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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이 Apr 11. 2021

과감히 끊을 줄 알아야 할 것

떨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남편의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에는 사실은 남편 본인보다 와이프인 내가 더 안일하게 생각했던 점도 있다. 10년 전이라고 마냥 쉬웠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9급 필기시험에 9개월 만에 합격하였다. 물론 인터넷에는 몇 년을 공무원 시험에만 올인한 장수생의 합격수기도 많았지만 예사로 생각했고, 더욱이 과거 필기 합격생인 내가 옆에 있는데 내 남편 당연히 단기간에 패스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깨닫지 못한 사이에1년 남짓한 시간이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의 연이은 낙방과 함께.  

나도 매일 직장에서 야근과 주말 출근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우리의 상황이 이렇게 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게 된 줄 미처 깨닫지 못하였고, 남편 또한 연이은 실패를 겪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두 번째 응시한 시험에서 점수가 오르기는커녕, 합격 커트라인 근처의 근처까지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머리를 맞대었다. 몇 가지 문제점이 있는 듯했다.


1. 강의는 이제 끝내야 한다.

인강 풀패키지에 이어 학원 실강까지 들었는데도 점수가 제자리인 것은 혼자서 하는 공부의 질과 양이 합격선까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남편도 이쯤 되니 깨닫는 바가 있었는데, 학원 강사와 강의가 수험생을 합격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당연한 이치였으나 우리는 왜 이걸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행동하였을까. 남편도 나도 어쩌면, 바쁜 상황에서 쉬운 길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남편은 독학은 이미 해왔었고 인강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니 이를 실강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고, 나는 마치 아이를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부모처럼 남편에게 카드를 쥐어주었던 것이다.

물론 학원 실강의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존재하였다. 수험생들은 흔히 인강, 학원, 독학 체질로 나눠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편은 이 중 학원 체질이었고, 인강 때 해결하지 못했던 진도 맞추기와 궁금증 해소를 강사와 직접 소통하며 해결한 점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프리패스 풀패키지와 종합반'이라는 명목의 강의 형태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기출문제와 기본서 회독 각종 공무원 직렬을 초월한 절대 명제임을 남편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제 강의는 끝내고 기본에 충실해야 했다.


2. 서서히 말라가는 불안을 잡아야 한다.

남편의 나이는 2년을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30대 중반이 훌쩍 넘어있었고, 남편의 친구들은 아내와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과 함께 가정을 무럭무럭 탄탄하게 키워가고 있었다. 남편은 나이 많은 공시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기대는 안 했지만 첫 번째 시험의 낙방 이후 매일 반복되는 생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점점 뒤처지는 것 같은 두려움. 눈뜬장님이 된 이러한 상황은 멀게 혹은 가까이 40대를 바라보는 남성에게는 극한의 두려움이었다. 커튼 칸막이가 쳐져있는 1인 독서실 책상에 앉은 그는 누구보다 괴로워했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남편의 어깨와 눈고리는 어느덧 쳐져있었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은 합격하지 않으면 그간의 수험기간은 경력도, 스펙도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 되는 잔인한 것이다. 이래서 공무원 시험 함부로 준비하지 말라는 였다. 그러나 이대로 혼자 표류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라도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3. 주변 사람들을 끊어내야 한다.

남편은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격의 단점은 모질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평소에 사교성 좋았던 남편이었지만, 2년간 떠나 있었다고 찾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이야. 공부할 때에는 휴대폰을 끄는 것이 기본상식이나, 남편은 저를 찾는 사람들을 끊어내지 못하였다. 시댁과 친정 어르신들은 남편이 공부할 시간에도 친히 전화를 주셨고, 남편은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들고 정독실을 나가곤 했다. 또한 남편의 (공시생 라이프를 모르는) 친우들은 식은 도시락을 데워 먹으며 수고하는 남편을 불러내 점심을 사주며 등을 토닥여주곤 했다.

전화받고 점심 먹는 게 대수인가? 그렇다. 아니, 수험생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독이다. 사람이 기계처럼 전화만 받고 밥만 먹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의 전후로 일정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공부하다 말고 전화를 확인하고, 독서실 밖으로 뛰어나가 받고 들어오는 시간, 친구들의 연락을 확인하고 약속을 잡는 시간, 밥을 먹고 안부를 묻고는 식사 후 커피 한 잔 쭉 빨아들이는 시간. 결코 수험생이 누려서는 안 될 사치였다.


이 모든 요인의 해결책으로서 우리는 우연찮게 홀린듯 찾아본 경찰공무원 기숙학원을 선택했다. 한 달 학원비가 내 월급의 60%에 가까웠지만, 빨리 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다면 아깝지 않았다. 대신, 다음 시험까지 석 달만 다니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그 해 2차 시험까지 남편은 상경하여 홀로 떨어진 생활을 했다. 물론 기숙학원 생활 직후 응시한 시험에서도 낙방하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기숙학원 생활이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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