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도전해보기로
한 번의 마지막 도전이냐, 장수생 루트를 타느냐의 기로
벌써 세 번째의 실패였다. 그리고 세 번 중의 세 번, 즉 100%의 확률로 커트라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남편은 자신의 상황이 더 고립되었음을 실감했다. 그간 연락하지 못하였던 친구들과 짧게 연락을 하니, 친구의 여자친구가 올여름 지방 간호직 시험에서 최종 합격하였다고 했다. 마침 우연찮게 시험 직후가 추석이라, 찾아뵈었던 어른들도 얼굴에서 어두운 낯빛을 숨기지 못하였다. 가까이 내지 멀리는 40대를 바라보는 장신의 남성은 땡볕에 다 타버린 해바라기처럼 점점 키가 쪼그라들고 있었다. 남편은 방황했고, 우리는 거실에서 무심하게 빛나는 형광등 밑에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제 접어야 하겠지?"
1년을 조금 넘긴 수험기간이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다. 2년까지는 장수생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초조했다. 가장이 언제까지나 아내의 손만 빌려서 생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아이도 태어날 것이었다. 남편은 어떻게든 일을 해야 했다. 그렇다고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수험기간만 연장시킬 뿐이었으므로, 시험 준비와 구직활동,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내심 남편이 이듬해 2차 시험까지는 준비했으면 했다.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신입사원은 불가능하고, 경력직 사원으로 들어가기에는 그간 3년간의 공백(외국생활 2년, 수험생활 1년)은 치명적이었다. 남편의 성향상 자영업도 무리였고, 그렇다고 덜컥 취직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 가정에 더더욱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시험을 한 번 더 쳐보라고 독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공시생 본인의 의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남편의 결정을 기다렸다.
보름 간의 장고 끝에 남편은 내년 1차 시험까지만 마지막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한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로 포기해버리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처음의 동기의식도 결국 남다를 것 없는 하찮은 꿈이 되면서 자기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편은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다며 조용조용히 얘기했다.
며칠 전 내가 잠시 볼 일을 보러 간 사이 남편은 시동 꺼진 차 안에서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우연찮게도, 예전 고시학원에서 경찰 공무원 준비를 했던 사람이 운동복을 입고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대학교 대운동장으로 걸어가던 것을 보았단다. 남편은 그가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체력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모양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 건데,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하며 생각하니 도저히 재도전하지 않고는 벌겋고 시커먼 재를 뿌리며 활활 타고 있는 목구멍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노란 조명 아래 식탁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현재까지 확실한 것은 아래와 같았다.
1. 올해 3차 시험은 없으므로 내년 봄에 있을 1차 시험이 우리에게는 마지막이다.
2. 남편은 이미 세 번이나 떨어졌고 필기 합격 커트라인에 가본 적도 없다.
3. 내년 1차까지만 재도전하겠고, 그 이후는 없으며, 앞으로 시험까지는 딱 반년의 시간이 남았다.
먼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었던 나는 그간 나보다 단기간에 합격한 사람, 5년 이상을 걸려서 합격한 사람들 등 여러 케이스를 보았다. 따라서 남편이 지금 이 상황에서 까딱하다간 장수생 루트를 탈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나 자신이 장수생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에 이런 약점을 겪었으니 다음에 한 번만 더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하며 자연스럽게 짧게는 몇 달 내지 길게는 1년을 꼬박 다시 쳇바퀴를 돌게 된다. 이렇게 늪처럼 빠져드는 것이 공무원 시험이다. 물론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으면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도전해도 된다. 그러나 그런 축복받은 환경을 가진 수험생이 몇이나 있으랴.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얘기했다.
"여보 지금... 까딱하면 장수생으로 빠지는 전형적인 루트를 타려는 거야."
이미 1년 반의 시간을 하루 12시간 공부에 매진했는데 결과가 없는 거라면, 그간의 공부가 틀렸음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180도 뜯어고쳐야 했다. 공부 양이든, 방법이든 뭐든. 그런데 시속 120km로 직진하는 차가 한순간에 유턴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남편에게 그간 공부했던 방식을 세세하게 말해달라 하였고, 남편은 부끄러움은 내려놓은 채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