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ei - Gonzar
빌레이 - 곤사르
순례길 최대의 적, 베드버그
새벽 출발을 위해 어김없이 일어나 준비하고 있는데 메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 가방을 싸고 서둘러 방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따라 나도 서둘러 나갔다. 메그는 방문 앞에서 침낭과 배낭 속 옷들을 꺼내어 하나하나 확인하며 털고 있었다.
"메그, 무슨 일이야?"
"(팔목을 보여주며) 이것 좀 봐봐. 베드버그 물린 자국 같지?"
그녀의 팔목에 3~4번 뭔가 물린 흔적이 일자로 나 있었다. 인터넷으로 봤던 베드버그 물린 흔적과 흡사했다.
"세상에. 진짜 그러네. 간지럽진 않아? 약은 먹었어?"
"응. 알러지약 먹었어. 아직 간지럽진 않네. 베드버그 정말 맞는지 모르겠어. 일단 침낭이랑 옷이랑 다 확인하는 중이야."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 3가지를 꼽자면 그중에 하나는 베드버그일 확률이 높다. 물렸을 때 가려움이나 증상이 대단히 괴롭고 오래간다는 것, 무엇보다 한번 발견되면 퇴치가 어렵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침낭이나 입고 있던 옷은 볕에 말린 후 깨끗이 세탁해야 하고, 배낭에 들어갔을지 모르니 모든 소지품을 꺼내어 털고 말리고 최악의 경우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버그는 우리나라 말로 빈대라고도 하는데, 옛말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도 순례길 오기 전 걱정이 되어 여러 가지 알아봤고 스페인 오자마자 약국에서 베드버그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사놓았었다. 까미노 초반 일주일 동안 더워도 침낭 밖으로 쉽게 몸을 꺼내지 못했던 이유도 이 베드버그 때문이다. 운 좋게 아직 물리진 않았는데 메그가 오늘 베드버그로 의심되는 자국이 나버린 것이다. 재빨리 대응해서 다행이었고 증상은 아직 없었지만 메그의 미간이 선뜻 펴지지 않는다.
일단 증상을 지켜보기로 하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서로 알려주기로 했다.
산티아고까지 100km
달이 바뀌었던 어제에 이어 오늘도 숫자에 연연하게 되는 날이다.
생장에서 800km에서 시작해 거꾸로 내려가던 세 자리 숫자가 오늘 드디어 두 자릿수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산티아고까지 앞으로 100km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100km도 남지 않았다는 서운한 생각이 앞선다. 차분했던 마음이 다시 조금씩 들뜨고 흥분되고 있었다. 아쉽고 허전한 마음에 1초 만에 울컥하기도 하는 것이 벌써 여러 감정이 뒤섞여 마음이 묵직해 온다.
모르가데(Morgade)의 바에서 아침을 먹는다. 알베르게도 함께 운영하는 곳인데 구조가 꽤 독특했다. 중정이 'ㄷ'자 모양의 구조로 보였는데 1층은 식당과 바, 2층은 알베르게 방들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외벽과 마찬가지로 실내도 돌벽으로 이뤄져 있었고 스페인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가구들, 카운터와 분리된 구조 등이 자연스럽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순례자인지 여행자인지 모를 사람들로 가득했고 캐리어도 많은 걸 보니 여행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인가 보다.
이제 조금만 가면 100km 비석이 나온다. 비석이 나올 때까지 셋이 나란히 걸어갔다.
100km 비석은 다른 비석과 다르지 않게 평범한 곳에 평범하게 서 있었다. 깨끗해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자주 청소를 하거나 바꿔줘야 할 만큼 사람들의 손때가 가장 많이 남는 비석이기 때문일 테지.
생각보다 사람들은 차분하게 지나가거나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우리 3명의 사진을 찍어 준 스페인 사람에게 당신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니, 자기는 처음 오는 게 아니라서 괜찮다고 손을 젓는다. 하지만 찍어주겠다고 두세 번 말하자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비석 옆에 선다. 혼자 걸으면 자신의 사진을 찍는 일이 드물다. 이 길이 처음이 아니니 사진에 그리 미련과 소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그녀가 나중에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사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지점에는 100km를 나타내는 특별한 쎄요가 있다. 소은과 메그는 특별한 쎄요를 받으러 잠시 윗길로 올라갔고, 나는 까미노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드디어 99km로 내려가는 비석이 있었고 그 근처 자판기가 있는 무인 쉼터에서 100km 기념 쎄요를 찍었다.
어느새 순례자 여권에 쎄요가 한가득, 빈칸이 얼마 보이지 않는다.
메그가 갑자기 앞에서 걷는 사람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다. 몇 마디 나누더니 나에게 저 사람이 경찰이라고 말해주었다.
"저 사람 진짜 스페인 경찰이야. 내가 경찰 근무 중이냐고 물어봤거든. 근데 지금은 휴가 중이래."
"경찰인 거는 어떻게 알았어?"
"경찰이라고 쓰인 옷을 입고 있어서 농담으로 물어본 건데 진짜 경찰이었어. (웃음)"
그는 마법의 물이라며 목에 걸려있는 가죽 물통을 건넨다.
"이거 내가 만든 거야. 여기를 이렇게 누르면 술이 쭉 하고 나오거든. 한 모금씩 마셔봐."
(스페인어로 말해서 정확하진 않음)
진짜 가죽 술통을 힘주어 누르니 술이 물총처럼 나와서 입을 대지 않고도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먼저 맛을 본 메그는 아주 맛이 좋다며 두 번을 마신다. 이 정도 술은 괜찮겠지, 나도 맛이 궁금해 한번 마셔본다. 위스키 맛이 나는데 도수가 높은 와인이라고 한다. 포트와인인가 싶었는데 그것보다도 더 위스키 맛이 나는 깊고 진한 와인이었다.
"두 모금 마시니까 몸이 따듯해지고 기운이 나는걸! 좋다!"
오늘 좀 추웠나?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메그가 이런 말을 하다니 웬일일까 싶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에 들어서는 길이 꽤나 스펙터클하다.
갈라시아 루고(Lugo)에서 시작해 포르투갈까지 흐르는, 무려 340km 길이의 미뉴강(Minho River)이 사이에 있어, 꽤 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올라가면 마을로 들어서는 대문 같은 아치 기둥이 있다. 기둥을 통과하면 철 간판이 나오고 또다시 아주아주 가파른 돌 오르막길을 꽤 올라가면, 그제야 마을이다. 대부분 이 아름다운 마을 포르토마린에서 멈추지만, 우리는 오늘도 어제처럼 조용한 곳을 찾아 8km 떨어진 곤사르(Gonzar)까지 간다.
사리아 이후로 순례자들이 많아질 것을 걱정했는데 역시 순례길에서의 걱정은 기우다. 그렇게까지 붐비도록 사람이 많다고 느낀 적은 없다. 사리아도 그랬고 여기도 오히려 한적한 느낌이다.
12시가 되어 포르토마린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어제는 너무 잘 먹었더니 이후에 걷기가 힘들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각자 간단히 보카디요나 샌드위치를 시켰다.
아름다운 리카르도를 오늘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다. 어디까지 가는지 물으니 우리와 같은 곳을 간다고 한다. 오늘도 마음이 통하였다.
잘 쉬었으니 이제 남은 8km는 단숨에 가야 한다. 땡볕을 지나다가 울창한 숲을 지나다가 또다시 땡볕과 숲을 반복해 걸었다. 어느새 우리를 따라잡은 리카르도와 함께 걸으니 즐겁다.
언제나 늘 단 한 번도 틀림없이 먼저 마을에 도착했던 메그가 오늘 처음으로 나보다 뒤처져 숙소에 도착했다. 그래봤자 5분 내외의 거리였지만,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이상했다.
'나의 까미노'에서 '우리의 까미노'로
샤워와 빨래를 마친 후 마시는 시원한 샹그리아는 충분한 위로가 된다. 뭘 위로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위로'라는 단어 말고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식당에서 다 같이 모이기로 했는데 어쩐 일인지 메그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메그가 샤워 후에 몸이 안 좋아졌다고 하며 몇 차례 기침을 한다. 편도선이 붓고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해서 이마를 짚어보니 불덩이다. 오늘 뭔가 평소와는 달랐던 메그의 모습이 필름처럼 머리를 스친다.
일단 약 먹고 저녁까지 쉬어보겠다는 말에 충분히 쉬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샤워 후에 잠시 열이 올랐다가 다시 괜찮아진 적이 있으니 메그도 금방 열이 떨어지길 바랐다.
두어 시간 뒤에 방에 들어갔는데 메그는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다. 가끔 기침을 하는 걸 보니 완전히 잠들진 않고 약 기운과 함께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메그가 아프다.
걷고 난 후에도 늘 언제나 가장 기운이 넘쳤던 그녀가 오늘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있다.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 당장 푹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내일 일정은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말 정도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저녁이 되었고, 메그는 열이 조금 내렸다며 간신히 나와 샐러드를 먹었지만, 살만큼만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내일 메그가 출발할 상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소은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우리의 결론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이제는 혼자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지 않아.
예전 같으면 각자의 컨디션과 일정에 따라 언제든지 쿨하게 헤어질 수도 있었고,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도 있었는데, 어느덧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처음에는 '나의 까미노', '너의 까미노'였는데, 어느새 '우리의 까미노'가 되었구나.
우리의 까미노.
이걸 깨달으니 마음이 요동치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bonus!
+알베르게 : Hosteria de Gon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