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상태여야 하는데 요즘 나의 마음은 불안하기를 더 자주 선택하는 것 같다.
불안하기가 평온보다 익숙한 듯 마치 오랜 습성처럼 저녁이 되면 더욱 불안하기를 선택한다.
사실 회사를 그만 두기만 하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 시끄러운 고민들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퇴사뿐이라고 생각했다.
진절머리 나게 집에서 쉬어 보자라는 마음뿐이었는데 진절머리 나는 쉼에서 평온은커녕 점점 내 몸 상태는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 임파선염, 위염, 갑상선 기능저하 기타 등등... 추가로 디스크까지 ^..^
분명 무엇인가에 스트레스를 심히 받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회사 다닐 때보다 컨디션이 이렇게 안 좋을 수 있을까 싶다.
왜 그러는 거야?라는 주변 지인들의 물음에 "나도 몰라?"라는 대답밖에는 할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매일 밤 온갖 걱정을 공처럼 굴려서 커다랗게 만들고 급기야는 그 큰 공에 깔려 답답해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상상,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미움으로 키워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뺀 상황만 본다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에 이르러야 한다.
원가족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과 지지, 무엇을 해도 넌 너이기에 괜찮다고 말해주는 남편이 있고, 지긋지긋해 마지않던 회사를 드디어 그만두었고, 아직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작은 여유도 있는데, 무엇하나 거리낄 것 없는 상황인데 오로지 누리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친구는 나에게 아기라도 생기면 이런 여유는 다시없으니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맘껏 누리라고 한다. 나도 나의 쉼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소란스럽다. 평온이 아닌 불안, 공허의 기운이 나를 휘감고 있는 것 같다.
사소한 일에는 호들갑 떨었을지언정 모든 일에 무던했던 나에게 근 일 년 안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 퇴사, 남편의 본가를 따라 이사 온 낯선 동네, 그리고 주말 부부
나는 사실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쓰던 물건, 매번 가는 곳에 같은 자리가 정해져 있고 웃어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힘껏 웃어주고 집, 회사 집, 회사를 18년 동안 반복했다.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한 것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빨리 결정 내리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변화가 두렵고 낯섦이 참 싫다. 낯선 얼굴, 낯선 장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압감과 거기에 더해 어리숙해지는 나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더욱 바보같이 느껴진다.
판이 깔려있지 않으면 나는 조금 주눅이 든다. 내 이름이 명확하게 쓰여 있지 않으면 난 어느 틈에 끼지도 못한다. 난 지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변화와 낯섦 사이에 갇혀 있는 듯하다.
한 가지 더 걸리는 것을 찾자면 무엇에게도 의지 하지 못하는 마음이 나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 같다.
원래 나는 참 많은 것에 기대려는 심리가 큰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주변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의지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홀로 강하게 서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꼿꼿이 서게 만들어 주었지만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를 놓쳤고 어른인 척하는 편이 더 쉬었다. 결정적인 순간 내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없다는 믿음이 크게 자리 잡았다.
결혼을 하고 이제 맘 놓고 의지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스스로를 가둔 테두리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 언제나 혼자라는 마음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억압된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되었는데 나는 아직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나의 바깥 상황들은 잘 정리가 되어 가고 있는데 그만큼 나의 내면은 따라오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너무 많은 변화들이 한꺼번에 다가와서 인지도 모르고 언제나 혼자라는 마음이 나를 더욱 얼어붙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밤이 되면 불안이 더욱 엄습한다. 이 마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침이 되면 이러한 무거운 마음이 말끔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불안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요즘 남편과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있다. 괜찮아질 것이다.'이다.
확실한 평온에 이르기까지 아침까지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추운 겨울에 들어섰다.
平穩도 좋지만 平溫하고 싶다.
언젠가 평온했을지 모를 그 마음을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