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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이 Apr 11. 2021

자신을 몰아붙여야 한다

경찰공무원 준비 기숙학원에 가다.

2차 시험에서 낙방한 직후 수험생 카페에는 각종 경찰공무원 시험 기숙학원 문의와 홍보 글이 넘쳐났다. 남편과 나는 홀린 듯 폭풍 검색했다. 유명 공시 학원에서는 저마다 공시생 스파르타 부트캠프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개 공통적으로 수험생의 휴대폰을 수거하고, 외부 인터넷을 차단하며, 외출 외박도 정해진 날 또는 허가에 의해 가능하도록 하고 있었다.


남편은 달라져야 했다. 예전의 공부방법, 불안한 마음, 그리고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어야 했다. 그렇기에 기숙학원은 우리의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철저한 통제와 엄격한 규율이 최선의 대안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기숙학원에서 강의를 운영하여 또 강의를 들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우리가 상담했던 학원에서는 강의 참석이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남편은 강의는 본인이 알아서 취사선택하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남편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상경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텅 빈 강의실에 도착하여 혼자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남편의 목소리가 전에 들어본 적 없이 잠겨있어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학원에서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형법 점수가 과락 밑으로 떨어졌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싶고..." 자기가 그래도 1년을 넘게 공부하면서 여태껏 과락은 한 번도 없었는데 몇 달간 뭐했지 하며, 게다가 내 생각이 나서 도저히 눈에서 줄줄 새는 눈물 수없었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독서실에서 휴지로 눈물, 콧물을 막아가며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래, 내가 애도 아니고 가장인데 힘을 내야지." 그날 밤 통화 이후 남편은 다시 마음을 잡았다. 여전히 매일 아침 제일 일찍 강의실에 도착하였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방에 돌아와서도 그 날 할당 분량의 공부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좁은 침대에 겨우 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경찰 시험은 필기시험 이후 치르는 체력시험도 중요하였기에 매주 3일 하루 3시간 정도 기초체력 훈련에도 이 악물고 참가했다.


그렇게 몇 달을 갇혀있으면서 남편은 자신이 가장 필요로 했던 '끊어내기'에 성공하고 있었다. 

1. 강의 순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취약한 부분만 취사해서 수강하고 수면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독학, 즉 기본서와 기출문제 회독에 쏟아부었다.

2. 다른 것을 다 접고 하루를 온전히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던 불안한 감정, 초조함 마음을 수면 아래로 꾹꾹 누를 수 있었다. 남편은 '공부 외엔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라고 하였다.

3. 휴대폰도 특별한 사유 없이는 사용할 수 없었으니 지인들의 소식이나 안부 연락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휴대폰은 있을 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없어지니 전혀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결국 공시생 생활은 나 자신과의 싸움과 주변의 상황을 얼마나 내 의지로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모든 공시생이 기숙학원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강의를 제외하고 혼자 공부해서 합격하는 수험생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통제된 환경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려할 만한 선택이고, 다행히 남편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기숙학원의 또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이 경쟁자들이라는 점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간 다니던 독서실에서 경찰 종합반 학생들도 함께 있었지만, 기숙학원에서는 모여있는 전체 인원이 같은 목표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라드는 경쟁자들이다. 그들이 모두 나와 같은 지역에 연고를 두는 것은 아니지만 원서접수기간이 되면 누가 언제 나와 같은 지방청에 지원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은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석 달 간의 기숙 생활 후, 2차 필기시험을 앞두고 남편은 모든 짐을 가지고 귀향했다. 그는 우리의 신혼집을 새삼스레 낯선 곳인 듯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남편은 본인이 세 번째로 응시한 필기시험에서도 또, 낙방하고 말았다. 

남편은 시험 전날에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하였다. 두통약을 먹어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연신 웅웅대는 머리를 감싸 쥐고 시험장으로 향했고, 점수 역시 처참하였다. 남편은 필기시험날 집에 돌아와서도 가방에서 시험지를 꺼내지조차 않았다. 매겨봤자 소용없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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