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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Nov 09. 2023

가을에 머무른 다는 것

가을의  끝자락이다.

이상하게도 가을만 되면 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 인생의 계절은 가을 어디쯤인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확실하다.


여름의 끝자락이라고 생각되었던 계절에는 발버둥 치듯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었다.

그때는 타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무언가 뜨거웠고 삶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붓듯 일도 인간 관계도 공부도 여행도 모든지 열심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슴이 콱 막혔다.

난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모든 순간을 집중하였는데 점점 에너지를 잃는 기분이었다.

삼십 대의 마지막 순간에 타오름은 활활 타오른 만큼 꺼질 때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음도 약해져 있고 몸도 따라서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했다. 난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아등바등 살아온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아스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렸고 불안하기만 했다.

열심히 했는데도 크게 나아지는 것 없이 늘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았다. 그냥 힘겹게 살아갈 앞으로가 막막했다.  확실히 쉼이 필요했다.

몸은 계속해서 나에게 멈추어 가라고 경고했다.


나는 모든 것을 멈추어 보기로 했다.

쉼표를 찍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고 내가 해놓은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

조금은 서운했지만 나는 나아감 보다 나와 잘 지내기 위한 시간을 선택했다.


시끄럽고 아슬아슬하고 불안했던 일상은  벗어났지만 늘 그렇듯 삶이 계속되는 이상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는 꼭 새롭게 나타난다.

이 멈춤을 가슴 깊이 맘 놓고 즐길 수가 없다.


또 다른 고민, 또 다른 불안들이 날 조금은 힘들게 한다. 하지만 이 멈춤이 내 삶에 일시 정지가 아님을 안다.


나는 가을 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계절의 가을은 짧지만 내 인생의 가을은 조금씩 천천히 가고 있다. 지고 있는 가을이 아닌 여물기를 기다리는 가을이다.


돌아보면 참 미숙했고 어리석었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지난날들이 지나간다.

봄과, 여름의 계절에는 나를 너무 몰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때에 기분이 좋은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은지, 혼자 지내는 것이 좋은지. 때론 관계 속에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였고 어느 날엔가는 나의 실수들이 괴로워서 잠 못 이루기도 하였다.

내가 받은 상처, 내가 준 상처들이 나를 괴롭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곰삭은 시간 안에서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나는 가을의 때를 지나는 만큼 조금은 깊어진 것 같다. 누군가와 불편한 마음을 가져도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 줌을 알고,

커다란 꿈을 이루지 않아도 삶에 작은 지점에

행복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같은 나이를 살 수 없다. 지나갈 앞으로의 시간들은 항상 처음인 나이가 된다.

매 해 처음일 것이지만 나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 만난 많은 나를 거치면서 나와 잘 지내는 방법들을 배웠다.


되도록 오래도록 가을 안에 머물고 싶다.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나를 채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삶에 앎이 있어서 좋다. 배움이 있어서 좋다.

나를 알아가는 이 여정이 좋다.


그냥 좋아하는 햇살을 맞으며 걸을 때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서 먹을 때

외로운 일상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릴 때

싱숭생숭했던 마음에 봄 비가 내릴 때

우산이 후드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을 때

그 모든 때에 내가 있다.


이렇게 나를 다독이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가을만큼 나는 깊어질 것이다.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쉼이 나에게 깊이를 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왜 이토록 삶이 힘겼다 말하면서도

또 눈물 나게 좋고 아름답다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참 아이러니한 마음이다.

.

난 이 나이에서 마음껏 배우고 싶다.

그리고 다음 걸음을 이어가고 싶다.

언제까지 이 쉼이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괜찮다고 가을을 조금 천천히 보내라고

가을 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라고

이 가을을 만끽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빨갛게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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