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케빈 Feb 21. 2021

청소만 하는 부장님에 대한 고찰

[아래 글은 건설회사 근무 당시 적어놨던 글을 각색해서 다시 올린 글입니다]




 현장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다. 윽박지르며 어떻게든 일을 진행시키는 사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일 하는 사람, 대놓고 일 안 하고 유튜브나 보며 노는 사람, '내가 할 일은 청소밖에 없다' 라며 청소만 열심히 하는 사람, 오늘은 마지막 청소하는 부장님에 대한 이야기다. 


 하루 종일 현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담배꽁초며 쓰레기를 줍는 부장님이 있다. 현장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만, 한참 바쁠 때도 그러셨다. 우리 현장에는 문제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공유하곤 하는데, 그 카톡방에도 항상 청소나 정리정돈 문제 사진만 올리신다. 환경이나 청소를 담당하는 분인가 싶은데 사실 전기팀장이다. 


 부장 연봉이 1억인데, 현장에서 해야 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청소만 보시는 건지... 각종 인허가, 공사 일정관리, 발주처 상대, Vendor 협의 등으로 바빠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청소만 하신다. 그날도 하루 종일 청소만 하셔서 A과장, B대리, C/D주임이 모여 열띤 토론을 펼쳤다. 


C주임: 혹시 김 부장님 분리수거장 청소하고 계신 거 보셨어요? 오후 내내 청소만 하시네요.


B대리(전기팀): 아... 미치겠다 진짜... 협력업체 정산도 해야 되는데 그건 신경 안 쓰시고, 왜 청소만 하시냐...


D주임: 저 보고도 같이 하자고 하셔서 오전에 2시간 끌려다녔어요. 도대체 왜 저러실까요?


A과장: 내가 10년 정도 사회생활하면서 느낀 건데, 김 부장님 마인드는 이런 것 같아. '저 사람은 일을 잘해서 살아남고 저 사람은 정치를 잘해서 살아남으면, 나는 근면 성실하게 청소라도 잘해서 살아남아야겠다' 본인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시니 청소라도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려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런데 신기한 건 저런 분들이 오래 살아남더라고. 동물의 왕국을 봐. 가장 힘이 센 호랑이나 사자는 평균 10~15년 정도 살거든. 그런데 십장생 중에 거북이나 학 이런 애들은 한 60년은 산다고 하더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자기 자리 지키는 분들이 오래가. 호랑이 같이 매일 발주처와 싸워서 열심히 일 진행하는 분들은 안타깝지만 오래 못 가는 것 같더라. 


 우리는 과장님의 얘기를 조용히 받아들이며, 훗날 누군가 쭉쭉 올라가서 현장에서 청소나 하고 다니면 서로 채찍질해주자며 토론을 마쳤다.




 토론을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왔는데, 청소만 하시던 김 부장님이 현장을 지그시 바라보고 계셨다. 본인이 청소한 곳을 보며 뿌듯해 하시나 생각하며 지나치는데, 갑자기 부장님이 우리를 불러 세우시며 한마디 하신다. 


 "내일 오전에 현장 주차장에 담배꽁초 같이 줍자. 그리고 분리수거장 쓰레기 정리도 한번 하고"


이전 05화 일을 더 잘하고 싶으면 회의록을 작성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