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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르도 Oct 07. 2024

어미새와 아기새가 되어

하루라는 선물

도솔이와의 하루는 시간의 축 위에서 농밀했다.


작은 미풍에도 흔들리는 촛불처럼 도솔이의 연약해진 심장은 시시각각 위태로웠다.  

도솔이에게 남은 생의 에너지가 꺼져가는 봉헌초처럼 영롱하고 애절했다.

다만 숨 쉬고 있는 도솔이의 하루가 내 삶을 밝게 비추고 있음에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도솔이가 몸을 일으켜 세워 몇 걸음 걷다가 힘없이 픽 쓰러졌다.

처음 목격하는 충격적인 모습에 놀라 < 도솔아!!! > 소리치며 한걸음에 뛰어가 도솔이를 안아 올렸다.

팔다리가 힘없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응급상황임을 직감적으로 인지하고 나는 도솔이의 왼쪽 가슴에 빠르게 손을 올려 심박을 느껴보았다.

찰나의 적막감이 공포스러웠다.

도솔이에게 심정지가 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아왔던 사랑하는 이의 심장마비.

내 가슴 안에는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싸늘한 공포의 냉기가 돌았고, 극한의 위기 안에서 내 머리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려는 이성의 의지로 가득 찼다.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한다. 

이것은 모의가 아니고 현실이다.

민방위 훈련을 여러 차례 받아온 한국 남자들은 안다.

심폐소생술은 심근까지 유의미한 압력을 가해야 실효가 있으므로 생각보다 세차게 흉부를 압박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람의 경우에는 CPR 도중에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한다.

도솔이의 체중은 겨우 9kg이고, 사람의 흉곽과 개의 흉곽은 구조가 다르다.

그리하여 반려견의 CPR의 경우에는 왼쪽 가슴이 하늘을 향하게 하고, 흉부 압박 시 적절한 압력을 가하여 늑골이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심근에 확실한 압박이 가해지도록 힘 조절을 정교하게 해야만 한다. 유사시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하여 유튜브 영상으로 찾아본 반려견의 CPR 조치에 대한 요령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측면으로 눕힌 도솔이의 왼쪽 가슴을 깍지 낀 손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밀한 템포로 압박했다.

도솔이의 몸이 들썩일 정도로 강하게 압박했다. 늑골이 부러지면 안 되겠지만 최악의 경우 늑골을 희생시키고 심장을 회복시키는 게 절대적으로 옳다.


극도의 위기 상황이라 온몸에 땀이 흘렀다.

도솔이의 흉부 압박에만 집중하여 분당 100회로 정밀하게 압박했다.

그렇게 2분 동안 200회를 압박했는데 도솔이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도솔이의 심장은 2분 동안 멈추어 있는 중이다.

문장의 형태로 기도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은 도솔이를 살려달라고 신께 처절하게 간구하고 있었다.

곧장 다시 100회 한 세트를 압박했다.

도솔이 앞다리가 움찔거렸다.

CPR을 멈추고 도솔이의 맥을 짚어 보았다.

심장이 다시 뛴다.     


도솔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도솔이 코에 내 귀를 지그시 댔다.

가늘게 호흡하고 있는 도솔이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 상태로 가만히 조심스럽게 도솔이를 내 품에 안았다.

적막이 흘렀다.

도솔이도 처음 겪는 낯선 위기의 경험들에 놀랐는지 내 품에 안긴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방바닥에 살짝 혈흔이 묻어있는 게 보인다.

살펴보니, 혼절한 도솔이에게 다급히 뛰어가다가 테이블에 긁힌 내 발목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출혈이 도솔이 몸과는 무관하여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로 도솔이와 함께 잠들 때 나는 우리들의 머리맡에 십자고상을 예비해 두었다.

다시 CPR 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십자고상 앞에서 주님께 간구하며 도솔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려는 만반의 준비였다.    

 

도솔이의 약해진 심장은 첫 심정지 이후로 자주 심정지를 일으켰다.

불행히도 도솔이가 대변을 볼 때에 심정지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도솔이 스스로도 심박이 오르면 심정지가 오는 전조증상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서, 소변을 볼 때 원의 형태로 빙글빙글 돌던 사전 움직임을 생략하고 패드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가 돌지 않고 바로 소변을 보는 형태로 자세의 변화를 주었다.

과도한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여 심박을 높이지 않은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소변을 배설하는 방법을 도솔이는 영민하게도 저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대변을 볼 때가 문제였다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들은 안다개들은 대변을 볼 때 뒷다리에 힘을 주고 척추를 안으로 둥글게 말아 복압을 높여 대변을 배설해 낸다. 복압을 높이지 않고서는 대변을 볼 수 없는 신체 구조다. 도솔이도 대변을 볼 때 저 자신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는 진퇴양난의 위기상황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배설의 생리현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심정지는 늘 도솔이의 생리현상 안에 예비되어 있었다.


싸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는데 먹으면 싸게 되고 싸는 일은 심정지를 일으켜, 먹고 싸는 일은 도솔이에게 살기 위한 일이면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로써 작동되고 있었다.

하느님께 당신은 본래 사디스트냐고 나는 따져 묻고 싶었다.

   



잠자던 도솔이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걷는다.

배변감이 밀려왔는지 패드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만약 척추를 펴고 머리를 위로 지켜 든다면 소변이다.

그러나 반대방향으로 웅크리면 대변이다.     


도솔이가 패드 위에서 고민고민하며 쩔 줄을 몰라하더니 자세를 잡는다.

웅크렸다.

대변이다.     

복압을 올리려고 도솔이가 뒷다리와 척골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았다.

반쯤 대변이 배출되었는데, 도솔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우리 둘 모두의 예상대로 또다시 심정지가 왔다.

 

벌써 열 번도 넘게 맞닥뜨린 상황이지만, 도솔이와 지금 이 순간 이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또다시 온몸에 식은땀이 흘렸다.

그러나 도솔이를 기필코 살려내기 위하여 나는 강해지기로 다짐했다.

이제 도솔이에게 CPR 하는 일련의 절차는 숙련되었다.

불필요하게 심박을 체크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대신 미리 대기하며 손에 쥐고 있던 십자고상을 누워있는 도솔이 머리 위에 놓는다. 하느님께서도 방관하지 마시고 직접 두 눈으로 내려다보시라는 얘기다.


도솔이의 CPR은 언제나 바닥에서 진행된다. 푹신한 담요의 쿠션이 오히려 흉부 압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CPR을 하는 장소는 맨땅이 적합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십자고상 앞에서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간구하며, 100회 한 세트의 CPR를 마치고 다시 또 100회씩 추가로 두 세트의 CPR을 돌렸다.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 성령 하느님께 간절하게 간구하는 마음으로 내 안의 두려움을 밖으로 밀어내가며 CPR3세트 돌리면 도솔이는 다시 살아났다.      




도솔이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할 수 만 있다면 내 살과 피를 연료로 태워도 좋으니 도솔이에게 다시 푸른 심장을 돌려주실 것을 신께 기도했다. 그러나 신의 뜻이 도솔이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려는 것이라면 이 땅에서 도솔이의 마지막 숨이 도솔이 폐부 안에서 민트향처럼 푸르숲처럼 평화롭기를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매일의 기도와 매일의 혼절과 매일의 사투 안에서 도솔이와 나는 말라갔다.

3개월이 지나 도솔이는 9kg에서 6kg이 되었고, 나는 73kg에서 64kg이 되었다.

도솔이와 나는 모두 입맛을 잃고, 잠 못 이루었다.     


사람인 나야 어떻게든 살 수 있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억지로 먹고 억지로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도솔이는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유기체의 논리를 알고 있지 못했다.

도솔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먹기를 거부했다.

식사를 거부하는 반려견에게 강제로 입을 벌려 급여하는 방법은 잔인해 보였다.

나는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먼저 물을 먹여야 했다.

첫 번째로 시도한 방법은 100cc짜리 주사기를 사서 바늘을 제거하고, 주사기에 물을 넣어 도솔이 입안으로 흘려주는 것이었다. 노견에게 많이들 사용하는 급수 방법이다. 그런데 플라스틱 재질의 주사기를 도솔이 입술에 가져다 대니, 예민해 도솔이가 이물감에 혀로 주사기를 밀어내려고 애쓴다. 이런 식이라면 도솔이는 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혀로 게워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안면 근육이 피로해질 것이다. 흘리는 게 더 많아 충분한 양의 급수가 되지도 못했다.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묘안이 떠올랐다.

평소에 나는 도솔이의 넓게 벌려진 측면 입가에다가 자주 뽀뽀했다.

그렇게 널따랗게 벌려진 도솔이의 측면 입가에 뽀뽀를 할 때면 나는 짓궂게 <부르르~~>하고 입방귀를 하곤 했다. 14년을 그렇게 입방귀 스킨십을 하며 입이 달도록 뽀뽀를 하여, 도솔이는 내 입술을 자기 측면 입술에 포개고 뭉개는 것에 전혀 반감이 없다.

그래! 마우스 투 마우스(Mouth to Mouth)!


나는 어미새가 아기새를 육추 할 때,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입에서 입으로 먹이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먼저 순한 치약으로 내 입안을 청결하게 양치한다.

치약의 시트러스향이 남아있지 않도록 입안을 서른 번쯤 헹군다.

그러고 나서 내 입안에 차갑지 않은 미지근한 물을 두어 모금 머금는다.

도솔이를 품 안으로 안아 올려 도솔이의 벌려진 우측 입술에 내 입술을 밀착한다.

머금었던 물을 도솔이 입 안으로 조금씩 부드럽게 밀어 넣는다.      


< 꿀꺽 꿀꺽 꿀꺽 >     


도솔이가 내 입에서 자기 입안으로 흘러들어온 미지근한 물을 거부감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꿀꺽 꿀꺽 삼켰다.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마우스 투 마우스 방식으로 하루 6번 정해진 시간마다 도솔이에게 물을 먹였다.


식사하기를 거부하는 도솔이에게 호박죽과 전복죽 또한 동일하게 마우스 투 마우스 방식으로 급여했다. 이 또한 성공적이었다. 이제 영양가 있는 죽 성분의 식사도 가능해졌다.     

도솔이와 나는 각각 어미새와 아기새가 되어 온종일 주둥이로 붙어있었다.     


어미새와 아기새. 마우스 투 마우스 방식의 육추. (출처 네이버)




어느덧 벌써 주일날이다.

오후 6시 청년 미사를 드리기 위해 550분에 알람을 맞춘다.

알람이 울리면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성당으로 전력 질주한다.

도솔이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다.


내가 없는 동안 도솔이에게 배변감이 찾아오면 도솔이는 응급상황을 혼자서 맞이하게 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도솔이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도솔이 곁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도솔이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큰 두려움이고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될 비극이다.      


성당까지 전력 질주로 편도 10분. 왕복 20분.

미사 시간 50.

70분 동안 도솔이는 집에 혼자 있게 된다.

<천주의 성모님 우리 도솔이를 보호하여 주소서>

도솔이는 성모님께 의탁하고 나는 주님을 뵈러 출발한다.

뛴다.     


명동성당 무염시태 성모상 (출처. 명동성당 인스타그램) 


집에 혼자 있게 된 도솔이를 생각하면 미사 중에도 계속해서 분심이 들지만, 도솔이에게 치유의 은사를 내려달라고 주일날 하느님께 청원기도를 바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미사 중에 신부님 눈치를 살피면서 계속해서 핸드폰 시계만 쳐다보다가 영성체까지 모시고 나면 청년 성가대의 아름다운 영성체 특송이 합창된다.

이때 나는 특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 올린.

< 하느님 우리 도솔이에게 다시금 푸른 심장을 허락하소서 >
< 가능하다면 도솔이에게 저의 심장을 나누어주소서 >
< 가여운 저희 부자父子에게 치유의 은사를 내려주소서 >     


파견성가가 이어지면 고개 숙여 목례의 인사를 주님께 드리고 나는 먼저 대성전을 나선다.

650.

집까지 달린다.     


********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때 나는 극도로 긴장한다.

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와 내 방에 눕혀놓고 나간 도솔이를 헐레벌떡 확인한다.

70분 만에 다시 만난 도솔이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아멘.      


각각 어미새와 아기새로 변신하여 온종일 주둥이로 스킨십하며 분주한 가운데 소중한 하루가 오늘도 무탈하게 지나갔다. 치열하게 또 하루를 살아낸 우리 둘은 그날 하루를 평화롭게 마감하는 은총의 밤을 맞이할 때마다 십자고상 앞에서 함께 기도를 올렸다.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도솔이의 두 눈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내 마음을 오래도록 표현했다.

오늘 하루가 도솔이와의 마지막 하루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나는 매일 밤마다 도솔이에게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한 모든 날들이 소중했고 아름다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아빠의 사랑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느님 안에서 영원할 것임을 도솔이에게 맹세하고, 우리 앞의 주님께 은총을 청했다.    


 아름다운 오후에 개와 함께 언덕에 앉아 있으면 에덴동산에 돌아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던 그때. 진정 평화롭던 그때로.
밀란 쿤테라. 체코 소설가 





열흘 후.


십자고상 앞에서.   


도솔이는 나의 품 안에서 하느님의 늘 푸른 동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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