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오 뻬드로우소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20km
평소와 비슷하게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출발한다.
20km면 이제 식은 죽 먹기.. 아, 아니 길게 걷는 편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여유를 부릴 틈은 없다. 오전 중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고, 산티아고 사무실에서 순례길 완주증서도 받아야 하고, 근처 한식당에서 점심도 먹기로 했으니까. 저녁엔 대성당 미사도 참석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루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산티아고를 느끼고 싶었다.
13km
아침을 먹기위해 멈춘 바에서 우리는 두리번 거린다. 아는 얼굴을 만나게 될까 하는 마음에.
어제 메그에 이어 오늘은 소은의 오랜 까미노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환호하며 부둥켜 안았다.
10km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 오늘을 수도 없이 상상해 왔다.
두근두근하는 마음과 벅차오름, 동시에 이별도 작별도 새로운 시작도 해야 하는 순례자들의 마음은 벌써 며칠 전부터 심란했다. 그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길의 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그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왔고 덕분에 긴 시간 이별을 준비해 왔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들뜬 마음은 가라앉고 모두 차분하고 깊은 눈이 되어 반짝였다.
우리도 담담한 표정으로 걸었다. 가끔 아쉬움이 몰려오면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쳤다.
다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 나도 그렇다는 웃음.
그러면 조금 용기가 났다.
5km
완만하고 긴 오르막길에 올라서니 성당이 있다. 아마도 산티아고 대성당 전, 쎄요를 찍고 작은 기도를 드리는 마지막 성당이 될 것 같다. 성당을 나오니 저 너머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저기다.
오르막은 끝나고 길은 조금씩 도시로 내려가고 있었다. 메그가 저기 대성당이 보이는 것 같다며 손가락으로 도시를 가리켰다. 나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예상했던 것처럼, 내가 불편해하던 죄 없는 그 사람은 어김없이 나타나 우리 근처에서 걷고 있었다.
3km
도시로 들어서는 고가 다리를 건넌다. 여기저기 산티아고임을 알리며 순례자를 맞이하는 설치물이 보인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으니 이제 남은 거리를 표시하는 사인은 없다. 그저 대성당을 향한 화살표만 있을 뿐이다.
2km
앙다문 입술이 왠지 자꾸 마르는 것 같았다. 골목을 둘러보는 눈은 기쁘다가도 슬프다가도 하며 방황했다. 거리를 살피는 듯 했지만 진짜 무엇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자꾸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1km
익숙한 연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순간 심장도 두근거린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곳을 통과한다.
0km
그리고 우리는 까미노 33일 만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고 순례자 오피스로 가려는데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들렸을 때 확신해서 뒤돌아보니 세종 쌤들이었다! 나의 첫 까미노 친구였던, 바욘에서 함께 같은 버스 타고 생장으로 와 생장 오피스에서 인사했던 사람들. 까미노 9일째 산또 도밍고에서 헤어지고 무려 24일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여기 산티아고에서 만나다니요. 선생님 이건 너무 영화 같잖아요. 너무 반갑잖아요.
순례자 오피스에서 까미노 완주증을 받고 예약해 놓은 한식당으로 달려갔다. 진짜 달려간 건 아니고 조금 먼 거리여서 택시를 탔다. 대중교통을 탄 건 까미노 이후 처음이었다.
한식당에서 소주와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잔뜩 시켜놓고 신이 났다. 내일 다시 걷지 않는다면 좀 더 먹을 수도 있었지만, 아직 우리에겐 또 다른 5일이 남아있었다.
산티아고의 저녁은 꽤 추워서 경량 패딩을 입고 나와야 했다. 기념품 가게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 산티아고 대성당 앞, 저녁 미사를 기다리는데 비가 촘촘히 내리기 시작했다.
미사가 끝나자 성당에서 나오는 사람들로 대성당 주변은 금세 온기와 활기로 가득해졌다. 내일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5일 후 순례길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시 돌아오게 될 곳이니 괜찮다고 위로한다.
성당에 켜진 불빛을 가슴에 담고 비를 맞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의 기분을 설명할 길이 없어 그냥 우리는 숙소에서 엄청 웃었다. 작은 것에도 깔깔거리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소은이 무심코 읊조린 말.
"이제 더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지 않아. 우리 세 명으로 충분해."
소은의 말은 우리가 무시아까지 걷고자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표현하기 어려운 수많은 말들이 가슴에 요동치는 가운데 소은의 작은 한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고 충만하게 해주었다.
모두 잠든 산티아고 깊은 밤,
불길하면서 익숙한 듯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잠이 깬다.
어? 이상하다. 몸이 왜이러지..
분명 추운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불길하다.
내일은 괜찮겠지,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정신 차리자 하며 밤을 지새웠다.
bonus!
+알베르게 : Albergue Alda O Fogar de Teodomi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