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러닝크루 관찰기 1편 : 이들이 러닝크루에서 뛰는 이유
동갑내기 러닝크루 관찰기 1편 : 이들이 러닝크루에서 뛰는 이유
최근 들어 새로운 형태의 모임으로 ‘크루’가 떠오르고 있다. 크루는 ‘공통의 목적을 위한 자발적인 모임’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의무참석이나 회비 가입 등이 수반되는 동호회와 달리 상대적 구속력도, 연대감도 약하다. SNS를 통한 손쉬운 모임이 가능하고, 의무 활동 참여의 부담이 덜하며, 활동 이후 빠르게 해산한다는 특징 덕분에 크루는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14년 이후, 러닝을 즐기는 모임인 ‘러닝 크루’는 달리기 문화를 주도하는 트렌드이자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러닝 크루는 거주 지역, 나이, 관심사, 대학교 등 다양한 특성으로 조직된다. 이 중에서 ‘띠 크루’는 나이, ‘동갑’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생 크루라면, 2000년에 출생한 사람만 해당 크루에 가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러닝은 홀로 하는 운동이다.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에 따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달리는 법을 알고 있다. 장소, 장비의 제약도 크지 않다. 큰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달릴 수 있는 셈이다. 스포츠의 종목으로서의 육상은 각자의 기록을 비교할 뿐,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맞붙지 않는다, 또한 육상의 달리기와 달리 러닝 자체는 타인과 기록을 비교하지 않고 그저 뛸 뿐이다. 즉, 개인의 운동이다.
그러나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독특하다. 활발히 활동적인 동갑내기 러닝크루를 관찰해보면, 구성원들에게는 끈끈한 유대와 강한 소속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상대적 구속력이 약한 새로운 형태의 모임 ‘크루’에서, 혼자 하는 운동의 성격이 강한 ‘러닝’을 매개로, 언론에서 개인의식이 강하다고 떠드는 소위 ‘MZ세대’들은 왜 나이를 매개로 집단을 이루고 연대하는가? 즉, 아래의 질문이 제기된다.
“이들은 왜 함께 뛰는가, 그리고 왜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뛰는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 시내의 동갑내기 러닝크루 세 곳과 인터뷰하였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동갑’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이것이 러닝과 유대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동갑내기 러닝크루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러닝크루’를 들여다보자.
(1) 나만의 약속에서 남과의 약속으로
러닝이 개인의 운동임을 증명하듯, 크루원들이 러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각각이다. 체중 감량, 체력 증진, 흥미, 자기계발 등등 크루원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러닝을 시작했다. 다만 이들이 크루에 가입하게 된 까닭은 의지의 영역 때문이었다. 처음의 러닝은 오로지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때문에 이 약속을 이어가기 어려웠거나, 혼자만의 약속이 어느 순간 고리타분해진 이들은 어느 순간 크루를 찾고 있었다. 러닝크루의 정기적인 달리기 모임은 ‘자신과의 약속’을 ‘타인과의 약속’으로 전환시켰다. 러닝이 의지의 영역에서 의무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A : 혼자 가끔 뛰었는데 꾸준히 하지 못했어요. 체력을 기르고 싶었는데, 같이 뛰면 스스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니까, 지속적으로 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B : 저는 다이어트를 하려고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어요. 혼자 뛰면 금방 지치고 포기하고, 의지력이 사실 없어요. 크루는 친구랑 같이 나오기로 약속을 하고, 힘들어도 서로 이끌어주니까 좋은 것 같아요.
(2) 각자의 목표를 응원하며 쌓이는 유대
“파이팅!”
처음 크루원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의지 증진을 위해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뛰는 장소와 시간이 같을 뿐, 타인의 목표와는 무관한 나의 달리기다. ‘내 옆 사람은 다이어트를 위해 달리는구나’ 혹은 ‘저 사람은 기록 단축을 하고 싶구나’보다는 ‘나는 이번달에 2kg을 감량하겠어!’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함께 달리는 순간, 함께 달리는 와중에 유대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서로의 목적을 정확히 알지는 못할지라도, 함께 뛰는 행위를 격려하고 응원한다.
A : 저는 뛸 때 힘들어서 뛰기 바쁜데, 뛰는 와중에 누군가가 파이팅을 해준다거나, 같은 크루원들이랑 다 같이 달리기 끝나고 하이파이브하면 반가운 느낌도 들고, 뿌듯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서 계속 참여하는 것 같아요.
물론 실질적으로 러닝크루에서의 달리기는 대부분 ‘조용히 달리기’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조용한 와중에도, 힘들어하는 크루원 옆에서 뛰어주기도 하며, 서로 힘든 순간마다 “파이팅!”을 외친다. “힘들어지면 의식적으로 다리를 높게 들어보세요!” 달리는 팁을 주며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이러한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 크루원들은 러닝크루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더 빠르게
크루에서 정기적으로 뛰게 되면서, 이전보다 잘 뛰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도 한다. 맨 처음 막연하게 시작했던 달리기는, 어느 순간부터 페이스, 거리 등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신의 기록이 나아지는 것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는 한편, 보다 잘 달리고 싶다는 ‘기록 욕심’이 나기도 하고, 타 크루원들의 기록을 보며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한다.
‘더 잘 뛰기.’ 새로운 목표가 생겨나고, 자신과의 약속을 새로 세운다.
A : 점차 거리가 늘어나면서 성취감이 들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과의 교류 측면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계속 운동하려는 측면도 있죠.
C : 처음에는 무기력함을 벗어나려고 뛰기 시작했는데, 크루에 들어오고 잘 달리는 친구들을 보니까 기록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가입하기 전에는 구체적인 목표 없이 뛰고 싶은 만큼 뛰었는데, 지금은 풀코스 완주해보자 이런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기록 달성’을 위해 러닝크루에서 계속 달린다. 가입 초반 ‘의지’를 위해 함께 달리기를 했다면, 이후에는 ‘잘 달리기’ 위해 달리는 셈이다.
D : 혼자 달리는 것보다 같이 달리는 게 기록 단축에 도움이 돼요. 러닝을 잘하려면 오래 달리는 훈련이나 인터벌 훈련 같은 것들이 필요한데, 이런 것들은 혼자 하기 힘들어요. 무조건 다 같이 뛰는 게 목표 달성에 도움이 돼요.
B : 같이 달리다가 제가 너무 쳐지거나 제가 멈추면, 민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더 오래 뛸 힘이 생겨요.
E : 혼자 뛰면 금방 지쳐서 느려지고 오래 못 뛰는데, 같이 뛰면 옆에 친구가 계속 뛰니까 혼자 멈추기 그래요. 그래서 같이 뛰면 기록이 더 잘 나오고 더 오래 뛸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이 달리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목적 달성은 쉬워진다. 훈련은 수월해지고, 힘든 순간마다 옆 사람의 응원 덕분에, 혹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들은 더 빨리, 더 오래 달리게 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러닝크루 활동의 중요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타인이 응원해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굳이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같이 뛰는가? 이 질문은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