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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미지의 세계

본다는 행위에서 시작해 안다는 것에 닿는다

 아이슬란드는 미지의 세계다.

 여행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그렇다.

 긴 시간 동안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에 취해서 돌아다니고도 그 거대한 섬의 극히 일부만을 들여다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땅은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눈보라를 뚫고 마음을 졸이며 앞으로 전진해야 했다.

 폭설이 내리던 밤엔 앞으로 가던 차바퀴가 공중에 떠서 헛돌았고, 되돌아가기 위해 차를 돌렸을 땐 우리가 지나온 길마저 두툼한 눈으로 뒤덮여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밤은 늘 일찍 찾아왔고 길었으며 아침은 불현듯 찾아와 고요했다.


 어릴 때 나에게 미지의 세계란 아마존 열대 우림 속이었다.

 높고 빼곡한 나무에 가리워 어떤 시선도 밖에서 안으로 통과하지 못했고 어떤 생명체와 식물이 서식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엔 아나콘다라고 불리는 거대한 뱀이 있다고 했고 원주민이 있다고도 했다.

 사람의 시선과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고 미지의 세계였으며 그렇기에 그 속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두려웠다.

 남극이나 북극, 아프리카의 사막 또한 그랬다.

 미지의 세계란 그렇게 접근이 어렵고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것에 있는 듯했다.

 아이슬란드도 내게 그러한 곳이었다.

 북극에 한없이 가까운 땅엔 생명의 흔적은 희미하고 극한의 추위와 빙하만이 있을 듯했다.

 우연히 TV에서 아이슬란드를 보지 않았다면 그곳에도 대지가 있고, 아름다운 폭포가 있으며, 운이 좋은 날 하늘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상상이란 때론 현실보다 무섭다.


 우리가 돌아다닌 경로를 '링 로드'라고 했다.

 아이슬란드를 둥근 형태로 빙 둘러 이동하는 동안 11일이 지나갔고, 길은 결코 아이슬란드 중심부로 뻗어있지 않아서 진입을 불허했다.

 여행을 마치고도 나는 지나온 가느다란 경로 외에는 아이슬란드에 대해 알지 못한다.

 피오르드 마다 높게 솟은 절벽과 산 위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이슬란드는 황홀하게 아름답다.




 공항버스를 타고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 발을 디뎠을 땐 이전에 느끼지 못한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리 춥진 않았다.

 0도. 바람이 불지 않는 이곳엔 매서운 추위보다 겨울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가득했을 뿐이다.

 직전까지 머물던 런던의 11월은 아직 가을이었고 겨울옷은 미처 준비하지 못해 얇은 옷을 여러 겹 포개 입었다.

 세 시간 남짓의 비행으로 계절을 넘어온 듯했다.

 배낭을 메고 구글에 저장해둔 숙소 위치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레이캬비크 외곽을 눈에 담았다.

 해가 저문 도시는 수수하고 차가웠다.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는 중심가 상점거리 끄트머리에 위치해있었고 누군가 켜 둔 라디에이터가 공기를 데워 따뜻했다.

 충분히 큰 실내는 전체적으로 모던한 인상을 줬으나 패브릭 제품과 목조 가구 배치로 차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선 마라토너들이 입을 법한 짧은 트레이닝 반바지와 민소매로 갈아입었다.

 몸을 달군 열기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초인종이 울렸다.

 나의 일행이 도착했다.


 딱히 정확한 나이도 모른 채 맞이한 일행은 온라인에서 만났다.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동네 정모처럼 가볍게 만날 수 있는 만남은 아니었지만 우린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동행을 결정했다.


 두 명은 한국에서 반나절이 넘는 시간을 날아왔고, 나는 세계여행 중 런던에서 넘어왔다.

 레이캬비크에서 이틀째 진행되고 있는 음악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전날부터 도착한 일행도 있었다.

 이렇게 넷이서 11일 동안 함께 여행한다.


 한국에서 건너온 이들의 거대한 짐을 숙소 한쪽에 정리하고 통성명을 마칠 무렵 마지막 일행도 숙소로 돌아왔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덥수룩한 콧수염을 기른 청년은 주황색 비니를 쓰고 펑퍼짐한 카키색 카고 바지를 입었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를 여행하기에 앞서 음악 여행을 하고 온 이 남자에게 손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어색한 얼굴로 멋쩍은 미소를 띠며 손을 맞잡았다.


 면세점에서 사 온 술을 꺼내어 잔을 부딪히는 동안 그는 상기된 얼굴로 아이슬란드 음악의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한국에서 온 두 남자는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동행에 대한 즐거움이 마음에 차올라서 웃었다.

 모호한 인터넷의 약속과 인연이, 쉽게 오기 힘든 아이슬란드에서 실체가 되니 그 감정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처음 보는데도 그랬다.




 데생을 한다는 것은 대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물과 풍경, 인물까지도 바깥의 선부터 얇은 솜털, 굴곡으로 그늘진 부분까지 눈으로 세세하게 보고 손으로 그려낸다.

 실제와 가깝게 그리려고 노력할수록 시선은 깊어지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주름의 흔적과 아주 작은 점 하나까지 쫓아간다.

 본다는 행위에서 시작해 안다는 것에 닿는다.


 그려내기 위해 보는 것을, 보기 위해 그리는 것으로 뒤집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서 전하는 '러스킨'의 의도가 이런 것이다.

 여행에서 눈으로 보는 행위는 같음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전체를 보던 시야가 지극히 작은 일부분을 보기 위해 좁아지면서 그만큼 높은 밀도를 지니는 것이다.

 단지 눈앞에 산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산에는 나무가 없다는 것과 눈이 덮이지 않고 흘러내린 곳에 감도는 짙은 회색 빛을 통해 이 산이 암석 또는 그와 유사한 무언가로 이뤄졌음을 알게 된다.


 산 위는 뾰족하지 않아서 일반적인 산의 형태와 다르고, 바위로 된 대지가 솟아오른듯해 장엄했다.

 위쪽 산기슭에는 소복이 눈이 쌓였지만 전체의 3분의 1 지점 밑으로는 절묘하게 눈이 쌓이지 않았고 잡초가 자라나 포근한 갈색을 띄었다.

 해의 따뜻함이 비추는 측면은 전체가 황톳빛으로 빛나서 눈 덮인 암석조차 따뜻하게 느껴졌고, 그 산비탈의 끝은 바다에 닿아있어서 바다에 솟아난 산인가 싶어 기이했다.

 산등성이를 따라 좌우로 시야를 쫓아가다 보면 산은 대지에 붙어있으며 바닷물은 마을 안쪽으로 움푹 파인 지형을 따라 이곳으로 들어왔음을 깨닫는다.

 하늘은 기이하게 희고, 회색의 옅은 구름이 얇게 떠있다.

 눈 덮인 산등성이가 그런 하늘과 희미한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눈 사이로 드러난 암석이 끝내 산의 형태를 선명하게 구분 지었다.


 커튼을 젖히고 아침을 맞이했을 때 창문 밖에 보이는 아이슬란드는 이런 풍경이었다.

 우리는 대체 어떤 곳에 와있는 걸까.

 시선의 높은 밀도는 감탄을 넘어 애정으로 치달았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욕망이 움텄다.




 고요하고 차가웠던 지난밤과 달리 사람들의 말소리와 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

 해가 뜬 아이슬란드에 생동감이 깃들었다.

 어둠에 가리웠던 풍경이 빛으로 드러나자 창밖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산비탈마다 눈이 덮여 새하얀 옷을 입었다.

 간밤에 누가 나를 새로운 세상에 데려다 둔 것이다.


 술이 돌아 어색함을 달래고 형-동생 사이로 친분을 다진 첫날밤을 보내고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가 됐다.

 한국인들 사이에선 나이를 공유하고 호칭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여행자로서 적절한 거리감을 갖고 동행하는 것은 어려운 듯했고 이것이 우리들끼리의 매력인 듯했다.

 한국에서 온 둘은 나보다 나이가 많고, 동유럽을 여행하고 마지막에 합류한 이는 20대 초반으로 가장 어렸다.

 나이로 인한 관계에 얽히는 것이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이기에 다소 낯선 기분이 들었으나 여행의 방법을 매번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나로선 이런 상황이 반갑기도 했다.

 긴 형태의 MT에 온 것 같았고, 몇 해 전 방송한 '꽃보다 청춘'이란 프로그램의 주인공들 같았다.


 렌터카 회사로 걸어가는 동안 산타 마을처럼 동화스러운 중심가와 북유럽 특유의 세련되고 간결한 형태의 건축물 사이를 지나쳤고, 창문으로 보던 풍경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새파란 바다 건너 서있는 설산의 자태가 한눈에 담기니 심장이 뛰어 간지러웠다.

 처음 방문한 지역에서 여행자가 전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든 일이지만 첫인상만큼 날것의 직관성은 따라갈 수 없다.

 우리는 이국적이란 단어를 뛰어넘어 다른 땅에 온 것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아이슬란드 여행이 시작됐다.

 '포스(foss)'라는 명칭이 붙은 곳은 모두 폭포다.

 굴포스는 거대한 강이 그대로 부서지고 있어서 그 전과 후에 무엇을 보고 싶어 했고 무엇을 봤었는지를 잊게 했고, 게이시르는 땅이 심장 박동을 하는 것처럼 두근거리다가 비정기적으로 물을 공중으로 뿜어내서 신비로웠다. 

 이것을 간헐천, 끓어오르는 진흙 구덩이라고 했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은 중력이라는 기이한 힘에 의해 중심부 즉 땅을 향해 떨어지는데, 게이시르의 간헐천은 내부 증기 압력에 의해 지하수가 중력을 거슬러 지면 위로 솟아오르고, 굴포스는 중력에 순응하며 거대한 강물을 땅으로 떨어트리고 있으니 하루에 일견 한 자연의 신비로움이 놀라웠다. 

 17시에는 해가 땅으로 숨고 달이 도로 끝에서 산처럼 거대하게 떠올랐다.

 숙소에 남은 일행들이 짐을 정리하는 동안 둘째와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 끝에 떠오른 달의 크기가 믿기지 않아 차를 세우고 바라봤다.

 놀라움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에게 첫날 아이슬란드의 자연이란 대단히 경이로워서 저녁을 먹는 내내 서로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상기된 볼로 저마다 재잘거렸다.


 둘째는 숙소 한쪽 벽에 액션캠을 설치했고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마시며 첫 여행을 기뻐했다.

 그는 액션캠을 통해 여행을 간직하는 듯했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마다 차 앞 유리에 액션캠을 설치해서 5초 간격으로 타임랩스를 설정했고, 차에 내릴 때는 셀카봉 끝에 액션캠을 매달아서 들고 다녔다.

 맏형은 화각이 넓은 캐논 카메라를 통해 순간순간을 기록했는데 사람이 없는 풍경은 의미 없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서 일행들과 자신을 찍는 것으로 여행을 간직하려 했다.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드론을 날려서 하늘에서 전체를 담기도 했다.

 막내는 특정 풍경보다는 아이슬란드에 온 것 자체에 만족했고, 음악과 영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어서 레이캬비크 음악축제와 아이슬란드 가수,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풍경과 상황에 따라 생각나는 노래를 들으며 음악으로 여행을 간직하는 듯했다.

 나는 경험과 감정을 글로 써서 간직하려 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 같았고,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욕망을 해갈하고 있었다.


 생애 본 적 없는 자연이었다.

 굴포스는 거대한 강이 중간에 뚝 끊어지며 모조리 밑으로 떨어졌다.

 협곡 사이로 흘러온 깨끗한 물이 차가운 계절을 만나 청록색과 회색 빛을 뗬고, 그 물이 새하얗게 깨지며 몽땅 떨어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두 번의 단차에 의해 한번 더 낙하한 물은 다시 옆쪽의 협곡을 따라 흐르는데, 강의 너비에 비해 낙폭은 낮아서 그 전체 모습이 한 시야에 담겨 아름다웠다.

 거대한 자연 앞에 나는 몹시 작았고 장엄함과 숭고함 속에서 경이와 환희의 감정이 들끓었다.

 폭포 주변으로 튕기고 바람에 날아간 물방울은 협곡의 벽에 얼어붙었다.

 물방울이 얼고 여기저기 눈을 덮은 겨울의 차가움에도 전체적인 풍경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강물과 폭포, 암벽을 제외한 지형 곳곳에 연갈색의 갈대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탐스럽게 몸을 흔들고 뉘어가는 해가 그 흔들리는 잎에서 금빛으로 부서지는 탓인 듯했다. 

 굴포스에서 간신히 시선을 돌렸을 땐, 낮은 구릉으로 된 지평선이 우측에, 완전히 눈 덮인 설산이 좌측에 있어서 굴포스라는 장소도 겨우 아이슬란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오후 4시면 석양이 시작되고, 이후 한 시간 뒤면 어둠이 내려앉는 11월 아이슬란드에 밤은 길다.


 숙소는 게이시르에서 가까운 언덕에 있었다.

 나무로 지은 작은 오두막엔 2개 방과 싱글 침대 2개, 더블 침대 1개가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이 있는 거실에 4인 식탁과 작은 소파, 작은 냉장고가 있어서 공간 활용이 몹시 효율적이고 아늑했다. 

 레이캬비크에서는 드디어 우리가 만났다는 것을 축하했고, 게이시르 근처의 이 오두막에서는 첫날 아이슬란드 여행의 놀라움을 자축했다.

 함께하는 여행을 연이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축복이다.

 감정이 배가 되고 사방이 고요한 아이슬란드의 밤이 외롭지 않았다.


 여행의 첫날이란 그 여행지의 여행 방법을 알아가는 단계와 같아서 다음 여행에서 필요한 것을 배운다.  

 숙소를 떠나서 다음 숙소로 갈 때까지 식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첫날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아침, 저녁을 풍부하게 먹기로 했고, 이동 중에 먹을 간식으로 핫도그를 선택했다.

 숙소는 매일 이동하면서 예약하기로 했다.

 언제 변할지 모를 아이슬란드 기상 상황을 고려해야 했고, 계획에 유동성을 갖기 위함이었다.

 숙소에 따라 여행의 꼭지가 정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결정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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