고 그저 돌아서면 된다.
그들도 눈이 있고 눈 보다 더 발달한 코도 있다. 시각적인 측면에서건 후각적인 측면에서건 상대견의 개별적인 취향에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뿐이다.
돌아설 땐 견주에게 잠시 동안이라도 반려견과 인사 나눔의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고 짧게 인사한다.
"뽀송이가 오늘은 심기가 불편한가 보네요. 다음 기회에 다시 인사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라고 인사하고 돌아선다.
좋은 하루가 되시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건네기까지 인티제(INTJ)인 나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주 해보면 별로 오그라들지도 않고 정감 가는 작별인사다.
견주 입장에서도 함께 산책 나온 자신의 반려견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쁘다는 칭찬을 받으면 뿌듯해진다.
또한 반려견은 낯선 사람의 체취와 스킨십에 호기심을 갖고 대부분 유쾌하게 반응하며,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되어 면역력이 높아진다.
공원에서 마주친 낯선 반려견들과의 요령을 갖춘 인사는 견주와 반려견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
우연히 마주친 개들과의 인사 나눔은 1석 3조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도심 속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큼 가성비 좋은 소확행이 또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