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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케빈 Aug 22. 2022

육아일기 #3 - 아빠와 함께한 2박 3일 제주여행


 해외에서 혼자 근무하다 보니 아이랑 지낼 시간이 현저히 부족하다. 이러다 아빠를 잊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 그래도 엄마가 아빠를 그리워할 수 있게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도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니며 우리 가족이 더 집중해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노력하곤 했는데 이번엔 다르다. 엄마는 빼고 아빠랑만 둘이서 여행을 가겠단 얘기를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6살 딸아이와 아빠가 단 둘이 떠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엄마가 정말 수십 번도 더 물어봤다. "정말 아빠랑만 갈 거야? 엄마도 같이 가자"라고 하면, 한결같이 아이는 아빠랑만 간다고 한다. 그렇게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이 결정되고, 이왕 가는 거 제대로 즐기고 싶어 선택한 곳이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 여행 계획



1일 차


 아이와 여행을 다닐 때는 식사가 항상 고민이다. 제주도 하면 흑돼지나 해산물이지만 아이가 먹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렇게 공항 주변을 찾아보니 괜찮아 보이는 일식집이 있어 선택했다. 아이가 예전부터 눈을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이 날 제주도에 눈이 많이 왔고, 식당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눈밭을 뛰어다니고, 소원이던 눈사람도 만들고, 그 덕에 밥은 거의 먹지 않아 1차로 아이랑 한바탕 했다. 뭐, 한 끼 정도 제대로 안 먹어도... 


 식사를 하고 미리 예약한 쿠킹 클래스로 향했다. 평소 요리를 하지 않아 쿠킹 클래스는 처음이었는데, 와이프가 아빠랑 아이가 같이 요리를 하면 좋겠다 하여 신청해보게 됐다. 손을 씻고, 텃밭에서 신선한 무도 뽑아보고, 서로 떨어져 각자의 요리를 했다. 아이는 머핀, 나는 감귤 머랭 파이를 만들었다. 둘 다 처음 하는 체험이지만 선생님이 잘 도와주셔서 요리를 완성하고, 예쁘게 사진을 찍고, 이때 만든 음식을 집에 가는 길까지 들고 다녔다. 부서질까 봐 조심히 2박 3일을 들고 다니는데, "엄마는 누구 요리를 더 맛있어할까?"를 쉴 새 없이 물어본다. 



2일 차


 전 날 리조트에서 짐을 풀고 1층에 있는 키즈카페를 못 지나치고 정신없이 놀았더니 둘 다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호텔 조식은 둘이 먹는 양에 비해 너무 비싸 패스하고, 근처에 있는 브런치 카페를 찾았다. 아이는 나를 닮아 이런 브런치 카페를 다행히 좋아해 맛있게 먹고 둘째 날 일정을 시작했다. 


 전 날 키즈카페에서 놀았지만 오늘도 역시 키즈카페를 굳이 일정에 넣었다. 롯데호텔에 있는 '프리미엄 키즈카페'라는 타이틀이 궁금했고, 그 안에 있는 스케이트장을 아이에게 체험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을 지불하고 입장하니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많다. 난 아이들이 많으면 에너지를 뺏겨 힘들다고 느껴 쉬고 싶었지만 아이는 같이 놀자며 아빠를 찾는다. 이럴 때는 둘째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가끔 한다. 큰 규모라 아이가 정신 못 차리고 놀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제주도 하면 한라봉이니 농장을 찾아 한라봉을 따러 갔다. 비닐하우스 안에 곱게 매달린 한라봉을 보며 맛있어 보이는 애들을 골라 하나씩 바구니에 담았다. 한라봉 밭에서 서로 까서 먹여주고, 너무 신 한라봉을 먹어 같이 몸서리도 쳐보고, 그 귀여운 모습 사진에도 담고, 그리고 비닐봉지를 다 채우고 그곳을 떠났다. 아이는 이 한라봉도 엄마에게 줘야 된다고 한다. 또 짐이 늘었다. 


 당연히 이렇게 끝내기에는 아쉬우니 호텔로 돌아와 밤수영을 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휴양지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호텔에서 무조건 수영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호텔은 수영장을 외부를 통해서 가야 했는데, 것도 모르고 방에서부터 이미 수영복을 갈아입고 그대로 갔다. 가긴 갔는데,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하지... 란 생각을 잠깐 하고 일단 놀았다. 예전에는 무섭다고 튜브를 잡아 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아빠 잡지 마 혼자 놀 거야"라고 한다. 우리 아이... 다 컸구나. 물놀이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 수건으로 아이를 감싸 안고, 한 손으로 수영복과 튜브, 기타 짐을 들고 냅다 뛰었다. 아이는 뭐가 신나는지 계속 웃으며 "아빠 달려"를 외친다. 너무 힘들다... 


 힘겹게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시켜주고, 샴푸에 트리트먼트까지 하고, 머리를 말려주고, 디즈니 만화도 보여주고, 빼빼로도 먹이고 나니 정말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달라더니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운다. 밤 10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엄마한테 가자고 우는데... 달래줘도 울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너무 화가 난다. 방에 널브러진 옷가지나 수영복들이 '넌 뭐한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냐'라고 비웃는 것 같다. 허무하고, 엄마랑 떨어져 지내니 엄마가 보고 싶겠다며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그냥 화가 많이 나고 힘들어 우는 애를 가만두니 금방 잠들었다. 나도 씻고, 정리하고 이제 잔다. 



3일 차


 전 날 분명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다시 기분이 좋아 보인다. 다행인가... 아침으로 흑돼지 쌀국수를 먹이고, 젤라토도 먹이고, 아이가 좋아하는 블록놀이를 위해 브릭 캠퍼스로 향했다. 신기한 블록들 구경도 하고, 레이싱카를 만들어 굴려보기도 하고, 멋진 작품도 만들다 보니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 돼간다. 마지막으로 동문시장에 들러 엄마가 좋아하는 오메기떡을 사고 (짐이 또 늘었다) 렌터카 반납 후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하... 아마 여행 중에 이때가 제일 정신없고 힘들지 않았나 싶다. 비행기표 조금 아껴보겠다고 수하물 없는 티켓을 사 짐을 큰 배낭에 다 넣었었는데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진짜 눈물 흘릴뻔했다. 일단 보조배터리와 아이패드는 빼서 별도로 넣고, 파손될까 봐 손으로 들고 다니던 엄마 음식들, 입고 있던 재킷, 온갖 짐들을 통과시키는데 아이는 비행기를 보자마자 신나서 뛰어가고, 아이 보랴 짐 챙기랴... 그렇게 힘겹게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엄마가 마중 나와 있었다. 여태 만난 와이프 중에서 제일 반가운 순간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당연히 딸과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난 다음에도 둘이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여태 잦은 출장으로 사이버 육아만 하다 보니 와이프가 전화로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이해를 잘 못했었고, 그저 아이가 귀엽기만 했었다. 하지만 며칠간 겪은 우리 아이는 6살의 반항기로 무장한 채 짜증도 많이 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어찌나 힘들던지. 그래도 확실히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육아에 더 관심을 가지게 해 준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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