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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가장 고통스러운 것만 유일했다

하루의 목표가 단일하고 분명하기에 머릿속은 깔끔했다

 그로세토(Grosseto) 기차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부온콘벤토(Buonconvento)에 도착했다.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 양옆에 드넓은 밭이 펼쳐져있었고, 풍경에 마음이 곧장 너그러워졌다.

 가방의 무게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숙소까지 간다는 목적이 간결하고 명쾌한 만큼 발걸음도 가벼웠다.

 봐야 하는 것보다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을 그저 눈에 담기만 하면 됐다. 

 로마를 서둘러 벗어난 결정이 옳았다.

 로마가 안 좋았다기보다 도보여행을 하고자 했던 취지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도보여행을 계획한 것이 처음이고 아직 여행에 대해서도 미숙하다.


 부온콘벤토에 도착하기 전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숙박을 알아보며 비싸다는 생각을 했는데
 도착하니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이었다.

 방 네 개, 화장실 두 개, 그 모든 것 만한 거실과 다양한 조리도구가 구비된 주방 공간이 있었다.

 가족 단위의 여행자가 이곳에 왔다면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숙박을 했을 텐데 혼자인 게 아쉬웠다.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해야 돈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아서 짐을 풀어 이곳저곳에 펼쳤다.

 주방과 조리도구가 있으니 저녁은 파스타를 할 생각이다.

 필요한 식재료를 확인하고 마트 위치를 살피던 중 부엌 한편에 작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1km 떨어진 곳에 마트가 있다는 메모를 믿고 길을 나섰다.

 문밖으로 나와 곧장 들판을 가로질렀는데 방향을 잘 못 잡은 탓인지 2km를 걷고서야 작은 마을 초입에 있는 마트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필요한 식자재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덕 연기를 뿜는 피자집에서 페퍼로니 한판을 포장했다.

 동양인 여행자가 신기했는지 동네 꼬마들이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넨다. 

 “헬로, 헬로”.  

 "차오(Ciao)!" 

 나 역시 그들에게 화답했다. 

 생각보다 멀리 나온 탓에 집까지 단번에 가지 못하고 해바라기가 서있는 밭에 잠시 앉았다.

 해질 무렵의 정취가 좋아서 그 고즈넉한 풍경을 보며 포장한 피자를 먹었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자 넓은 숙소 공간이 음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래를 틀고 모든 방에 불을 켜 두었다. 

 화재가 발생해도 구해줄 사람이 없을 듯해서 차마 벽난로는 켜지 못했다.

 로마에서 못한 빨래를 하고 3차 도보 경로를 살폈다. 

 부온콘벤토에서 피렌체까지 97km를 간다.

 아말피 해안처럼 휴양지가 아니고, 로마처럼 관광객이 많은 곳도 아니기 때문에 왠지 결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저 지도를 보며 길 위를 걸어야 한다.

 계획과 정비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일기를 쓰려할 때 문득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이토록 오랫동안 혼자가 돼본 적이 없다.

 여행지의 군중들 틈을 통과하지만 접점이 없는 이들 사이에선 결국 혼자다. 

 혼자라는 사실과 외로움이 나쁘지 않았다.

 모두 내가 자청한 것이다.

 넓고 좋은 집이지만 거실 소파에서 잠들었다.


 숙소를 떠나기 전에 파스타를 한번 더 만들고 남은 재료는 메모를 붙여 선반 위에 뒀다. 

 다음 여행자를 위한 마음이다. 

 나도 이곳에서 요리할 때 이전 사람들이 남겨둔 재료 도움을 받았다.


 다리를 건넌 후 오솔길을 통과했고 대부분 들판 위를 걸었다.

 짐은 여전히 무겁지만 몸이 무게와 고통에 적응한 것인지 감내할만했다.

 더 이상 짐을 덜어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차 도보 여행 경로를 걸으면서 이것저것 신경 써서 볼거리가 없으니 자유롭다. 

 저절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아말피 해안을 걷던 때와 같았다.
 바로 전날까지 로마를 걸을 때는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사진을 찍고, 검색하며 분주했다. 

 많은 것이 상반됐다.
 

 시야가 트인 들판과 구릉을 가로질러 걷는다. 

 먼 구릉에 길쭉한 나무가 세 개 네 개씩 줄지어서 있는데 미술관에서 볼 법한 풍경들이다.

 유럽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렸나 보다. 

 이곳과 피렌체, 시에나, 피사를 포함하여 토스카나주다. 

 비옥한 토양을 지닌 토스카나주는 농업 용도의 구릉지대가 많다.

 무엇이 심어져 있던 밭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수확되고 땅이 뒤엎어져 있는 곳이 많았다.

 부온콘벤토에서 시에나(Siena)까지 25Km 가는 것이 오늘의 목표인데 꽤 긴 구간 이런 황량한 들판을 보면서 걸었다.

 양옆으로 끝없이 밭이 반복되고 내리쬐는 햇살은 어찌나 뜨거운지 물을 마시고도 땀으로 다 배출됐다.
 지도상 북쪽으로 가고 있는데 태양은 계속 뒤에 있었다.

 어깨의 고통이 가장 힘들었다. 

 짐은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었지만 한번 아프기 시작한 어깨의 근육은 쉽게 통증을 느꼈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아무 곳에서나 앉아서 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래도 쉴 만한 곳에서 쉬었는데 언젠가부터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쉬어야 한다고 판단하면 바로 가방을 내리고 앉았다.
 점심도 그렇게 아무 곳에나 앉아서 먹었다.
 길 위에 발 펴고 앉아서 전날 남겨온 피자를 먹고 있으니 지나가는 차마다 속력을 줄이고 눈길을 던졌다.


 참고 참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지나던 동네 큰 마트에 들어갔다.
 직원에게 화장실을 써도 되냐고 물어보자 친절하게 이탈리아어로 설명해줬다. 

 방향을 설명하는 듯한 말과 표정을 하기에 일단 고맙다고 하고 손짓한 방향으로 가서 문을 열었는데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외부 출입문이었다. 

 그 문을 다시 닫으면 되는데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 문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문은 밖에서 다시 열리지 않았다. 

 계산대를 통과하지 않고 밖으로 나온 셈이어서 물건을 들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도둑이다. 

 스스로 어이없어하며 다시 출입문쪽으로 가니 직원들이 미소 지었다.
 민망해서 그냥 가고 싶었지만 화장실이 급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행 중에 화장실이 늘 문제다.

 필요할 때 발견하기 힘들거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까워서 참다 보니 없던 방광염이 생길 지경이다.

 이번 도보 여행과 대자연을 헤매고 다니던 노르웨이 여행이 특히 그랬다.




 한참을 걷다가 다섯 번째쯤 쉴 때 가방을 베고 누웠다. 

 하늘의 구름을 눈으로 좇으며 아말피에서 25Km도 이렇게 멀었었나 생각했다.

 내 걸음의 치열함과 육체의 고통과 별개로 세상은 너무나 넓고 평화롭다. 

 무심코 켜 둔 핸드폰에서 저스틴 비버의 ’What do you mean’이 재생됐다.

 혼자 자지러지게 웃으며 필리핀을 떠올렸다.

 필리핀을 떠나기 2주 전에 칸타, 카쿠라는 일본인 2명과 지냈는데 두 친구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에서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어느 날 방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왓 두유 민 왓 두유 민 하며 둘이 합창을 하고 있었다.

 웃으면서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같은 어학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는데 둘에게 매번 화내고 구박한다는 거다.
 수업 때 하는 말도 모르겠고, 왜 화내는지도 모르겠어서 언젠가 이 노래를 불러주기 위해 연습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샤워를 하면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이 노래를 중얼거렸다.

 그 기억이 떠올라서 혼자 낄낄대며 웃었다.

 평화로운 토스카나의 하늘과 필리핀의 하늘은 똑같이 푸르렀다. 
 사소한 기억에 한참을 웃고 나니 힘든 것을 잠시 잊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 그건 뭐지,

 이 여행 동안 정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난 뭘 하고 싶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처음에 많은 생각이 떠오르다가 이내 '어떤 것을 보는 것'에 상당수 귀결되는 듯했다.

 정말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정말 이것을 연속하면서 내가 원하는 세계여행을 꾸려가고 있는 걸까? 

 여행을 잘하는 건 뭘까, 사람들은 세계여행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나는 왜 세계여행을 떠났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갈증을 견디기 힘들었고 500ml의 생수병에 크게 두 모금밖에 남지 않은 물을 아주 잘게 나눠 마시기 시작했다.
 더위와 갈증과 육체의 고통스러움을 감내하며 계속 걸었다.

 어깨가 아플 땐 짐을 내려 이 아픔이 가시길 바랬고, 발바닥이 아플 땐 앉고 싶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만 유일해서 모든 것을 동시에 괴로워하진 않았다.


 오랜 시간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며 걷는 동안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5km 남겨둔 지점이었다. 

 토스카나의 낮은 구릉이 만드는 완만한 능선에 초록의 나무와 각종 식물이 우거져 싱그러웠다. 

 초록의 풍경이 주는 싱그러운 활력이 있어서 그 힘을 업고 계속 걸었다.

 마침에 시에나(Siena)에 도착했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거대한 문을 통과해야 했다.

 중세시대 성으로 입장한다.

 돌멩이를 짜 맞춘 도로의 울퉁불퉁함과 성벽, 중세시대 양식의 건물 사이를 걸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지켜지고 있는 것들이 반갑다.    

 지도를 보며 들어선 골목길에선 프라하를 회상했다.

 역사에서 두 차례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프라하는 다양한 건축 양식이 도시 곳곳에 퍼져있고 전쟁 중에 도 훼손되지 않았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여러 도시 풍경 속에서 프라하를 떠올리는 날이 많다. 

 점점 좁아지던 골목 끝에는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 있었다.

 캄포 광장이다.

 광장은 정면의 궁전 방향으로 경사진 조개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고, 궁전의 중앙 탑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높았다.

 주변이 중세시대 건물로 둘러싸여 있으나 굉장히 넓어서 트인 느낌이었다.

 장소에 압도되어 우두커니 서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연신 감탄하는지도 모른다.

 광장에 눕고, 앉은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 광장에 앉았다가 이후에는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다.

 눈앞에 첨탑은 누워야지만 그 끝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지도상 숙소 위치가 이 광장에서 가깝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여기며 마음 놓고 순간을 즐겼다. 

 고된 걸음을 모두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광장을 처음 보던 순간과 같은 시야를 사진에 담아보려고 애쓰다가 화각이 좁아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쉰 후 발걸음을 숙소로 옮겼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도시 풍경이 경이롭다.

 숙소는 계단식 구조로 된 경사면에 있어서 다른 건물에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창문을 열고 하염없이 도시를 바라보는 중에 누군가가 부는 피리소리가 건물이 만든 골짜기를 타고 선명하게 들렸다. 

 시에나에 대해 검색해보니 'Letters to Juliet'이라는 영화의 무대라고 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영화가 될법한 도시였다.

 피렌체로 향하는 세 번째 도보 여정 중 구간별 거점 정도로 여겼던 시에나는 뜻밖의 선물 같았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명소였으나 도보여행에 초점을 맞추며 가진 바 정보가 빈약한 탓에 더욱 놀랍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창밖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일찍 눈을 떠서 기지개를 켜고 창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었다.

 영화 속 말괄량이처럼 상체를 창문 밖으로 빼고 적갈색의 건물들과 성벽으로 오밀조밀한 도시 전경을 봤다. 

 질림 없이 아름다웠다.

 더위가 없는 이른 아침이기에 가볍게 산책을 나서서 작은 반경으로 성당과 도시 골목을 걷고, 캄포 광장 쪽으로 돌아왔다.

 시에나의 아름다움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느릿하게 아침을 보내다가 거의 11시가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25Km를 걸어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늦은 시작이었다.


 시에나에서 콜레 디 발 델사(Colle di Val d'Elsa)까지 25Km가 오늘의 목표다.

 시에나에서 출발하는 길은 아름답고 친근해서 이곳에 살면 사람이 저절로 온화해질 듯했다.

 전날 경로와 달리 황량한 흙밭은 없었다. 

 걷는 길을 따라 많은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양 옆으로 푸르른 밭이 있는데 대부분 포도와 올리브인 듯했다.

 이전엔 차도에 많이 의지했는데 이번 경로는 차도를 벗어나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좋았다. 

 차도는 경로가 분명하고 사람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심적으로 편하고 안정적이지만 걷는 재미는 떨어진다.

 이곳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중 여럿이 속도를 낮추고서 인사하거나 격려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응원은 차를 타고 가는 분들에게도 받는다. 

 그들은 클락션을 울리고 창문 밖으로 손짓을 하거나 휘파람을 불어 주곤 한다.
 그런 작은 응원과 관심이 발걸음에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른다.
  
 걷기 시작할 때 점심을 먹을 마을을 생각해두는 편인데 이번에 계획한 곳은 몬테리지오니(Monteriggioni)다. 

 도착해보니 작은 도시가 또 하나의 성이다.

 중세시대에 남과 북으로 이동하던 상인들은 이렇게 걷고, 성벽으로 둘러싼 마을에 들러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성문 안쪽에 작은 광장을 빙 둘러싼 식당 중 그늘진 테라스가 있는 곳에 앉았다.

 치킨 스테이크와 걷는 동안 포도밭을 보면서 계속 생각했던 와인을 주문했다.

 아쉽게도 토마토를 제외한 가니쉬가 없었지만 모자란 대로 좋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광장과 성곽을 본다.

 '우연히 도보 경로를 잘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쉬고, 풍경에 위로를 받긴 했지만 발바닥과 어깨의 고통은 여전했다. 

 발바닥의 통증에 점점 무릎에 힘이 들어갔다. 

 걷다가 잠시 쉴 때는 과일을 꺼내어 먹었다.
 도보여행을 하면서 매일 밤 과일을 사고 있다. 

 수분과 당도가 있는 것을 좋아해서 복숭아와 자두를 주로 구입한다.

 시에나에서도 자두 2개와 복숭아 2개를 샀고 복숭아는 아침에 먹었다. 
 때로는 아스팔트에 앉아서 복숭아를 먹고, 때로는 잔디밭에 앉아서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주무르고, 때로는 나무에 기대어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그렇게 목적지로 간신히 가고 있다.


 하루의 목표가 단일하고 분명하기에 머릿속은 깔끔했다.

 보이는 것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고 또 흘려보냈다.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었고, 그에게 사과하지 못한 일이 생각났다.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관계의 멀어짐이 안타까웠고, 관계의 회복을 떠나서 사과를 전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왠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쌓일수록 더 그러했다.

 굳이 멀어진 사람에게 연락할 정도로 복잡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지만 내가 가진 인연 중 소중한 사람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이지만 공감하는 것이 많아서 여행 중에 생각날 때가 많았다.

 그 사람이 이탈리아에 왔다면 참 좋아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 어귀에 앉아 단출한 메시지를 보냈다.

 연락을 하지 않던 1년이란 시간은 길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글을 쓰고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결국 보고 싶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이 내용의 전부였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걸었다.

 잘 되지도 않는 핸드폰으로 어떻게 와이파이를 연결했고 어떻게 그 메시지를 적어 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걷는 동안 어깨와 발에 통증은 여전했고 짊어진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육체의 고통보다 마음의 짐이 더 고통스럽고 무거웠음을 깨달았다.

 그 사람이 많이 그리웠다.


 늦게 출발한 만큼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답장을 받고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석양길을 걸었다.

 그 풍경이 어땠는지는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고 흘려보냈으나 조금 더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다시 연락할 수 있어서 기뻤고, 응당 해야 할 것을 늦었기에 미안했고, 더 늦지 않아 다행이다.

 걸으면서 떠오른 수많은 생각과 감정, 과거 회상과 회고의 과정이 영향을 준 것이라 생각했다.

 온 힘을 다해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기에 몸과 마음에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자연스러웠다.

 가장 힘들 때 가장 해야 할 것이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풀려나왔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콜레 디 발 델사(Colle di Val d'Elsa)는 엘사 계곡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콜레 디 발 델사'는 언덕 위에 성을 짓고 그 아래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강을 건너서 광장 쪽으로 향하자 여기저기 노랑 풍선과 띠가 장식돼있었다. 

 노란색이 도시를 상징하는 색인가 보다.

 시에나는 성안에 있는 중세시대 마을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성 밖에 모여 사는 소규모 마을 느낌이다. 

 숙소 위치를 찾기 위해 말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은 몹시 다정다감하게 도와줬다.

 문제는 아고다를 통해서 B&B를 예약하고 왔는데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려도 집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옆집 개만 인기척을 느끼고 짖었다.

 도보 여행을 연속하면서 거대한 배낭을 메고 25km를 걷는 것은 몸이 정말 힘들다.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버티던 의지마저 풀어놓았기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계단에 주저앉았다.

 40분가량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광장으로 나와서 젤라토 가게로 들어갔다.

 고소하고 진한 피스타치오와 초코를 번갈아먹으면서 대안 숙소를 검색했다. 

 숙소비용을 환불받지 못하더라도 일단 숙박을 해결해야 했다.

 광장에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는데 오히려 지난 숙소에 비해 저렴했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피스타치오와 초코 조합을 음미하면서 광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봤다.

 노랑 풍선이 가득한 도시에 활력이 있다.

 피렌체(플로렌스, Firenze)까지 50km 남은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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