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의 역사는 결국 다 지난다, 지나겠지?
웹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잘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이후였다.
뭐, 잘리게 된 이유는 내 잘못이라기보단 코로나 탓이었다.
항공사 협력업체였던 회사가 비행기가 뜨질 않으니 하루아침에 모든 일감을 잃어서였지, 아마.
원래의 난 위기의식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해결되겠지, 괜찮겠지 식의 좀 방관하는 편이려나.
좋은 말로 이상하게 큰일에 대해선 제법 낙관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무튼, 코로나로 인해 퇴사를 겪게 된 경험은 내게 있어 좀 충격이긴 했다.
여태의 퇴사는 모두 내 의지로만 이루어졌는데.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예상치 못하게 직장을 잃게 되는 건
이참에 좀 쉬자, 정도로는 정리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안겨주었었다.
실업급여가 있었지만 그것에 기대어있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 내겐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생활비에 각종 공과금, 대출, 하다못해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뭐 그런 우스갯소리처럼
백수일 때 제일 약속이 많아서 친구들을 만날 때면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실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력서를 수없이 쓰고, 면접을 보고, 실업급여가 끝날 때까지는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직장은 구해지지 않고, 심지어 아르바이트도 가뭄 수준이었다.
결국, 가장 최후라고 생각했던 쿠팡 아르바이트를 가야만 했다.
쿠팡에서 두어 달째 월급을 받던 날, 차곡차곡 그래도 돈이 들어오니 마음이 평온.......... 했지만, 잠시였다.
아니, 이렇게 월급을 받다가, 또 잘리면?
그럼 난 '어디 가서' 돈을 벌어야 하지??
그러나 곧, 이 생각마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어디서'가 아닌 '무엇'으로 바꾸어서.
나 스스로가 수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제법 깊게 가졌다.
당장의 큰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 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일이었고,
내가 주체가 될 수 있고 거기다 좋아하는 일을 시도한다는 건 그저 단순 실험적 경험으로 끝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 아무튼 그렇게 일단,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좋아하거나, 좋아했거나, 하고 싶거나, 하고 싶어 했던 것들.
그러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멈추지 않고 계속해왔던 것,
하고 싶었던 일이 떠올랐다. 바로 이야기를 쓰는 것.
맞아,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 그래서 일단 가장 빠르게 혼자의 힘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건
웹 소설이라는 생각에 덜컥 시작했다.
당장에 성과를 낼 순 없지만 해보고 아니면 말자!라는 JUST DO IT,의 마음이 컸다.
뭐라도 해야 버틸 수 있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을 했고, 이후, 마침 일하게 된 회사는 적은 돈이었지만 출퇴근 길이 멀지 않았고,
업무 강도도 심하지 않아 병행할 수 있을 거란 나름의 상황이 주는 용기도 생겼었다.
그렇게, 난 웹 소설 작가로서의 첫 발을 늦게나마 움직였고
현재로서는 출간작은 한 개, 그리고 계약작 한 개를 준비 중에 있다.
양 조절을 못해 대량으로 만들어두었던 며칠째 인지도 모를
김치볶음밥을 먹으면서 피식 쇼를 보았다. 잭 블랙이 나와서 본 건 아니고.
그냥.. 밥 먹을 때 너무 조용해서 틀어나 두었던 건데.
이용주가 후반부쯤 질문을 했다, 너를 보며 꿈꿔온 우리에게 나름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는 말에
친절하게도 또박또박 대답하는 잭 블랙.
나를 유명하게 도와준 건 광고, 영화도 있긴 했지만.
이렇다 할 이력이 없었어, 내가 직접 내 작품을 쓰기 전까지는.
그래서 난 항상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말해.
'네 것을 네가 만들어.'라고
그냥 써버려, 너의 것을 직접 써.
어찌 보면 같은 선상에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될 이야기로만 볼 수 있겠지만 그냥,
김치볶음밥을 욱여넣던 나에게도 잭 블랙의 그 말이 느닷없이 와닿았다.
나는 시작하는 사람이고, 내 것을 내가 쓰고 있다.
그냥 쓴다. 직접.
여전히 불안하고, 헤매고, 의심하게 되고, 스스로를 이미 성공해 버린 대단한 잣대에 끼워 비교하고 맞추며 다시 움츠러드는 찌질한 과정들이 늘 도사린다.
그러나 그 찌질의 역사는 결국 다 지난다는 걸 미리 예견하듯. (지나겠,,,지?)
'내 커리어가 시작됐지.'라는 그의 말에 아주 잠시지만
좀 더 해, 계속해도 좋아!라고 별안간 응원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이미 시작은 했지, 가기만 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불안한 와중, 모를 안도감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