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iago De Compostela - Negreira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네그레이라
살아서 숙소에서 만나
밤새 뒤척이며 설마 했던 몸 상태가 아침이 되자 현실로 다가왔다. 콧물이 조금 나고 몸이 처지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몸살이 오려나. 잘 모르겠다. 나아질까? 잘 모르겠다. 일단 출발하기에는 무리가 없으니 가지고 있는 약을 빈속에 다 털어 넣고 출발한다.
새벽 산티아고 대성당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 시간에 배낭과 함께 성당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도착한 것일까, 출발하려는 것일까, 아님 떠나려는 것일까? 기둥에 기대어 앉아 성당을 올려다보는 저이는 무슨 생각에 빠진 걸까?
우리는 어제 까미노 프랑스 길을 마치고 오늘부터 피스테라-무시아 길을 시작한다. 고민하던 소은도 함께다. 100km 가까이 되는 길, 5일 동안의 여정이 될 것이며 바다의 끝에서 우리는 멈추게 될 것이다.
환희와 새로움이 넘치고 다사다난 시끌벅적했던 프랑스 길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작고 조용한 우리만의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5일이라면, 바다라면, 비로소 이 길의 끝과 시작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과는 달리 몸은 몹시도 힘들었나 보다.
약 기운 때문인지 정신은 몽롱해지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걷자. 일단 걷자.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
나란히 걷던 소은도 자꾸 뒤처진다. 소은은 발목이 안 좋은데, 그래서 종아리 근육을 더 쓰다 보니 자꾸 쥐가 나기 시작했다. 한번 난 곳은 두세 번 계속 나서 자주 멈추어야 했다. 결국 다들 한 번씩 탈이 나고 있었다.
나는 소은의 다리가 걱정되었지만 보살펴 줄 주제가 못 된다.
일단 살아서 숙소에서 만나자.
으슬했던 몸컨디션과 상관없이 실제로는 해가 쨍쨍하고 더운 날이었다. 약 기운에 반쯤 잠든 상태임에도 가는 곳곳 아름다운 길이라 사진을 멈출 수가 없었다.
21km 남짓했던 오늘 여정이 길게 느껴졌지만 관성처럼 기존의 속도는 유지하며 걸었다. 메그는 조금 앞에서 가장 먼저 도착했고, 쥐가 자꾸 나던 소은은 뒤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샤워하고, 빨래는 또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한 가지만 생각했다. 얼른 다 하고 밥 먹고 약 먹고 자자.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몸살 기운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냉장 코너에 가니 오한이 확 느껴져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당분간 친구들과는 따로 행동하고, 오늘 식사도 혼자 먹는 편이 좋겠다. 컵라면(국물)과 고기(단백질) 들어있는 전자렌인지용 요리를 사서 돌아왔다.
나는 아프다. 이제 진지하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원래 내일 34km를 걷기로 했으나 힘들다고 판단, 28km를 걷기로 했다. 내일 숙소를 1인실로 바꿔야 하나 싶었는데 하루만, 딱 하루만 더 상태를 보고 싶었다.
다행히 기침이 심하진 않았다. 기침이 심하면 상태가 어쨌든 아마 멈추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오늘 생각보다 잘 걸었고, 콧물과 오한이 조금 느껴지는 정도니 약 먹고 푹 자면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한국에서부터 30일 넘도록 지고 와서 쓸모없을 줄 알았던 약을 기어코 쓸 일이 생기는구나.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침대에 일찌감치 누웠다.
저녁쯤 빨래를 걷으러 간 일, 화장실 가고 약 먹은 일 외에는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약기운에 온몸에 퍼진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꿈인가. 차라리 꿈이면 좋겠다.
몸이 푹 꺼져버려 침대를 뚫고 바닥을 뚫고 자꾸만 저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bonus!
+ 알베르게 : Albergue Alecrín (Negrei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