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탈을 쓴 개인의 나

부모라는 이름 아래, 각자의 기준

by 구뜨마망


양육에 있어서
한쪽 부모가 다른 쪽의 방식을 따라주는 경우도 있고,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대하는 경우도 있다.

내 생각과 내가 바라는 이상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인식하지 못하면,
같은 말을 해도 서로의 마음은 어긋나기 쉽다.

누군가는 자율을 중시하고,
누군가는 일관된 규칙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보편적인 기준을 존중하되,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독특함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자주 놓치게 되는 것은,
아이의 시선이다.





가족치료의 창시자 보웬(Murray Bowen)은
가족을 정서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았다.
부모의 감정, 갈등, 불안은
단지 둘 사이에 머물지 않고,
아이에게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부모 간의 양육 태도나 감정 표현 방식이 엇갈릴 경우,
아이의 정서 시스템은
안정적인 기준 없이 흔들릴 수 있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보다,
부모의 얼굴빛과 말투를 먼저 살핀다.
감정보다는 반응이 먼저다.

양육이 아마추어의 영역이라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가 요령을 터득하는 동안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
또 다른 형태의 문제를 던져주기 때문일 것이다.




보웬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인

‘자아분화(differentiation of self)’
감정과 사고를 구분해
상황에 맞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나는 애정을 표현했다고 느끼지만,

아이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상황에서의 나의 능력은 점검받게 되지만

가족안에서의 나의 능력은 어떨까.

나의 기준은

나의 해석, 나의 감정, 나의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점검되지 못한 채 내 안에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나의 불안, 나의 기준, 나의 방식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정말 아이에게 적절한 방식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편한 방식이기 때문인지.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지금 ‘부모’로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개인’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아이에게 부모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진짜 ‘양육’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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