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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Dec 07. 2023

참 예쁜 당신의 말을 닮고 싶다.

나는 요즘 말의 파급력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본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부분이지만 요즈음 많은 상황 속에서 언어의 전달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과연 얼마만큼 상대방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의심해 보는 일이 왕왕 생기곤 한다.


예전에는 더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단순히 내가 하는 말들은 의례 표현하는 만큼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회사에서 내 목소리 하나를 여러 명의 귀에 전달하고자 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반응이 가지각색인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표현력의 문제인가, 핵심 언어가 잘못되었나?, 목소리? 발성? 내용?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팀원들이 나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닐터인데 내가 너무 많은 부분을 알아주길 바랐던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또 언젠가는 25년 지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서로의

말들을 오해하고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친구를 배려하려고 의도를 가지고 했던 제안이 어떠한 오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던가, 오가는 많은 말 가운데 마음을 담은 진심을 파악해 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하며 친구들은 당황해하였다.


그때 느꼈던 것이 우리가 오랜 시간 서로를 잘 안다고 짐작하고 했던 ‘말로 포장된 마음’이  무조건적으로 잘 전달될 것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즈음부터 말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왜 그토록 많은 현인들이 말에 관한 명언을 남겼는지 이제야 크게 와닿기 시작했다.


나는 언어 순발력이 좋은 대신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은 아니었다. 나름 재치 있다고 생각하고 툭툭 내뱉는 말에 상대방을 톡톡 쏘이게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순발력도 줄어드는 것인지 상대방에게 무례일 수 있는 짖꿎은 말들이 줄어듦을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관계 속에서 침묵이 지배하는 시간을 특히 참을 수 없었고 재치 있게 말을 해야 한 번쯤 더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의식적으로 말을 더 하려고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침묵이 나쁜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까지 와닿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말을 내뱉기 전에 생각하게 되었고 타인을 응원하는 말들에 힘이 실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조심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릴 때 나는 말을 쉽게 툭툭 내뱉으면서도  타인의 말에 깊게 상처받는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할 때는 의도가 없으니까 괜찮아, 장난이자나, 말실수야, 나 안 그런 거 잘 알자나, 포장하면서도 타인이 주는 말의 상처에는 너그럽지 못하였다.


말은 칼만큼이나 사람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 상처받은 만큼 쉽게 뱉은 말로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내진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웃기지만 나는 말에 참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오랜 시간 말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남긴 것 같다. 나 또한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을 가족에게 많이 내뱉었었다. 그들이 아플 거란 생각보다 나의 아픔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엄마에게도 가시 돋친 말로 불효한 순간이 많았다. 말로 뱉은 상처는 서로를 더 잘 알수록 흔적을 오래, 깊게 남기는 것 같다.


이렇게 내가 말에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기준이 명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넌 사람 만나기 참 까다롭다고 했었는데 남편과 살아보니 나에게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 ‘말‘이었다.


남편은 말을 참 예쁘게 한다. 말을 예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또 별거 없는 말 같은데도 고마움이 마음에 오래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며칠 전에는 주말부부로 지방에서 올라온 남편이 지역 명물 떡을 한 박스 사 온 적이 있었다.

갑자기 웬 떡이냐고 무심하게 남편에게 물으니


“ 응, 그냥. 연애할 때 김아름이 잘 먹던 생각이 나서,“


정말 별거 아닌 말이었다. 그냥 내 생각이 나서 사온 떡이라는 대답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곧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남편한테 눈물 나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장난스레 눈물, 애교섞인 말을 하며 웃어넘겼다.


남편은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 내가 눈시울을 붉히는지 감이 안 왔는지 진지하게 왜 우는 것이냐고 물어왔다.


“응, 내가 잘 먹던 생각이 나서 사 왔다는 말,,, 누가 나한테 이렇게 따뜻하게 말해준 적이 없던 것 같아서...”


물론 따뜻한 말들을 안 듣고 살았던 것은 아닐 테지만 남편의 말은 더욱 따뜻하게 전해졌다. 당신과 내가 만든 가족. 가족에게서 듣는 따뜻한 말이 참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늘 못하는 것만 지적받았던 기억이 많은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남편의 말은 공치사가 많아 보여도 더욱 따뜻하게 들려온다.


나의 본래 가족은 헌신, 서로를 안쓰럽게 보는 눈빛, 따뜻한 배려가 있다. 하지만 따뜻한 말이 결여되어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따뜻한 말’을 남편이 가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족은 나의 거울이기도 하니까 그가 가진 예쁜 말을 내 것이 되도록 가져오고 싶다.


부부사이에는 사랑의 언어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인정해 주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헌신, 스킨십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말, 대화가 중요한 사람이다. 서로의 모국어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잘 산다는데 내가 남편이 바라는 사랑의 언어를 가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사랑의 모국어를 충족시켜 주는 남편에게 새삼 고맙다.


말은 참 힘이 크고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

내 생각을 꺼내어 보여주는 일인데 당연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쉽게 할 수 있다고 그동안 너무 편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그동안은 나에게 상처되는 말에만 집중하며 곱씹고 힘들어 했는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혹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누군가 상처받진 않을까 말 앞에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예쁜 말을 하고 싶다.

참 예쁜 당신의 말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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