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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딜레마에 빠졌을 때

이 뜨거운 것을 밑바닥까지 토하고 싶었다

 빵과 요플레, 과일, 카푸치노까지 호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든든히 먹고 곧장 짐을 들었다.

 통증이 남은 발바닥을 딛으면서 호텔 밖으로 나왔는데 사방에 노랑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등에 스탭이라고 써진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저녁에 축제가 시작된다며 한쪽을 가리켰다. 

 'La Notte Gialla'. 오늘 진행되는 축제다. 

 어제 본 노랑 풍선들과 띠가 이 축제를 위함이었다.

 이 유쾌한 스태프들은 주변 동료들을 모으더니 내 여행 이야기를 묻고 도보 여행 중이란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나를 축제로 초대했다. 

 충분히 쉬고 걷는 게 좋다고 했고, 여행 중 이런 축제를 만나는 건 행운이라고도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나무 사이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이벤트 부스와 무대를 준비하는 모두가 싱글벙글하다. 

 대학교 축제 현장에 온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준비하는 사람 대부분이 자원봉사하는 학생이었다.

 광장 주변과 골목 여기저기에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들도 자신의 가게 앞을 꾸미고 있다. 

 마을 규모가 크지 않아서 마을 주민이 스텝이고 참여자고 가게 주인이다.


 피렌체 방향으로 1km를 앞으로 가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길을 되돌아왔다.

 ‘콜레 디 발 델사’에서 하루를 더 머물 생각이다.

 도보 일정에 맞춰 이틀 뒤 피렌체에서 후배를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나름 갈등 속에 큰 결심을 했다.

 같은 숙소로 돌아가니 체크아웃할 때 '차오'를 외치던 호텔 직원이 다시 돌아온 나를 몹시 반겼다.

 이탈리아 최고의 축제를 놓치고 가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며 웃는 그에게 나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축제 특선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에 가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즐기고, 저녁에는 또 다른 식당에 가서 파스타와 와인 한잔을 더했다. 

 이곳은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지 토스카나다.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까지 온 동네 아이들이 나와 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어른들은 준비했다.

 배구, 농구, 스케이트, 테니스, 펜싱, 인라인 등의 운동 경기가 광장에서 진행되고 어른들은 돌아가며 심판을 본다.

 동네의 상인들이 거리로 나와 물건과 음식을 판매하고 팝콘과 맥주, 와인, 레몬 첼로 등을 여기저기서 만끽할 수 있다.

 사방이 노랑 물결이고 강아지까지 노랑 색상을 둘렀다.

 이 작은 마을에 이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준비하고 즐긴다.

 광장 외에도 마을 전체 공간을 활용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좋아해서 각종 밴드 공연을 쫓아다녔다.


 이 축제가 준비되는 아침부터 노래와 춤이 있던 밤까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순간 모두를 눈에 담았다.

 이 축제를 준비하고 즐기는 모든 과정 속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부러웠다.

 오래전부터 축제를 준비하면서 쏟았을 노력과 시간, 즐거움을 나도 겪은 적이 있다.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침에 만난 스텝들을 보면서 나의 오래전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내 광장에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담았다.

 이곳에 하루 더 머문 대가로 다음날 25km를 걸은 뒤 도착한 마을에서 3번째 도보 경로를 마무리했다.


 걷는 동안 많은 차량이 멈춰서 태워주겠다고 했다. 

 한 번은 멀리서 차가 멈추더니 남자가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말에 걷기 위한 여행임을 설명하고 정중히 거절했지만 정말 고마웠다. 

 혼자 고된 여행을 하는 동안 외로움과 동행해야 하고 어디에도 소속돼있지 않기에 누군가의 관심과 온기가 감사하다.

 하루 더 쉬고 난 뒤의 발걸음은 몹시 가벼워서 25km 지점에 전날보다 힘들지 않게 도착했다.

 걷는 동안 토스카나 풍경은 몹시 아름다웠고 그렇기 때문에 3차 도보 구간을 종료하며 피렌체로 향하는 버스를 탈 때 많이 아쉬웠다.

 걸음으로 겪을 수 있는 것을 버스에게 뺏긴 느낌이었다.




 피렌체에서 지인과 해후하고 볼로냐로 가는 버스 출발시간이 늦어서 기다리고 있다.

 이탈리아 도보 여행 마지막 구간은 볼로냐 외곽에서 모데나까지 50km 구간이다.

 베로나, 베니스처럼 가보고 싶은 도시가 있지만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도보에 중심이 있다.

 줄곧 그랬다.

 그리고 이 도보여행이 이탈리아를 내게 보여주고 있다.

 피렌체에서는 후배를 만나고 관광 명소와 맛집을 돌아다니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역사를 간직한 도시 사이로 적당한 폭의 강이 흐르고 그 모든 풍경을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 피렌체의 낭만이었다.


 버스를 타고 볼로냐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숙소는 정류소에서 6km 떨어진 시 외곽에 있었다.

 도시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걷는 것은 매번 반복된 패턴이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둠 속을 걷는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로등 하나 없고 사람과 자동차마저 지나가지 않는 곳을 걸어갈 때는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고,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길 옆을 걸을 때는 무섭고 외로웠다.

 둘러볼 수 있는 풍경이 없으니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지도와 도로만을 유심히 살피며 갔다.

 비교적 가로등이 많고 지나다니는 사람과 차가 많은 시내에 비해 시 외곽의 밤은 어둡고 음산했다.

 낯선 도시에 어둠이 내려앉는다는 건 생각보다 실체가 없는 공포와 싸워야 한다.


 숙소는 매우 좋았다.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노 부부는 시간이 늦었는데도 도착하지 않아서 걱정했다며 따뜻하게 맞아줬다.

 이들은 아파트 1층에 거주하면서 2층을 에어비앤비로 활용하고 있었다. 

 네 개의 방 모두 다른 여행자들이 사용하고 있다며 사용할 방을 안내해주시고는 다시 본인들의 집으로 내려가셨다.

 볼로냐 중심에서 꽤 먼 곳이지만 가격과 실내 모두 훌륭한 숙소다.

 곧장 샤워를 하며 긴장된 몸을 풀고, 가방에서 마지막 남은 신라면을 꺼내어 주방으로 갔다.

 물을 끓이고 면과 분말 수프를 넣자 익숙한 라면 냄새가 확 풍겨오며 순식간에 입에 침이 고였다. 

 그리고 갑자기 주방 옆방에서 기침이 시작됐다. 

 콜록이는 기침소리는 점점 퍼져갔다. 

 옆방, 그 옆방, 이 층에 모든 사람들이 기침을 할 때쯤에야 신라면 냄새가 이들에게 너무 맵다는 걸 깨닫고 주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서둘러 먹고 치워야 이들을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아직 다 익지 않은 꼬들한 면을 입으로 가져갔다.




 볼로냐의 숙소가 생각보다 훨씬 더 볼로냐 서쪽 외곽에 치우쳐서 모데나로 향하기 전에 볼로냐 시 반대편으로 이동한 뒤 1박을 더 하기로 했다.

 덕분에 남은 일정 동안 하루에 20km 정도로 걸을 수 있게 됐다. 

 확실히 걸음이 수월하고 여유 있다.

 다음날 볼로냐 반대편으로 이동하면서 어둠 속에 보지 못한 도시를 마주했다.

 볼로냐 또는 라구 볼로네즈라고 부르는 볼로네즈 소스는 모두 이 지역의 라구 소스를 가리킨다.

 도시는 소스의 붉은색을 닮았다.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그 안의 건물들, 특히 아꾸르시오 라고 불리는 궁전은 모두 볼로냐 소스와 같은 붉은빛을 내뿜었다.

 궁전 앞 광장(Piazza Maggiore)은 도시의 중심부로써 사면이 르네상스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고 많은 음악가와 시민들이 모여있었다.

 강렬함으로는 런던에 비교할만했다. 

 다른 유럽 도시들을 여행하다가 영국 런던에 갔을 때 이곳은 다른 유럽과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벽돌 건물들과 오래된 형태의 택시, 빨간색 이층 버스 등이 주는 느낌이 진하고 강렬했다.

 이탈리아 도시 중 볼로냐도 마치 그러하다.


 도시에는 볼로냐 대학이 유일하고 이 학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다. 

 수업을 듣거나 학교 내부를 탐험할 수 없지만 가장 오래된 대학교란 명성이 주는 묵직함에 학생들이 많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저녁 또한 학교 거리에서 먹었다.

 마치 이 학교의 학생인 것처럼 기둥에 기대어 앉아 책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볼로냐 지도를 확대하면 6각(또는 7각) 형 모양으로 도로에 둘러싸인 중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곳 전체를 시내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한 대학교와 광장, 궁전, 성당, 두 개의 사탑 등 명소가 모두 이곳에 있고 시장과 식당, 상점 등도 시내에 밀집해있다. 

 이곳에도 관광객들이 있겠지만 그들보다 학생들이 도시 분위기를 이끌고 있고, 대학교가 관광 중심부와 함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대학가의 느낌이 녹아있다. 

 덕분에 굉장히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간식이 가득한 보조가방을 두드리며 볼로냐 호스텔을 나섰다.

 시내를 구경하면서 음료와 간식을 샀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짐에 불과했다. 

 물과 앉아서 쉴 때 먹을 과일만이 적합했다.

 볼로냐를 완전히 벗어나서 양옆에 광활한 밭을 끼고 걷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진 불상사가 있었다.

 도시를 벗어난 뒤의 일이라 가까운 카페나 마트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밭으로 걸어갔다.

 땅에 자양분을 공급했으나 왠지 한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늘의 짐을 짊어지고 간간히 지나다니는 차 옆을 묵묵히 걸었다.

 피렌체까지의 길이 푸른 포도밭이었던 것에 비해 이쪽은 밀과 보리, 벼 같은 농사를 지은 곳으로 보인다. 

 그 탓인지 장소뿐만이 아니라 계절을 넘어온 기분이 들었다.


 이번 숙소는 도시나 작은 마을이 아닌 논 한가운데에 있는 민가다.

 모데나로 향하던 중 숙소로 가기 위해 좌측 논두렁으로 방향을 틀었다.  

 볼로냐에서 모데나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숙박을 결정했다.

 차도 사람도 없는 논길을 걸으니 혼자 농활 하러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짐과 지친 발걸음 탓에 여름방학 중 잠자리채를 들고 시골 할머니 집을 찾아간 기분과는 달랐다. 

 그 어떤 차 소리도 없이 적막한 가운데 이따금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문을 열기도 전에 개들이 뛰어나와 왈왈거리며 반겨줬고, 멜빵바지에 부츠를 신고 창이 넓은 모자를 쓴 아주머니께서 뒤를 이어 나오셨다. 

 일을 하기 위해 나가야 했는데 마침 잘 왔다며 웃으시는 모습이 몹시 건강해 보였다. 

 방을 소개해주신 후 직접 만든 와인이라며 화이트 화인을 한병 주시고는 서둘러 집을 나가셨다.  

 포도밭을 일꾸러 가시는 듯했다.

 집에 도착해서 환경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무장해제된 기분이다. 

 샤워를 하고 마당으로 나와서 와인과 전날 사둔 간식을 먹으며 책을 보고 때때로 멍하니 논과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볼로냐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시며 와인이 더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시골 인심은 다 이런 건가 싶었다.

 와인에 불콰해진 얼굴로 글을 쓰고 단잠을 잤다.

 다음날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처럼 꾸며둔 주방에서 동화 같은 조식을 마칠 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후 모데나까지 20km를 걷는 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이탈리아 여정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 부근이었다.

 모데나에 진입하면서 여행자 최고의 식당 맥도널드에서 식사를 했고 늘 그렇듯 만족스러웠다. 


 유럽을 통과하면서 여행이 딜레마에 빠졌을 때 걷기 시작했고 이 선택은 여행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꿔버렸다.

 이동 한 뒤 목적지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여행은 걸어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목표이자 여행이 됐고,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하루에 25km를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행지에서 여유와 자신감을 줬다. 

 온전한 하루를 지니고도 도시를 제대로 여행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도착해서 다시 떠날 때까지 반나절 남짓의 짧은 시간으로도 인상 깊은 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걷던 중에 떠오른 상념들은 메모장을 빼곡히 채웠고 온 힘을 쥐어짜서 걷고 또 걸을 때 머리가 비어버리던 순간이 좋았다. 

 여행 중 하루가 헛되고 의문으로 남기보다 보람과 성취감으로 남았다.

 토스카나의 넓은 밭과 구릉, 그 구릉마다 서있는 나무들, 작은 소도시와 성, 요새, 포도밭을 하나하나 밟아온 길을 마음에 품었고 터널에서 비를 피하고, 도로에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던 순간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도 간직하게 됐다.


 모데나에서 그대로 북상하면 베로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갈 수 있고,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직진하면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에 갈 수 있다.

 볼로냐로 돌아가서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가면 이번 여행에서는 제외한 베니스에 갈 수 있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자 더없는 자유가 있었다.




 이탈리아 도보 여행 글을 쓰면서 그때 과정과 힘듦을 몸으로 되짚기 위해 자전거를 탔다.

 집에서부터 원효대교까지 전력을 다해서 간 뒤 바로 자전거를 돌려서 성산대교까지 다시 전력으로 갔다. 

 첫날은 땀에 젖는 정도지만 다음날이 되면 마포대교쯤부터 호흡이 가쁘고 다리가 무거웠다.

 또 다음날이 되면 원효대교까지 가는 길부터 멀게 느껴졌다. 

 몸상태와 무관하게 페달은 늘 최선을 다해 밟았다. 

 내 여행도 그랬다. 

 가진 바 모든 힘을 쏟아붓고 싶었다. 

 이 뜨거운 것을 밑바닥까지 토하고 싶었다. 

 별안간 마음에 솟구친 뜨거움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 

 살면서 뜨거움을 속으로 되삼켜야 할 때가 많았지만 여행에서는 가능했다.

 청춘의 발버둥을 치며 세계여행을 결심한 내 지난 과정과 도보 여행을 결심하던 마음이 닮았다. 

 여행이 삶과 닮아 있어서 여행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끝없이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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