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미 Nov 30. 2023

삶을 붙들어 매야 할 작은 이유 하나만 있더라도

오늘은 그냥 이유 없이 조금 우울한 날이다.

이유 없이 눈동자 끝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날이다.


세상 밖 작은 이야기에 감동받아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슬픔이 애잔하게 전해져 눈물이 맺힌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좋아하던 옛 노래를 만나 마음이 몽글해지고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기가 막힌 문장을 만났을 때 눈물이 맺힌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냥 팍 하고 눈물이 터져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냥 눈시울만 붉어지고 말 뿐이다.


예전에는 누가 뭐라고만 하면 홍당무 같은 얼굴을 하고서 서럽게 울어댔는데... 눈물을 못 참는 내 모습이 못생겨서 남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처럼 눈물이 맺힌 날 나에게 조차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눈동자 끝에 눈물이 맺힐 뿐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오늘은 세상을 조금 뿌옇게 보고 싶은 날인가 보다. 그냥 마냥 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허허실실 살고 싶은데 세상은 참 아름다운 만큼 잔인하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있으면 전염될까 두려워 모른 척하는 나의 모습도 싫고 항상 사뿐사뿐 걸으며 걱정 투성이인 머리를 들고 전전긍긍 살고 있는 모습도 싫다.

무엇을 보기 위해 태어났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본다.


세상은 참 복잡하고 미묘한 것 같다.

참 좋은 것이구나 하고 마음을 놓으면 또 아픈 일이 생기고 이제 좀 살만하구나 하고 마음을 놓이면 온 신경을 다 써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한참을 달려온 탓에 그동안 삶이, 사람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많이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참 귀하고 소중한데 사소한 바람에도 무너지고 쓰러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구나.


나도 그렇고 주변도 그렇고 마흔을 넘어가면서 건강에 문제가 하나 둘 생겨나고 갑작스러운 변고를 당하기도 하고, 마음은 조금 여유로워졌지만 앞으로 주어진 시간만큼은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을 참 불안하게 한다.


삶을 붙들어 매야 할 이유들은 늘어나는데 아픈 이유들도 함께 늘어나는 것이 참 슬픈 일이다.

겨우 잡은 여유와 내가 찾은 행복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두려워질 때가 있다.


마냥 긍정을 또 마냥 부정을 말할 수 없는 어느 적당한 선을 찾아 마음에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가끔 이 균형이 깨질 때 나의 마음도 부서질 것만 같다.


삶에서 무언가를 얻어내지 못해 안간힘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 억척스러움이 내가 지금 사람답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삶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바라며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애먼 곳을 향해 있는 시선을 거두고 싶다.


결국에 붙들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뿐일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쓸 줄 알아야 하고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밀 줄 알아야 하듯이,

때로는 꼿꼿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마음은 평안하게 만들되 바삐 대처해야겠지.


세상에서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아프면 약을 먹고 치료하면 되는데 나의 아픈 곳도 다른 사람의 아픈 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상처가 깊게 새겨진다. 오늘은 그러한 모습들이 너무 자세히 보여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커다란 돋보기를 쓰고 있는 것 처럼 여기저기 아픈 마음들이 나를 애잔하게 한다. 그냥 모든 것이 가엽게 느껴진다.


언제쯤 이 삶의 순환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적응하게 될까. 언제쯤 이 삶에 고스란히 순응할 수 있을까.


너무 애착하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말자.

삶을 붙들어 매야 할 작은 이유 하나에 집중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