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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Nov 02. 2023

마흔은 그냥 마흔 일뿐이야.

인생에서 마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40세. 내가 이 땅에 사십 년을 서있었다니... 새삼 참 신기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가리켜 '불혹'이라 칭하며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아니했다고 하는데 불혹이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미혹되어 있는 것만 같다.


'불혹' 보다는 '미혹' 혹은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마흔을 동경해 왔다.

마흔이 되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 헛된 바람만은 아니었던 근거도 있다.

한참 물에 젖은 솜이불 같은 짐을 등에 지고 흐리멍텅하고 탁한 눈빛을 발사하며 다녔던 나의 청춘기 때, 친구와 의미 없이 광화문, 인사동거리를 쏘다니기를 즐겼던 때에 우연히 들어간 사주카페에서 젊고 똘망한 안경을 쓰고 독심술을 하는 듯 쏘아보던 청년이 나에게 마흔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주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로 그 청년을 못 믿어서는 아니었지만 난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사주를 아주 가끔 보러 다녔었다. 웃기는 말 같지만 그만큼 의지할 곳이 없었다. 마음에 구멍이 점점 커져가고 있을 때였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올 때였다. 나의 첫 번째 스무 살의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다.


어디 가서 물어보아도 내 사주의 틀은 비슷했다.

난 큰 태양불로 태어나서 불이 가득한데 금의 기운이 모자라다. 아무리 돈을 모으고 싶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어린 시절 고생하지만 말년이 좋다. 특히 사십 이후에 금의 기운이 들어오면서 좋아질 것이다 등등.

현재의 시간을 견뎌내기에 그때의 현실은 너무 퍽퍽했지만 이 이야기들은 터무니없다기보다 나에게 나름 희망적이었다.


나는 정말 마흔이 되면 모든 것이 뾰로롱 요술봉으로 마법을 휘두르면 변신하는 것처럼  내 인생이 변할 것만 같았다. 힘이 들 때마다 어서 빨리 마흔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흥미로운 나의 사주 이야기를 한 친구에게 신이 나서 나불 거렸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이야기를 듣고 싱긋 웃으면서


" 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어디 가서 점 보면 웬만하면 다 마흔에 좋아진다고 말한다고 하더라. 엄마가 한번 생각해 보래. 마흔은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 어느 정도 인생의 안정권에 들어가 있을 때라고. 뭐 거리낄 것 크게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때라고 그러던데?  난 그 말도 맞는 것 같더라 "


...... 너무나 설득력 있는 친구 어머님의 말인지라 난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내 희망이 조금 무너진 것 같았지만 난 마흔의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나도 뭐 그렇게 평범하게 살다 보면 마흔 쯤에는 마음 편안해질 날이 오겠지'

내가 마흔을 동경하게 된 이유이다.


사실 진짜 마흔이 된 지금 미로 같은 인생의 숲을 방황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내 마음은 기울어진 추처럼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지도 않고 파도에 정신없이 휘청거리는 배처럼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또 완전한 평안과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라서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찾자면 '애매하다'라는 이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 놓고 여유가 생긴 인생 어느 정도의 안정권에 들어온 것도 아닌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하는 찰나이고 오랫동안 다닌 회사를 '전 마흔에는 제가 좀 더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라며 호기롭게 박차고 나온 상태. 뭐 그저 그런 애매한 상황이다.


그래서 사주의 말도 친구 어머님의 말도 어느 것 하나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말들이 다 틀린 것 같지만은 않은 어중간하고 애매한 마흔. 이것이 현재 나의 정확한 포지션 같다.


딱 하나 애매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첫 번째 스무 살보다는 잦은 흔들림에 대처할 수 있는 나만의 꼼수들이 게임 아이템처럼 조금은 장착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정말 잘 알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이것들이 두 번째 스무 살에는 크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을 주고 있다.


 두 번째 스무 살, 내 나무의 뿌리는 첫 번째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불혹도 미혹도 아닌 나의 마흔은 그냥 마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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